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마이데일리 = 런던(영국) 고동현 기자] 말 한 마디에 한국을 웃고 울렸다.
런던 올림픽이 반환점을 돌고 있다. 한국 선수단은 6일(이하 한국시각) 현재 금 10개, 은 4개, 동 6개를 기록하며 종합 4위에 올라 있다. 풍성한 메달 숫자처럼 개막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선수단과 국민들을 웃게 만들기도, 때로는 울게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 속에 선수들의 인상 깊은 한 마디를 되짚어 본다.
① 펜싱 신아람, "너무 억울해요, 내가 이긴건데"
멈춰버린 1초였다. 7월 31일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1에서의 1초는 너무나 길었다. 상대가 4번을 공격했지만 남은 1초란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오심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신아람(26·계룡시청)이지만 그녀는 실력을 통해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여자 에페 개인전에 출전해 파죽지세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을 상대로 접전을 펼친 신아람은 연장 1초를 남기고 승리를 눈 앞에 뒀지만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점수를 허용하며 패했다. 이후 한국 선수단은 곧바로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신아람은 1시간여동안 내려오지 않던 피스트에서 힘없이 내려와 믹스트존을 찾았다. 신아람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울먹이며 "너무 억울해요, 내가 이긴건데"라는 말을 남기고 대기실로 향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깊은 한숨들이 나왔다. 이후 신아람은 5일 열린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당시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다.
② 펜싱 김지연, "내가 미쳤구나…"
이번 주인공 역시 펜싱 선수다. 눈물을 흘린 신아람과 달리 경기 후 김지연(24·익산시청)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국제대회 우승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김지연은 올림픽 금메달로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김지연의 금메달이 더욱 인상 깊은 이유는 대역전극을 펼친 끝에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 김지연은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에게 5-12, 7점차까지 뒤지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 경기를 보던 한국 취재진 역시 승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펜싱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이후 놀라운 반전이 펼쳐졌다. 5-12 이후 김지연은 10점을 뽑았다. 반면 1점 밖에 내주지 않았다. 결승 진출. 김지연은 이 상승세를 결승에서도 이어가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후 김지연은 금메달을 따고 난 뒤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구나"라는 대답을 내놓으며 취재진에게 웃음을 안겼다.
③ 사격 김장미, "머리 자르고 싶어요"
20살 겁없는 소녀가 일을 저질렀다. 김장미(20·부산시청)는 1일 열린 사격 여자 25m 권총에 출전해 합계 792.4점을 획득, 천잉(중국)을 1점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권총 사상 첫 메달이었으며 여자 사격 선수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여갑순 이후 20년 만이었다.
대업을 이룬 김장미지만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에게서 이러한 '포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풋풋한 20살 소녀 모습만 있었다.
첫 마디부터 김장미는 모두를 '빵' 터뜨렸다. 김장미는 금메달을 딴 소감에 대해 묻자 "머리를 자르고 싶다. 미용실 예약도 해뒀는데 늦게 갔다며 안 받아줬다"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여 '4차원 소녀'임을 인증했다.
④ 유도 김재범, "이미 몸은 42살이예요"
김재범(27·한국마사회)은 이미 올림픽 전부터 왕기춘(24·포항시청)과 함께 유도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부상으로 인해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 여기에 왕기춘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김재범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부상도, 부담감도 김재범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1일 열린 유도 남자 -81kg급에 출전해 매경기 상대를 압도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도 대표팀 정훈 감독은 "엑스레이를 찍으면 몸이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의사들도 '이 몸으로 어떻게 운동을 하느냐'고 하더라"라고 김재범의 몸 상태를 전했다. 김재범은 왼쪽 어깨부터 시작해 무릎까지 모두 안 좋은 상황이다.
김재범은 경기 다음날 열린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해 '이날 결승에서 만난 비쇼프가 33살이다. 2008년 첫 만남에서는 김재범 나이였다. 이제 다음 올림픽에서는 비쇼프의 현재 나이와 비슷해 지는데 2연패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재범은 "지금 내 몸 상태는 이미 42살이다. 큰 일 났다"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본인은 웃었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남긴 한마디이기도 했다.
⑤ 양궁 오진혁, "올림픽 출전 자체가 꿈이었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양궁이지만 그동안 정복하지 못한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남자 개인전이 그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많은 남자 선수들이 개인전 우승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2%씩 부족하며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낸 궁사가 바로 오진혁(31·현대제철)이다. 오진혁은 남자 양궁 대표팀의 맏형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이번이 첫 출전이었다. 임동현(26·청주시청)이 이미 두 차례 올림픽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늦깎이 올림픽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오진혁은 '원샷원킬'에 성공했다. 첫 출전에서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 양궁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낸 것.
금메달 이후 오진혁은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부터 참가했는데 내가 원한 것은 금메달이 아니고 올림픽을 나가보는 것 자체가 소원이었다. 첫 번째 꿈이 이뤄졌고 그 꿈에 보답을 받은 것인지는 몰라도 금메달을 따게 돼서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까지 남긴 그의 한마디였다.
['멈춰버린 1초'로 눈물 흘린 신아람(첫 번째 사진), 약관 20살에 금메달을 따낸 김장미. 사진=gettyimageskorea/멀티비츠, 런던(영국)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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