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합
MB의 대일 강경 자세,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경각심만 키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일 대일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는 일본의 민감한 부분인 '천황'을 건드리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일본은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본 TV, 일간지 할 것 없이 온종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각 주요 일간지 1면을 장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냉각화하는 것은 물론 "관계회복이 몇 년간은 어려울 것"이라며, 차기 한국 대통령에 누가 취임해도 관계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충청북도 청원에서 열린 교원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천황은)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지만, 독립 운동에서 사망한 이들을 방문해 마음으로부터 사과할 생각이 있거든 오라고 (일본 측에) 말했다"고 언급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공장소에서 천황의 방한조건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통한의 뜻'같은 말 한마디 가지고 올 거면 (천황이 한국에) 올 필요는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한의 뜻'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천황이 과거사를 언급하며 사용한 어구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언론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이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말에 "황당하다", "예의에서 벗어났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한 외무성 간부는 "개인적인 감정을 말한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나타냈고,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했다. 다른 외무성 관계자는 "한일 간 천왕폐하의 방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당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난에 대해 응수하고 싶지 않다"(아사히 신문)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외교관계자는 "믿을 수 없는 발언이다. 악영향은 수년 단위로 영향을 끼칠 것"(마이니치 신문)이라며 "내년 2월에 차기 한국 대통령이 취임하더라도 한일 관계 회복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독도 상륙 대항조치의 검토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을 하면 감정적으로 반발이 커진다. 결코 좋은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겐바 고이치로 외상은 15일,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외교루트를 통해 항의한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일단, 우리나라 정부가 한국 정부 측에 천황의 방한을 언급한 사실이 없다. 한일 양국이 냉철하게 대응해야 할 때에 한국 측이 냉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한국에도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겐바 외상은 "필요한 상응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해, 추가적인 외교상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 또한 독도 문제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유감이다"라고 언급했다.
◆ 180도 태도 바뀐 이 대통령, 일본 측 "당황스럽다",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특히 "당혹스럽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언 수위가 이전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점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왔던 이 대통령의 그간 행보와는 180도 다른 언행이 계속되기 때문에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또한 "일국 리더의 발언이라 하기엔 너무 무례하다. 대통령은 친일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이 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크게 강조해왔다.
2008년 당선인 시절,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해 사과나 반성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3.1절 기념사에서조차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언급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한일 간의 과거사를 항상 기억할 수밖에 없지만,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가는데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친일 논란에 시달릴 정도로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 전문에, 이상득 의원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 대사를 만나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언급했다고 적혀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그런 이 대통령에게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필자가 사적으로 만난 일본인의 열에 열은 이 대통령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렇게 그들이 칭찬해 마지 않던 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변모해 전례 없는 수준의 강경 태도를 보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아사히 신문 "천황 방한 원했던 것은 MB 정부였다"
일본에서 비교적 진보적 논조를 보이는 아사히 신문은 "역대 대통령의 일본비판 레벨 훨씬 넘어서, 국가 원수로서 품격을 잃은 행위"라며, "(이 대통령 발언과 달리) 실제로는, 취임 초부터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상징으로서 천황 방한 실현을 일본 측에 문의한 것은 MB 정부였다"고 지적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천황의 방한을 제의한 것은 1984년 전두환 대통령 방일 때다. 이명박 정권은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면 어떤 정권도 달성하지 못한 천황 방한을 실현할 수 있다며 의욕을 불태웠고, 그 시기를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측은 방일 감정이 남아있는 한국 방문을 연기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태도를 180도 바꿔 '천황이 바라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아사히 신문은 "이 대통령은 이 며칠간 일본의 희박한 가해자 의식을 반복해 지적하며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태도가 왜 180도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발언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 왜 갑자기 강경 태도를 보일까?
왜 이 시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대일 강경 태도를 보일까.
본래부터 그랬다고 하기엔 임기 초반과 후반의 태도가 너무도 다르다. 일본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고 보기에도 과거 발언과 현재의 발언이 너무도 상충한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에 나아가는 데 지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은 이 대통령 본인이었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이렇다할 이유도, 계기도 없다. 이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대통령 본인의 외교 철학에 근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행동했어야 할 어떤 요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그래서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일 언론은 하나 같이 임기 말 권력누수현상(레임덕)을 피하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보다도 더 큰 권력을 누렸다고 평가받는 그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불법자금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되는 등, 일련의 측근 비리 사건으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반일감정'을 이용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전략을 구사,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맞는다면, 그는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고, 자신에게 향하는 비난을 막기 막기위해서 독도 상륙과 '천황' 발언 등 다소 터프한 대일 행보를 보였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레임덕에 허덕이던 이 대통령의 모든 언행 하나하나가 이슈화되고 있다. 여론도 일본 비판 일색으로, 4대강, 녹조 문제, 측근 비리 등 이 대통령을 향한 모든 비판의 화살이 전부 일본을 향하고 있다. 그의 대일 강경 노선이 레임덕 탈피책으로서는 매우 큰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이 대통령의 심중을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결정들이 가져올 실익은 전혀 보이지 않는 데 비해, 한일관계는 확실하게 파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 10년 동안 쌓아놓은 한일관계가...
