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겨울 날, 심리학자 마가렛 매티슨과 젊은 물리학 교수인 톰 버클리는 한적한 교외에 있는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실험과 추리 끝에 이층에 귀신이 출몰했다는 심령술사가 가짜이며 딸의 장난임을 밝혀낸다.
갑자기 집에 있는 가구와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토브 후퍼 감독의 1982년도 공포 스릴러 '폴터가이스트'를 연상시키는 오프닝으로 시작되는 '레드라이트'는 심령술사가 가짜임을 밝혀내는 두 과학자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악령을 퇴치하는 과정을 그린 공포 스릴러가 아니라 '심령술과 과학의 대결'이라는 선전문구와 '레드라이트'라는 제목으로 초능력 사냥꾼을 다룬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레드라이트'는 직역하면 붉은 빛이라는 뜻으로, 흔히 신호등에서 위험, 경고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적신호를 의미한다. 가짜 심령술이나 가짜 초능력을 조사하는 연구가들 사이에서 '레드라이트'는 일종의 전문 용어 혹은 은어처럼 사용되는데 심령술사를 빙자해 사람들을 속이고 다니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고와 같은 것이다. 즉, '레드라이트'는 '심령술과 사기극을 구별하는 결정적 단서'라는 뜻이다.
한국정신과학학회 회장 박민용 교수는 “심령술이란 소위 심령 치료라 불리는 초능력적인 어떤 치료를 한다든가, 무당이 굿을 하거나, 영매들이 과거의 죽은 사람을 불러온다거나 또는 죽은 사람이 몸에 붙은 것을 떼어내는 일련의 활동이다”라고 심령술을 설명했다. 심령술이라는 존재는 약 5만 년 전 원시사회부터 있었지만 과학이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미신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령술을 비과학적인 미신의 대상으로만 치부하기는 힘들다. 이 세상에는 과학적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톰 버클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암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짜 심령술사의 말에 속아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한 이후, 심령술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가렛 교수의 보좌교수로 심령술사를 빙자하는 사기꾼들을 폭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30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세기의 심령술사 사이먼 실버(로버트 드 니로 분)가 나타나고 톰 버클리는 그를 조사하려는 의욕에 불타지만 그들의 연구는 난항에 빠진다. 아무리 실버를 조사해도 ‘레드라이트’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 버클리는 사기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집요하게 실버의 행적을 추적한다. 놀라운 능력으로 관중들을 사로잡는 실버는 진정한 초능력자인가?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인가?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관 속에 갇혀 있다는 기발한 발상의 영화 '베리드'로 스릴러의 한 획을 그은 스페인의 젊은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심령술의 진위 여부를 파헤치는 이색적인 전개로 '레드라이트'를 각인시킨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마치 형사처럼 실버를 쫓는 톰 버클리의 위기 상황이 극적 긴장감을 유도하고 광기에 사로잡히는 그의 불안한 심리가 시종일관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심령술 자체의 신비함을 보여주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물리학자와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심령술에 접근하여 관객에게 심령술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객관적으로 추이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심령술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만큼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연구진들도 심령술과 초능력의 존재를 믿는 그룹과 가짜임을 밝히려는 그룹으로 분리되어 그 실체를 공론화하기 위해 심령술사들을 조사한다.
실제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1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일명 '파라노말 챌린지'프로젝트를 수립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제임스 랜디는 가짜 심령술사와 초능력자를 조사하며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는 초능력 사냥꾼이다.
제임스 랜디는 하느님의 전도사라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다녔던 피터 포포프의 실체를 밝혀내어 큰 명성을 얻었는데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영화의 거짓 선지자 레오나르도 사기 폭로 장면은 사실감 넘치는 현장감을 부각시켜 극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경이적 능력을 자랑하는 세기의 심령술사 실버를 만나 펼치는 숨막히는 진실 게임으로 로버트 드 니로의 강렬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만으로도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믿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펼쳐지는 드라마이며 그 드라마를 이끄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인 톰 버클리 역의 킬리언 머피는 탁월한 내면 연기로 로버트 드 니로와 쌍벽을 이루고 냉철한 마가렛 교수 역의 시고니 위버는 “에일리언”시리즈의 강렬한 여전사답게 영화의 무게감을 확실하게 잡아준다.
하지만 촘촘하게 쌓아올린 복선들이 밝혀지는 이 영화의 결말은 분명히 예상을 벗어난 반전이지만 결정적인 충격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다소 미진 해 보일 수 있다.
'레드라이트'는 화끈하면서도 짜릿한 충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연기진만으로도 손색이 없는 두근두근 시네마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레드라이트' 스틸컷. 사진=데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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