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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영국 런던 고동현 기자] 경기력 못지 않게 선수들의 말 역시 빛났다.
런던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 선수단은 당초 목표로 했던 10(금메달)-10(순위)을 상회하는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마무리 지었다.
역시 그 중심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과를 이뤄낸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빛났던 것은 경기력만이 아니었다. 대회 기간 중 인상 깊었던 선수들의 한 마디를 되짚어 본다.
① 펜싱 김지연, "내가 미쳤었나봐요"
전혀 예기치 못한 금메달이었다. 그녀 스스로 말하기릴 "내가 미쳤어"라고도 했다.
김지연(24·익산시청)은 지난 2일(한국시간)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결승에서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를 만나 15-9로 승리했다. 한국 펜싱사상 첫 사브르 금메달이었다. 김지연은 4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미국의 마리엘 자구니스를 꺾은게 컸다. 그녀는 자구니스에 초반 밀리다 결국 15-13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랭킹 1위를 꺾어 이번 펜싱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켰던 그녀는 모두를 놀라게 했고 스스로도 놀랐다. 결국 우승까지 하고 금메달을 딴 직후 그녀는 "내가 이긴걸 보고 미쳤구나 생각했다"며 "내가 미쳤나봐요"라고 했다.
그녀는 팬들에게 미모까지 덧붙여 찬사를 받았다. 국내 팬들은 "준결승은 진짜 신의 한 수였다" "김지연의 금메달은 정말 의지의 차이다" "왜 이렇게 이쁘냐"는 칭찬이 쏟아졌다.
아쉬운 결과. 하지만 장미란은 애써 눈물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미란은 6일(이하 한국시각) 열린 역도 여자 75kg 이상급에 출전해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을 들어 올리며 4위를 기록했다. 이 결과로 그는 3연속 올림픽 메달이라는 대업에 실패했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냈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이후 장미란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취재진과 인터뷰가 이뤄지는 자리에서는 눈물 대신 웃음을 보였다. 그는 "아쉬움은 있지만 아프지 않고 잘 끝내서 다행이다"라며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장미란은 "가장 죄송스럽고 아쉬운 것은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많이 못 미치는 기록이다.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실망하셨을 까봐 걱정이 된다"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부끄럽지는 않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들었다. 비록 메달 획득은 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장미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비록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진종오는 하계 올림픽에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진종오는 5일 열린 사격 남자 50m 권총에 출전해 최영래(30·경기도청)를 0.5점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진종오는 대회 2관왕과 함께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서 개인 종목 2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됐다.
사실 50m 권총은 이미 금메달을 따낸 10m 공기권총보다 금메달 확률을 높게 봤던 종목이다. 진종오 역시 금메달 직후 "사실 어제까지 50m 권총이 너무 잘 쏴져서 이렇게만 하면 금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법. 연습 때와 달리 본선이 시작되자 진종오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5위로 마감했다. 본선을 1위로 마친 최영래와 5점 차이였기 때문에 금메달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진종오는 결선이 시작되자 제 모습을 드러냈고 결국 마지막 발에서 최영래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 진종오는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나'라고 느꼈다. 하루 사이에 10년은 늙은 것 같다"고 롤러코스터 같던 하루에 대해 표현했다. 역사는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한국 양궁이지만 그동안 정복하지 못한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남자 개인전이 그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많은 남자 선수들이 개인전 우승을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2%씩 부족하며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낸 궁사가 바로 오진혁(31·현대제철)이다. 오진혁은 남자 양궁 대표팀의 맏형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이번이 첫 출전이었다. 임동현(26·청주시청)이 이미 두 차례 올림픽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늦깎이 올림픽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오진혁은 '원샷원킬'에 성공했다. 첫 출전에서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 양궁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낸 것.
금메달 이후 오진혁은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부터 참가했는데 내가 원한 것은 금메달이 아니고 올림픽을 나가보는 것 자체가 소원이었다. 첫 번째 꿈이 이뤄졌고 그 꿈에 보답을 받은 것인지는 몰라도 금메달을 따게 돼서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까지 남긴 그의 한마디였다.
18세 고등학생이 한국 리듬체조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열린 리듬체조 예선에서 총점 110.300점을 획득하며 24명의 선수 중 6위를 기록, 10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한국 선수 최고 기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신수지가 기록한 12위였다.
손연재는 첫 날 열린 후프와 볼 연기 결과 4등에 올랐다. 때문에 이날 곤봉과 리본에서 무난한 연기만 펼친다면 결선 진출이 확정적으로 보였다.
손연재는 둘째날 곤봉 연기 시작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대 위기에 부딪혔다. 슈즈가 벗겨진 것. 하지만 손연재는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연기를 마쳤다. 이후 리본에서는 제 실력을 모두 발휘했고 결선까지 올랐다.
경기 후 손연재는 "슈즈가 벗겨진 것은 처음이다. 정말 많이 당황했다"며 "리본이 끊어지는 일도 생겼었는데 어떻게 올림픽에서까지 이런 일이 있나 생각했다. 중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설명했다. 손연재는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리듬체조 월드컵 도중 리본이 끊어지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예선에서 액땜을 제대로 한 손연재는 이튿날 열린 결선에서 5위에 이름을 올리며 4년 뒤 리우 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밝혔다.
⑥ 펜싱 신아람, "너무 억울해요, 내가 이긴건데"
멈춰버린 1초였다. 7월 31일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1에서의 1초는 너무나 길었다. 상대가 4번을 공격했지만 남은 1초란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오심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신아람(26·계룡시청)이지만 그녀는 실력을 통해 스타가 될 수 있었다. 여자 에페 개인전에 출전해 파죽지세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을 상대로 접전을 펼친 신아람은 연장 1초를 남기고 승리를 눈 앞에 뒀지만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점수를 허용하며 패했다. 이후 한국 선수단은 곧바로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신아람은 1시간여동안 내려오지 않던 피스트에서 힘없이 내려와 믹스트존을 찾았다. 신아람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울먹이며 "너무 억울해요, 내가 이긴건데"라는 말을 남기고 대기실로 향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깊은 한숨들이 나왔다. 이후 신아람은 5일 열린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당시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다.
[김지연, 장미란, 진종오, 오진혁, 손연재(첫 번째 사진부터). 사진=영국 런던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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