반세기 이상 집권했던 일본 자민당에 비해, 민주당 정권은 역사 인식, 영토 문제에 있어서 그나마 중도적인 입장을 보이는 편이었다. 단적인 예로, 민주당 정권에서는 총리를 비롯한 모든 각료가 패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서지 않았고(비록 이번에 깨졌지만), 독도나 역사 문제에서도 통례적인 수준의 대응으로 일관하며 필요 이상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역사, 영토 문제에서의 불씨가 살아있었음에도 한일 양국이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왔기 때문에 이 불씨는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들이 민주당 정권을 상대로 (영토, 역사 문제에 대한) 외교적 강경 대응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다.
최근 민주당 정권은 당내 내분과 지지율 하락, 참의원 내 여소야대 상황 등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줄었고, 자민당 등 보수정당의 입김이 거세졌다. 그로 인해 노다 총리와 각료에 의한 보수적 행보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느닷없는 대일 강경 태도는, 이 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언론과 대중 여론이 격렬히 반발하는 가운데서 민주당도 이제는 강경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 자신의 취임 이래 가장 낮은 지지도, 레임덕, 친인척과 측근 비리, 그리고 4대강 녹조현상 등 사면초가에 몰린 입지를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역이용해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자민당을 포함한 우익 정치 세력, 그리고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던 일본 언론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만약, 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가 취임 초에 행해졌다면, 한국 국민들도 대환영을 했을 것이고, 일본 또한 지금과 같은 최악의 반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한일 장관 회담 및 셔틀 외교 중단에 이어 추가적인 대책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 '천황' 발언 이후에도 MB정부가 대일 강경 태도를 지속한다면, 상황은 필연적으로 더욱 악화된다. 북한과의 관계를 초토화시킨 이 대통령의 전례를 봤을 때, 일본과의 관계 또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일관계에서 역사, 영토 문제는 따로 떼어내기 어려운 사안이다. 더구나 한일 양국은 안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서로 협력해야하는 상황이며, 향후 긍정적인 관계를 쌓아나가야 할 존재다.
한일 관계는 2002년 월드컵 이후 급속히 발전했다. 그리고 약 10년에 걸쳐 지금의 관계를 만들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한류 거리는 북적거린다. 한국에서는 이렇다할 '일본 붐'이 일지는 않았지만, 사회 저변에 일본 문화가 깊숙이 침투했다. 번화가의 한 블록마다 볼 수 있는 퓨전 일식집이나 이자카야, 혹은 한국 온라인상을 중심으로 퍼진 오타쿠 문화를 봐도 이는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한일관계 10년을 볼 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일본 내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한국 드라마, 케이팝 붐, 많은 일본인, 재일한국인들의 노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였다. 한일관계가 복잡한 요소를 지닌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벽이 두꺼웠던 일본 시장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한국 기업들은 일본에서 다양한 가능성의 길을 만들어 나갔다. 재일한인들의 삶의 질 또한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10년에 걸쳐 구축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현재 암흑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통령의 혁혁한 공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글이 작성되는 15일 오후 내내 일본TV에서는 독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 매스컴이 하나의 정치 문제를 이 같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일이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 사건, 중국어선 충돌사건 이래 있었나 싶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계속되는 강경 발언에 대해 '독도는 우리땅이다. (이 대통령이) 해야할 말 한 것 아니냐'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언행은 냉철하지 못했고, 일국의 지도자 답지 않게 대단히 감정적이었다. 독도에 대한 실효지배를 그대로 유지만 하면 독도 영유권이 그대로 한국으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보인 일련의 도발적 언행은 실익보다는 부작용이 더 컸다. 오히려 그의 방문으로 대외적으로 독도가 '분쟁 지역'인 것처럼 비쳐졌다.
◆ "고맙다 MB, 일본 국민을 일깨워줘서"
15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와이드쇼 '시리타가리'에서는 아래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갔다.
"이번 사태는 영토 문제에 대한 강경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줬다."
"이대로는 안 돼요. 뭔가 확실하고 강경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일본 방송은 한국 문제에 관해서는 되도록 균형적 입장을 취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서는 매우 강경한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이 같이 독도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온종일 방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독도 문제에 관한 유례없는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독도 문제에 대다수가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독도? 그거 한국 주면 안 되요?"하던 일본 국민이었다. 그들이 독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한국에 득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대통령의 독도 행보는, 외교적 실익은 전혀 없이, 일본인들의 독도 문제에 대한 경각심만 일깨워준 격이 됐다.
독도 문제에 관한 자국민의 관심, 일본 보수파들이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사안을 MB가 대신 해줬다. 일본의 극우보수파 중에서는 이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는 않았을까.
"고맙다 MB,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워줘서"
이렇게 말이다.
이지호 기자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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