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와 한류는 별개", "한류 스타가 싫어진 것은 아니야"
"정치와 한류는 별개다. 한국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한류 스타가 싫어진 것도 아니다"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돼 이제는 문화, 연예 면으로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는 실정이다.
일부 일본 우익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드라마나 K-POP을 금지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고 일본의 주요 언론에서도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류에 대한 관심이 일본에서 식어가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송일국은 8.15 독도 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가로 자신의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강력반' 등 2편의 방영이 연기됐고, 구혜선 주연 드라마 '절대 그이' 역시 2008년 독도 발언을 했다고 해 방영 연기가 결정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정됐던 한류 스타 행사와 관련 이벤트도 축소나 폐지 움직임이 나왔거나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불과 반년 전 만에도 하루가 멀다고 한류 특집이나 한국 관련 이야기로 지면을 할애하던 일본의 주요 신문과 주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천양지차다. 이쯤대면 한류 관계자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우려했던 것만큼 한류팬들의 이탈은 크지 않았다. 일본의 대다수 한류 팬들은 정치와 문화는 별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본 유력 여성지 '여성세븐'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반한감정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류 팬으로 어떤 감정이 드는가?'에 약 10%만이 한류팬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제이피뉴스도,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이 얼마나 일본 한류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이자 한류의 메카로 유명한 신오쿠보를 직접 찾아 일본인들의 의식과 한류에의 영향을 조사한 바 있다.
신오쿠보에 미치는 영향은 우려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방문한 일본인들도 한국의 독도 방문에 실망감을 표현하면서도 한류와는 별개라는 자세를 취한 이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미 일본에서 반한감정의 여론을 업고 한류 자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의 장기화도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류 골수팬(?)'들의 생각은 어떨까?
보다 자세한 일본인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8월 말 짧게는 5년, 길게는 십수 년 동안 한류의 발전과 함께해 온 한류 팬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래도 나는 한국 간다
지난 8월 말, 필자는 오랜 시간 한류 팬임을 자처하는 일본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실 이 만남의 자리는 최근 한일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독도문제가 한류 팬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취재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한류스타와의 만남을 전면에 내건 한국여행 상품이 너무 비싸다는 성토가 최근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최전선에서 한류를 소비하는 소비층인 그들에게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한류 투어상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오히려 한일관계의 악화로 한국에 갈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나타내면서 앞으로도 한류에 대한 응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일본인으로서, 한국 대통령의 깜짝 독도 방문과 천황에 대한 사죄 요구에 불만의 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정치적 문제 때문에 이미 자신들 삶의 활력소로 자리 잡은 한류스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먼저 이날 모임에서 가장 어리면서 현 한류 소비의 중심 세대이기도 한 26살의 오하라 레이 양에게 독도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솔직히 큰 관심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 뉴스에서 크게 보도되면서 '아 저런 문제도 있구나'하고 느꼈을 정도다"라며 지금도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여행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안게 됐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다케시마가 되든 독도가 되든 별다른 문제가 안 되는데, 한국국민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너무 뜨거워진 느낌도 들어 불안하다. 9월 중순에도 한국을 갈 예정인데 혹시 일본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부모님이 노심초사다. 자꾸 주변에서 그러니까 나 역시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토 씨(36, 남성)도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하라 양과는 다른 입장에서의 불안감이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다케시마를 차라리 폭파하자"며 농담조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토 씨는 "일반 여행사에서 판매되는 서울 여행 상품을 3일 기준으로 보통 2~3만 엔 정도인데, 한류스타와의 만남이 일정에 포함되면 17~20만 엔으로 오른다. 숙소나 먹거리가 고급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단지 한류 스타가 끼었다는 명목으로 10배나 높은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며 한류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내가 한국여행을 포기하게 된다면, 독도-다케시마 문제 때문이 아니라 금전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어차피 갈등과 긴장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조금 심각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그 연장선일 뿐이며 이를 해결한다면 양국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한류와 같은 양국 문화 교류까지 감정에 치우쳐 봉쇄하고 제재하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움직임에 나는 반대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러 앞으로도 한국에 계속 갈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말이다"라며 합리적인 한류 투어 상품이 있다면 정치적 관계와는 상관없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의 독도 방문과 천황 사죄 요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50대인 마쓰모토 치하루 씨는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같이 사는데, 천황을 걸고넘어진 것에 남편과 시아버지가 크게 노했다. 나 역시 설마 하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며 처음에는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마쓰모토 씨는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나 역사가 아니다. 아주 별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연예인마저 미워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에게 있어서 한류는 근 10년 동안 삶의 활력소였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나마 휴식과 행복을 준 고마운 존재다.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인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류가 좋고 한류스타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다음 달에 있을 한국여행에 관해 남편한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라며,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계속해서 한류를 즐기겠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한류를 위해서라고 양국 관계 개선은 조속히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자리는 한류 투어상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을 알아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류 투어상품은 일반적으로 여행사에서 판매되는 서울여행이 아니다.
한류스타의 팬 미팅, 사인회, 콘서트 등의 일정이 포함됐고, 소속사나 팬클럽을 통해야만 살 수 있는, 한류스타 팬에게는 특별한 여행상품인 것이다. 따라서 이토 씨가 언급한 대로 일반 여행 상품보다 10배 이상 비싸지만,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 상품이기에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취재에 응한 일본인들도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근 10년 이상을 한류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한국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한류 소비층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며 파워풀한 구매층이라는 이야기.
보통 3일 여행에 20만 엔에 가까운 돈을 주저 없이 지불하는 일본인이라면, K-POP 음반 구매나 드라마 DVD 수집에도 적극적이고, 주기적으로 신오쿠보를 찾아 한국 음식 등의 상품을 소비한다. 또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 한국문화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나타낸다.
그런 그들이 이 와중에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을 가겠다"고 밝혔다면 그 의미는 크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동안 일본인 관광객 수가 늘었다고 한다. 단체 관광객 수는 줄었지만, 개인 관광객 수가 여전히 이어져 한일관계 악화에도 지난해보다 약 7%가 늘어 32만 5천여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단체 여행객이 약 20~30% 정도 줄었다는 점에 여행업계에서는 비명이 나오고 있지만, 취재한 일본인들의 생각처럼 많은 일본인들은 한류와 양국 정치문제는 별개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현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류뿐만 아니라, 한일 간 교류도 큰 타격을 입기 쉽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한류의 시작과 성장을 같이 했다는 하네 게이코 씨도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욘사마 이전에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거칠었다. 한국인들은 불친절하고 한국의 치안은 믿을 수 없다는 이미지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에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고 건너가기를 꺼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욘사마를 계기로 부드러운 한국인, 친절한 한국인, 잘생기고 스마트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됐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K-POP이나 한국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독도 문제가 장기화돼 일본언론이나 방송에서 일본과 갈등·대립하는 모습을 부각해 보여준다면, 한국의 이미지는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10년간 공들인 보람이 순식간에 무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큰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장기화된다면 한류의 인기 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당장 수년 동안 한류를 좋아하고 즐긴 우리 가운데도, 이전과는 다르게 한국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루빨리 이 일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장기적으로 한류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칠지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취재에 응한 한류 골수팬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한국에 가겠다"는 한류 사랑과는 별개로, 주변의 반응을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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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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