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힘든데요, 그래도 즐거워요.”
최근 삼성 이승엽의 심정이 위와 같다. 혈기왕성한 29세에 현해탄을 건넜다가 37세에 돌아온 한국. 그가 8년만에 느낀 한국무대는 달라졌다. 본인도 달라졌다. 예전과 같은 어마어마한 괴력은 안 나온다. 그래도 ‘이승엽은 이승엽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존재감과 클래스는 여전히 빛나기 때문이다.
▲ 힘들다, 훈련량도 줄였고 보약도 먹는다
10일 대구 넥센전을 앞두고 이승엽을 만났다. 솔직했다. 첫 마디부터 “힘들다”라고 했다. 37세다. 냉정히 볼 때 전성기는 지났다. 예전 같으면 담장을 훌쩍 넘어갈 타구가 이젠 워닝트랙에서 자주 잡힌다. 파워가 떨어졌다. 그도 “오랜만에 1군 풀타임을 뛰는 것이다”라고 했다. 요미우리 시절과 지난해 오릭스 시절 1~2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오랜만에 1군 풀타임으로 뛰면서 체력적, 심리적으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경기를 치른다. 적지 않은 나이라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다.
이승엽은 “7월 말부터 힘들더라. 그래서 훈련량을 좀 줄였다. 한약도 먹고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그래서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라고 웃었다. 타격에서도 현실을 택했다. “지금 900g짜리 배트를 쓰는데, 시즌 초반에 비해 10g 줄였다”라고 했다. 가벼운 방망이를 쓰면 아무래도 체력 부담이 덜하다. 장타 양산 보다 정확한 타구 생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홈런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지금 성적에 만족한다. 정확한 타격에 신경 쓴다”라고 했다.
▲ 즐겁다, 왜 진작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 다음에 돌아온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힘들어도 한국에서 뛰는 게 너무 즐겁다. 왜 이제 돌아왔나 싶다. 좀 더 빨리 돌아올 걸 그랬다.” 특히 요미우리에서 보낸 영욕의 5년, 스포트라이트도 받았지만 용병이라는 신분, 특유의 1등주의에 대한 부담감이 막대했다. 조금만 부진해도 2군행이었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성적을 떠나서, 지금 이승엽은 한국에서 한국 선수들과 살을 비비는 게 즐겁다. 진심으로 야구를 즐긴다. 이승엽은 행복하다.
8년만에 돌아온 한국무대, “분위기가 달라졌다”라고 했다. 이승엽이 말하는 달라진 한국야구는 단순히 야구의 수준이 높아진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팀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전엔 어린 선수들이 통제가 안 돼서 선후배간의 위계서열이 엄격했다. 선배가 후배들을 일일이 가르쳤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금은 후배들이 알아서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기 할일을 알아서 하고, 스스로 책임진다”라고 했다. 좀 더 프로페셔널해진 것이다. 때문에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조언? 안 한다. 그럴 이유도 없고, 괜히 역효과만 난다”라고 했다. 그저 자신이 할일을 하고, 후배들과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
▲ 5년 더 야구해야 한다, 아들들에게 그는 최고의 타자
이승엽에게 은혁과 은엽, 두 아들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큰 아이는 이제 좀 커서 아빠가 언제 야구를 잘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안다”라고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아직 어려서 아빠가 아직도 전성기를 달리는 최고의 선수인줄 안다”라고 껄껄 웃었다. 이승엽의 아들들도 이승엽과 함께 고생을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낯선 일본 생활을 해야 했다. 그가 한국에 복귀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도 가족들이었다. 본인 때문에 아내와 아들들이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없어서다.
이승엽은 “아직 5년 더 야구를 해야 한다”라고 웃었다. 둘째 아들에게 아빠가 어떤 타자인지 분명히 알게 해주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현재 두 아들들과 아내 이송정씨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아들들의 교육을 위해서다. 이승엽은 혼자 대구에 산다. 아들들이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야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들들에게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두근거리는 PS, 그는 가을을 기다린다
이승엽은 올 시즌 111경기서 타율 0.313 21홈런 79타점을 기록 중이다. 후반기 부진하다 10일 대구 넥센전서 2003년 5월 18일 대구 SK전 이후 3403일만에 4안타 게임을 하며 타격감 회복을 알렸다. 지금도 타율 2위, 홈런, 타점 3위다. 그는 “원래 3할 30홈런 100타점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라고 웃었다. 그래도 지금 성적에 만족한다면서 “내년에는 이 성적이면 만족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스스로도 한국 적응의 해로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가을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2위와 4게임 차로 팀 승리에만 집중하고 있다”라면서도 “한국에서 오랜만에 포스트시즌을 치를 것 같다. 기대된다”라고 했다. 이승엽은 과거 포스트시즌 등 중요한 경기서 결정적인 한 방을 쳐주곤 했다. 그가 슈퍼스타이자 국민타자로 불리는 이유다. 가을의 전설을 쓰기 위해 말은 안 해도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한다. 류중일 감독은 “승엽이는 나보다도 일찍 출근한다.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라고 극찬했다.
이승엽은 사실 개막전부터 왼쪽 어깨가 많이 아팠다. 지난해 오릭스 시절 수비를 하다 어깨를 그라운드에 찧었는데, 시범경기서는 괜찮다가 개막전부터 아팠다. 시즌 중반까지 극강의 타격감각을 뽐냈던 것도 부상투혼이었다. “주사를 두번이나 맞았다. 지금은 통증이 사라졌다”라고 한 그는 진정한 팀 플레이어다. 아팠지만,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 없다. “팀을 위해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타격을 해야 한다”는 이승엽, 실력도 마음가짐도 진정한 국민타자인 그가 곧 가을의 전설을 쓸 준비에 들어간다. 우리가 그의 말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건, 그에게서 여전히 슈퍼스타의 아우라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승엽.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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