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14년만에 나온 대기록, 닮은 듯 다르다.
삼성 선발 브라이언 고든이 1일 대구 넥센전서 10승을 따내면서 장원삼(14승, 선발 13승), 미치 탈보트(12승), 배영수(10승) 등 선발투수 4명이 선발 10승에 성공했다. 그동안 한 팀에서 10승 투수 4명은 꾸준히 배출됐다. 삼성도 1993년, 1999년, 2001년, 2002년에 10승 투수 4명을 배출했고, 심지어 1992년 해태와 1998년 현대는 5명, 1993년 해태는 6명이나 배출했다.
하지만, 선발 10승 4명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3년 김태한(14승) 박충식(14승) 김상엽(13승) 성준(12승)의 삼성이 최초였다. 이어 1994년 이상훈(18승) 김태원(16승) 정삼흠(15승) 인현배(10승)의 LG가 두번째였고, 1998년 정민태(17승) 정명원(14승) 위재영(13승) 김수경(12승)의 현대가 세번째였다. 2012년 삼성은 19년만에 KBO 최초로 선발 10승 4명을 두 차례 배출한 팀이 됐다. KBO 통산 4번째이자, 14년만에 다시 나온 대기록이다.
▲ 노히트노런만큼 어려운 선발 10승 4명 배출
한팀에서 선발 10승 투수를 4명이나 배출하는 건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좋은 예시가 있다. 한국에선 2000년 5월 18일 한화 송진우가 광주 해태전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한 뒤 12년 째 노히트노런이 잠들어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선발투수가 경기 내내 타자를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이유로 꼽는다. 선발투수 1명이 맹투를 펼치면 노히트노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그게 최근 12년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정말 어렵다.
그래도 노히트노런은 통산 10차례 나왔다. 하지만, 한팀 선발 10승 4명 배출은 무려 14년만에 통산 4번째로 나왔다. 물론 노히트노런이 선발승보다 훨씬 어렵지만, 선발투수 1명이 1경기서 엄청나게 잘 던지는 것만큼 선발투수 4명이 동시에 시즌 내내 꾸준히 활약해 두 자리수 선발승을 찍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게 해준다.
한편으로 한팀에서 4명이나 선발 10승을 했다는 건, 선발로테이션이 거의 빈틈없이 돌아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삼성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1달 정도 1군에서 빠졌다 돌아온 윤성환을 제외하면 시즌 초반 선발로테이션이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차우찬이 부진하지만, 워낙 선발 투수가 풍족해 공백이 느껴지진 않았다.
▲ 2012년, 1993·1994·1998년과 닮은 듯 다르다
그렇다면, 1993년 삼성, 1994년 LG, 1998년 현대의 상황은 어땠을까. 1993년 삼성은 김태한, 성준 좌완 쌍두마차에 우완 김상엽, 사이드암 박충식이 고루 활약했다. 이들이 당시 삼성의 73승 중 53승을 합작했는데, 선발승은 48승이었다. 그해 삼성의 최다 세이브 투수는 김상엽의 8세이브. 성준은 풀타임 선발로 뛰었지만, 김상엽, 김태한, 박충식은 불펜으로도 꾸준히 돌며 고군분투했다.
1994년 LG는 이상훈이 에이스로 활약하며 다승왕을 따냈고, 김태원, 정삼흠, 인현배가 탄탄한 선발진을 구성했다. 이들의 합작 59승은 모두 선발승이었다. LG는 그해 김용수가 30세이브를 기록하며 뒤를 든든히 받쳐줬고, 이광환 감독도 선발의 불펜 아르바이트를 자제시켰다. 비교적 최근처럼 마운드 분업도 이상적이었고, 그 와중에 선발진이 팀을 잘 이끌었다.
1998년 현대는 10승 투수를 5명이나 배출했다. 10승을 달성한 최원호의 1승이 구원승이라 아쉽게 선발 10승 5인방 배출에 실패했다. 최원호를 제외하고 정민태, 정명원에 위재영, 김수경이 버틴 선발진은 56승을 합작했고, 이중 55승이 선발승이었다. 당시 김재박 감독은 용병 조 스트롱에게 마무리를 맡겼고, 27세이브를 따내 토종 막강 선발진의 승리를 지켜냈다.
1993년 삼성에 비해 1994년 LG와 1998년 현대는 비교적 마운드 분업이 잘 이뤄졌다. 시대적 흐름이다. 이에 반해 2012년 삼성은 시즌이 진행 중인 가운데 장원삼이 14승, 탈보트가 12승으로 앞장서고 있고, 고든과 배영수가 나란히 10승을 따냈다. 선발진의 고른 기량이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마무리 오승환이 29세이브로 뒷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데다 불펜, 타선의 도움도 적절히 받았다.
2012년과 1993-1994-1998년이 다른 건 마운드 분업화의 완벽한 정착에 이어 타자들의 수준이 향상됐다는 걸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삼성 선발진이 타선의 도움을 받아 승수를 따내기도 했지만, 2012년 삼성 선발 10승 4인방은 1993년, 1994년, 1998년 선발 10승 4인방보다 평균적으로 더 강하고 수준높은 타자들을 상대하면서 10승을 따냈기 때문에 여전히 기록의 가치는 높다.
▲ 삼성, 19년 전 준우승 한풀이 나선다
한 가지 숨어있는 기록이 있다. 1994년 LG와 1998년 현대는 선발 10승 4인방의 활약 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통합 우승했다. 결국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걸 증명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1993년 삼성은 선발 4인방이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맹활약했음에도 해태에 밀려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서도 해태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과연 19년이 지난 2012년은 어떨까. 1994년 LG와 1998년 현대처럼 선발 10승 4인방이 해피엔딩을 이끌 수 있을까. 19년 전 선배들이 맹활약하고도 우승의 맛을 보지 못했던 한을 장원삼, 탈보트, 배영수, 고든이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삼성 선발 10승을 달성한 탈보트, 고든, 배영수, 장원삼(위), 1998년 17승 정민태 코치(중간), 1993년 12승 성준 코치(아래)]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