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LG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LG 김기태 감독은 13일 오후 30여명의 취재진 앞에서 전날 잠실 SK전서 구겨진 LG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액션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김 감독과 기자들과의 대화 시간은 20분 가량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 수요일 밤 잠실발 미스터리
SK 선발 윤희상은 12일 잠실 LG-SK전서 7⅓이닝을 던진 뒤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좌완 셋업맨 박희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박희수는 공 7개로 8회를 마친 뒤 9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는 좌타자 이대형. LG는 좌완 박희수를 공략하기 위해 대타로 우타자이자 한 방이 있는 최동수를 넣었다. 그러나 박희수는 최동수를 삼진으로 솎아냈다. 이어 좌타자 이진영이 등장하자 SK는 박희수를 빼고 우완 이재영을 넣었다. 이재영은 이진영을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했으나 후속 우타자 정성훈에게 2루타를 맞았다. LG는 양영동을 대주자로 냈으나 SK는 좌타자 박용택 타석에서 다시 마무리 좌완 정우람을 올렸다.
이에 LG는 박용택을 빼고 투수 신동훈을 우타석에 기용했다. 신동훈은 타격 의사 없이 서서 삼진을 당했다. 경기 끝. 김 감독은 2사 후 정성훈이 2루타를 치자 대주자까지 넣을 정도로 추격에 열을 올렸으나 정우람이 등장하자 갑작스럽게 간판타자 박용택을 빼고 신인 투수를 넣었다. 김기태 감독이 마지막에 조계현 수석코치의 만류를 뿌리치고 승부를 포기한 것이다.
▲ LG 자존심을 찾기 위한 김기태 감독의 액션
김 감독은 대뜸 “SK가 장난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고, 또 다시 죽이는 꼴이었다. LG와 LG 팬들을 기만했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이 감독의 투수교체에 분노했다. 박희수와 정우람 사이에 이재영을 등판시킨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김 감독의 논리는 이렇다. 좌완 박희수가 8회 2사에 올라와서 9회 첫 타자를 잡을 때까지 공을 11개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좌타자 이진영을 상대로 왜 우완 이재영을 올렸고, 정성훈에게 2루타를 맞고서야 마무리를 올렸느냐는 것이다. 김 감독은 공 11개를 던진 좌완 셋업맨이 계속 좌타자 이진영을 상대하게 하지 않고 우투수를 내세운 것을 보고 분노했다. 박희수를 경기 끝까지 마무리시키거나, 아니면 마무리 정우람을 9회 시작과 동시에 올려 경기를 끝내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 감독 입장에선 잘 던지던 박희수가 갑자기 내려간 뒤 이재영을 투입해 자신들을 살려줬고, 다시 정우람을 넣어서 자신들을 두번 죽였다고 봤다.
김 감독은 결국 액션을 취했다. SK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봤다. “뒤집어서 승리하는 것도 자존심을 찾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고 했다. 즉, 김 감독이 생각하기에 이 감독이 상식 밖의 투수기용을 했으니 김 감독도 이 감독에게 고스란히 상식 밖의 대타 기용으로 경기를 포기하는 액션을 취한 것이다.
▲ 번짓수 틀린 김기태 감독의 자충수
이에 이 감독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박희수는 부상 전력이 있어 오래 던지게 할 수 없는 SK의 사정이 있다. 그리고 마무리 정우람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완이지만 좌완에 강한 이재영을 중간에 넣었다. 그리고 야구에서 3점차는 언제든지 뒤집힌다. 12일 광주에서도 아웃카운트 1개 남기고 경기가 뒤집어지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박희수와 정우람이 길게 던지지 못한다는 SK의 사정을 간과했다. 그리고 이재영은 올 시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0.211로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0.342보다 낮다. 더구나 정우람이 등판했을 때는 3점차, 아웃카운트 1개 남은 상황에서 타석의 타자 1명, 대기타석의 타자 1명의 합계가 3으로 세이브 요건이 충족됐다. 경기가 긴박했다. 이 감독은 “부끄러운 짓을 안 했다. 떳떳하다”라고 했다. SK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LG는 대타, 대주자까지 투입해놓고서 마지막에 간판타자 박용택을 빼고 투수를 대타로 넣으며 승부를 포기했다. 프로의 미덕인 승리를 포기하는 중차대한 장난을 친 것이다. 그것도 프로야구의 주인인 7819명의 팬들 앞에서 김 감독은 자존심을 찾으려다 되려 자충수를 둔 꼴이 됐다.
또 하나. 박희수-정우람 사이에 나온 이재영은 졸지에 ‘LG를 죽였다 살려준 사람’이 됐다. 그리고 투수 신동훈도 마운드가 아닌 타석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김 감독이 LG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이재영과 신동훈을 희생시킨 것이다. 대다수 LG 팬은 김 감독의 승부포기에 분노한 상태다.
▲ 누구를 위한 자존심 찾기였나
김 감독은 “상대가 우릴 얼마나 얕잡아 보면 그러겠나. 우리가 야구를 더 잘해야 한다”라고 했다. LG는 올 시즌도 사실상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 건너갔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10년 연속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LG는 분명 실망한 팬들을 위해 야구를 잘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상대가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것, 상대팀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지금 LG 팬들은 이 감독의 투수교체가 아닌 김 감독의 승부 포기가 자신들을 얕잡아본 것이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부진해서 자존심이 구겨진데다, 김 감독의 승부포기에 또 한번 자존심이 구겨졌다. 김기태 감독의 LG 자존심 찾기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김기태 감독, LG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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