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1990년대 국내 프로야구에도 투수 분업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에도 에이스급 투수가 구원투수로 깜짝 등판하는 것이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이를 두고 '아르바이트를 뛴다'는 표현을 썼었다.
이는 지난 해에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됐음에도 오승환이 버티는 삼성 외에는 뒷문이 불안한 탓에 '고육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에이스급 투수의 깜짝 마무리 등판이었다.
▲ '깜짝 마무리'가 잦았던 지난 시즌
2011년 정규시즌 MVP 윤석민의 당시 성적은 17승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5였다. 그 가운데 1세이브는 4월 23일 잠실 LG전에서 2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거둔 것이다.
지난 해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발돋움한 김선우의 기록엔 16승과 더불어 1세이브도 포함돼 있다. 김선우는 지난 해 6월 3일 잠실 삼성전에서 구원 등판해 3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며 세이브를 따냈다. 그가 뛰었던 28경기 중 유일했던 구원 등판이었다.
작년 5월 평균자책점이 2.43이었던 김혁민(한화)은 당시 한화에서 가장 뛰어난 구위를 자랑한 투수였다. 5월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깜짝 마무리로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⅔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하고 세이브를 거뒀었다.
지난 해 깜짝 마무리 기용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팀은 LG였다. 벤자민 주키치와 박현준을 마무리투수로 기용하는 초강수를 뒀기 때문이었다. 주키치는 7월 7일 대전 한화전에서 2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거뒀다. 이틀 전 8이닝을 던졌던 주키치의 놀라운 투혼이었다.
▲ '알바'는 없다…정상화된 올 시즌
지난 해와 달리 올해는 에이스급 투수가 깜짝 마무리로 등장하는 일이 사라졌다.
삼성엔 올해도 오승환이 있다. 지난 해의 '극강 모드'는 아니더라도 가장 신뢰를 주는 마무리투수다. 넥센엔 2010년 구원왕 손승락이 있고 롯데엔 지난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로 자리한 김사율이 있다. SK는 정우람이 마무리로 나서는 중이다.
올 시즌 전 뒷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카드'를 꺼내든 곳만 3팀이었다.
두산은 스캇 프록터를 영입해 뒷문을 보강했고 한화는 지난 시즌 중 영입한 대니 바티스타와 재계약하며 신뢰를 보냈다. 프록터는 21세이브로 김사율과 구원 부문 공동 1위에 올라 있지만 바티스타는 잦은 불쇼로 8세이브에 그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LG는 레다메스 리즈를 마무리로 내세웠지만 볼넷을 남발하는 리즈는 마무리로서 자격이 없었다. 이후 봉중근이 마무리로 정착하면서 지난 해처럼 초강수를 둘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봉중근은 첫 블론세이브에 자책하다 부상을 입어 공백을 보이고 말았다.
KIA의 경우엔 '외부 전력'으로 마무리 보강을 꿰한 예다. 한기주, 유동훈 등 마무리로 내세운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시즌 중 계약한 최향남이 마무리로 나서고 있다.
투수 역할 분담이 분명한 이 시대에 선발투수가 깜짝 구원으로 등장하는 자체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지난 해보다 마무리 사정이 나아진 팀이 많아 초강수를 둘 이유가 없어졌다. 앞으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기 마감을 앞둔 시점에서 잦은 우천 순연으로 투수력을 비축한 팀들이 어떤 전략을 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마무리 사정에 따라 팀 성적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해와 올해 모두 다르지 않다. 올 시즌엔 공교롭게도 구원 부문 1~4위에 랭크된 김사율, 프록터, 오승환, 손승락의 소속팀이 4강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해 깜짝 마무리로 등판한 바 있는 LG 외국인투수 주키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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