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백스톱 뒤에서 바라본 포항구장, 예술이다.
14일 개장경기를 치른 포항구장이 다른 구장들에 비해서 각광을 받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관중이 백스톱 바로 뒤에서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포항을 제외한 8개구단의 모든 홈 구장에선 관중이 백스톱 바로 뒤에서 야구를 볼 수 없다. 그 자리는 기록원 혹은 귀빈들, 경기진행요원들의 차지다. 팬이 프로야구의 주인이라는 사고가 정착되지 않은 시절부터 그랬기 때문이다.
포항은 다르다. 아직 정돈이 되지 않았지만, 백스톱 뒤쪽엔 거대한 공간이 마련됐고, 거기엔 좌석이 설치돼 있다. 이 공간엔 현재 전력분석요원, 기록원들과 더불어 기자석, 팬들의 관람석으로 두루 활용되고 있다. 현재 포항구장 백스톱 뒤쪽 공간을 모두 팬들이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포항은 팬들을 위해 그 자리를 활용했다. 그게 중요하다.
▲ 발상의 전환, 팬 프랜들리
포항구장은 관람석 구조가 타원형이다. 직선형으로 돼 있을 경우 1,3루 쪽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기 위해선 고개를 비스듬히 꺾고 봐야 한다. 그러나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그럴 필요가 없이 편안한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백스톱 뒤쪽 공간을 관중석으로 활용하면서 팬 친화적인 구장임을 만반에 알렸다. 그야말로 프로야구의 주인은 팬들이란 사실을 알고 실행에 옮긴 사례다.
사실 현재 포항구장 백스톱 뒤는 어수선하다. 사실상 팬들, 기록원, 전력분석요원, 기자들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두고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항시는 곧 정비를 해서 기록원, 전력분석요원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백스톱 뒤엔 기자석을 제외하고 최소의 인원만을 남겨둔 채 대부분 관람석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럴 경우 사실상 100% 팬들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건 가히 혁명이다. 실제 백스톱 뒤에서 경기를 바라본 포항 팬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었다. 야구를 현장에서 처음으로 보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도 백스톱 바로 뒤에서 투수의 투구가 포수 미트에 펑펑 꽂히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니, 팬 서비스를 넘어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메이저리그식 팬 프랜들리가 포항구장에서 실현됐으니 말이다.
▲ 허구연 위원장의 설득과 포항시의 오픈 마인드
15일 경기를 앞두고 만난 허구연 KBO 야구발전 실행위원회 위원장은 “포항시에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허 위원장이 그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녀봤지만, 포항만큼 적극적인 곳이 없었다고 한다. 허 위원장은 포항구장 건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직접 박승호 포항시장을 설득했고, 설계의 아웃 라인을 직접 잡아서 포항시에 부탁을 한 것도 허 위원장이었다.
백스톱 뒤쪽 벽이 리글리필드처럼 벽돌로 구성된 것도, 백스톱 뒷공간에서 포항 팬들이 야구를 관람할 수 있게 된 것도 허 위원장의 제안과 부탁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허 위원장은 "도대체 기록원, 전력분석요원이 왜 백스톱 바로 뒤에 있나. 그게 팬들이 가까이서 야구를 보는 것보다 중요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공무원들이나 건설업자들이 야구를 알면 얼마나 알겠나. 그래서 박 시장이 내게 자문을 많이 구했다. 포항시 체육부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적극적인 지자체는 처음봤다”라고 말했다. 허 위원장의 팬들을 위한 제안과 포항시의 오픈 마인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포항구장은 절대 탄생할 수 없었다는 게 모두의 반응이다. 지금도 외야 폴대 높이가 낮고, 덕아웃 천장이 햇빛을 잘 흡수하는 재질이라 불편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삼성과 한화 선수단은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사실 시의 재정에 여유가 있는 포항시일지라도 야구장 건립에 317억을 투입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엔 시의원들의 반대도 많았다”는 게 허 위원장의 설명. 그러나 허 위원장의 설득과 포항시의 적극적인 자세로 결국 포항시민들에게 야구 갈증을 풀어주게 됐다. 마침 포항구장이 위치한 곳은 포항종합운동장 옆 체육부지라서 야구장을 만들기에 알맞은 조건이었다고 한다.
포항구장이 국내 최초로 백스톱 뒤쪽을 팬들에게 개방했다. 그 자리에서 야구를 본 포항 팬들은 과장을 살짝 보태서 넋이 반쯤 나갔다. 허 위원장은 “포항시 관계자들도 개장경기를 보고 뒤집어졌다. 포항이 이렇게 야구열기가 뜨겁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라고 껄껄 웃었다. 그러면 됐다. 그 작은 변화로 야구 팬들이 많아지고, 저변이 넓어진다면, 그건 곧 야구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니 말이다.
기자도 지난 이틀간 백스톱 뒤에서 포항구장을 바라보니, 정말 눈이 즐거웠다. 야외의 기자석이라 몹시 더웠지만,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백스톱 뒤에서 바라본 포항구장. 사진 = 포항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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