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건창이나 병호나 지금 죽을 맛일 겁니다.”
넥센엔 올 시즌 MVP 후보와 신인왕 후보가 있다. 홈런-타점 동시 석권 초읽기에 돌입한 4번타자 박병호와 신인왕 1순위 2루수 서건창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플레이 스타일이 반대지만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은 올 시즌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이 됐다. LG 시절 자리잡지 못하다 지난해 트레이드 된 후 재능을 꽃피운 박병호, LG에서 방출된 뒤 넥센에서 제 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서건창은 잊을 수 없는 2012년을 보내고 있다.
▲ 주전 사수, 체력적 정신적 고비를 넘겨라
박병호는 올 시즌 넥센이 치른 110경기 모두 출전했다. 서건창은 107경기에 나섰다. 4번타자와 1루수, 테이블세터와 2루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이런 둘에게 김시진 감독은 “건창이나 병호나 지금 죽을 맛일 거다. 한번도 주전으로 뛰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엄청 힘들 것이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이들을 마냥 지켜본다. 이들이 잘하든, 그렇지 않든 김 감독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시즌을 치러보라는 깊은 속뜻이 담겨있다. 김 감독은 “일단 풀타임 첫해를 치르고 나면, 다음에 수월하게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백업 선수가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2경기 부진할 경우 백업 혹은 2군으로 밀려나는 걸 수 없이 경험한 그들에겐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 풀타임 주전으로 시즌을 마치면 다음 시즌엔 기득권을 갖고 주전경쟁을 치를 수가 있는데, 이를 이겨내는 건 결국 선수의 노력이 중요하다.
주전이란 건 단순히 몇 경기 선발로 꾸준히 나온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4~50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해야 감독의 눈도장을 받고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갑자기 4~50경기를 연속 치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 감독은 “일단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이 난다. 7~8월엔 체력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온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런 고비를 잘 넘기는 선수가 주전이 된다. 부상만 없다면 스스로 느끼면서 터득해야 한다”라고 했다.
▲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보낸다
풀타임 주전 1명을 만드는 데는 구단과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 감독은 “처음부터 신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 드래프트 앞순위에 뽑힌 선수보다 뒷순위에 뽑힌 선수가 잘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 애들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힘줘 말했다. 선수의 노력이 기본이요, 감독의 인내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감독은 “건창이가 시즌 중반 죽을 쑬 것이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걔를 빼버리면 절대 주전으로 성장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걸 김 감독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보낸다”라고 정의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는 주전과 함께 풀타임 주전으로 뛰게 되고, 2년차, 3년차를 뛰는 건 더욱 수월해진다는 설명이다. 풀타임 1년차를 보내면서 스스로 시즌을 어떻게 보내는지 터득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렇게 풀타임 주전 1명이 탄생하려면, 선수의 노력과 감독의 인내가 조화가 돼야 한다.
서건창과 박병호는 그렇게 풀타임 주전이 되고 있다. 선수층이 결코 풍부하다고 볼 수 없는 넥센에서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건 맞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혹서기를 보내면서 올해뿐 아니라 내년을 버틸 수 있는 요령을 익혔을 것이다. 아직 시즌이 끝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은 내년 넥센의 기득권 선수가 돼 주전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전망이다.
▲ 특급신인도 그렇게 탄생한다
요즘 프로야구에 특급신인이 적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2006년 한화 류현진 이후 안 보인다. 최근 청소년야구대회에서 보듯, 아마추어 레벨에서의 기본기 함양 부족이 치명타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아마야구 약화가 특급 신인 실종을 부채질 하는 건, 분명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알고 보면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 서건창도 결국 중고신인이다.
특급신인은 탄탄한 기본기와 자질, 잠재력을 한꺼번에 꽃피우는 선수에게 붙이는 수식어다. 아마추어 레벨에서 특급신인 양성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한편, 선수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류현진도 당시 김인식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와 꾸준한 선발 기용이 없었다면 오늘날 특급선발로 자리매김할 수 없었을 지도 몰랐다. 이는 프로 감독과 구단의 믿음과 인내도 특급 신인 발굴에 중요한 부분이란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건창은 엄밀히 말하면 순수 신인도 아니고,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의 특급신인도 아니다. 하지만, 올 시즌 넥센을 제외한 다른 팀엔 서건창 같은 케이스의 1군 풀타임 도약도 잘 안 보이는 실정이다. 괜찮은 신인조차 쉽게 나오기 어려운 풍토 속에서 마냥 특급신인이 툭 튀어 나와주길 바라는 건 무리다. 서건창, 박병호의 1군 풀타임 주전 도약기과 김시진 감독의 인내는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서건창(위), 박병호(중간), 특급신인이었던 류현진(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