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가장 적극적인 공격 방법이 아닐까?”
번트.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공에 배트를 갖다 대듯이 가볍게 밀어 공을 내야에 굴리는 타법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번트는 경기상황에 따라 희생번트, 기습번트, 스퀴즈번트 등으로 나뉜다. 번트는 분명 일반적인 타격과는 다르다. 때문에 상대의 허를 찌르기엔 가장 마침맞은 방법이다. 일단 어떤 종류의 번트이든 나오기만 하면 내야진은 긴장할 수밖에 없고, 타자와 내야진은 치열한 머리 싸움을 펼친다.
▲ 번트는 가장 적극적인 공격
지난 11일 대전 한화-삼성전 직전 삼성 더그아웃에 들른 김소식 ISPN 해설위원은 번트를 “가장 적극적인 공격”으로 정의했다. 경기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공격은 희생번트다. 희생번트는 타자가 희생하면서 루상의 주자를 진루시키는 작전이다. 어떻게 보면 안타를 노리는 작전보다 더 적극적이다. 안타는 3할이면 잘한 것일 정도로 확률이 높지 않지만, 통상 희생번트 성공률은 3할보단 확률이 높은 편. 비록 아웃카운트 1개를 버리더라도 주자를 진루시킬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니 그것만큼 적극적인 공격은 없다.
세이버 메트릭스가 일반화되면서 무사 1루 상황에서 희생번트를 대는 것보다 오히려 강공을 노리는 게 득점 확률이 높다는 통계결과가 있다. 최근 감독들도 대부분 선 굵은 야구를 선호하는 편이라 경기 중반까진 희생번트를 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야구인들은 “일단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에 성공하면 주자를 확실하게 2루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이 공격하는 팀에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한다. 경기 막판 1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 그리고 연패 중인 팀이나 집단 타격슬럼프 양상을 보이는 팀은 경기 초반에도 희생번트를 대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전히 희생번트를 확실한 득점루트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박빙 승부서 종종 나오는 스퀴즈번트,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번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 번트 못 대는 사람? 있다, 그래서 부담된다
번트는 확실히 고급 기술이다. 벤치의 사인을 잘 간파하고 경기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류중일 감독은 일전에 “나는 현역 시절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스퀴즈번트는 정말 부담스럽더라”고 했다. 상대를 최대한 오래 속이기 위해 기습적으로 번트를 대면서도 3루 주자를 무조건 홈으로 불러들여야 하고, 박빙 승부 상황이라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류 감독은 경기 중, 후반 1점을 뽑아내기 위한 희생번트 사인이 나와도 타자들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또한, 류 감독은 “이상하게 번트는 연습을 해도 잘 늘지 않는 선수가 있다”라고 했다. “우리 팀에선 박한이와 김상수가 번트를 잘 대는 편인데 몇몇 선수가 유독 번트를 못하더라”고 했다. 일반적인 타격과는 기술도 다르고,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그런 선수들에겐 차라리 강공 사인을 낸다. 오히려 그게 확률이 높다”라고 했다.
이병훈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도 “내가 현역 때 어떤 선수는 번트 사인이 나오면 차라리 투수가 자기 몸에 공을 맞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정도라는 말을 하더라. 야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번트가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인지 모른다”라고 했다. 실제 번트 지령을 받은 선수가 실패하고 더그아웃에 돌아올 때, TV 중계 화면엔 십중팔구 고개를 푹 숙이거나 울상을 짓고 있는 선수가 다반사다.
번트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류 감독은 “요즘 투수들은 공이 빠르다. 150km를 던지는 투수의 공을 배트만 내밀어서 가볍게 굴린다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빠른 공은 원초적으로 타자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번트를 위해 고개를 숙인 뒤 두 눈으로 공을 끝까지 응시하면서 배트 중심에 맞혀 타구의 속도를 죽이는 번트는, 인간의 본능과도 연관돼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번트 사인을 간파한 배터리가 의도적으로 공을 타자 몸쪽 코스로 넣는 건 근본적으로 번트를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 번트 응용한 플레이도 볼거리
번트를 응용한 플레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대표적인 게 '위장 스퀴즈'다. 무사나 1사에 1,3루 주자를 놓고 3루 주자가 스킵 동작을 적극적으로 하고 타자가 스퀴즈를 시도하는 척한 뒤 전진 대시한 내야수들을 보며 의도적으로 헛스윙하고 1루주자가 여유있게 2루 도루를 해 병살타를 막는 고급 기술이다.
주자 1,3루에서 스퀴즈가 나오면 1,3루수가 모두 전진 대시한다. 이때 2루수가 1루를, 유격수가 2루를 커버하게 된다. 하지만, 공을 잡은 포수가 3루주자의 스킵 동작에 2루 송구를 재빨리 할 수 없기 때문에 2루 도루의 성공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유격수가 전진 대시하는 3루수를 보고 3루 커버를 갈 경우 포수는 2루에 공을 던지지도 못하게 된다. 또한, 포수가 2루 커버를 들어간 유격수에게 공을 던질 경우 스킵 동작을 하던 3루주자는 유격수의 포구 이후 자세와 송구 능력을 감안해 순간적으로 홈 쇄도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12일 대전 삼성전서 한화가 보여준 번트 응용 기술도 눈에 띄었다. 2-0으로 앞선 6회말 한화는 무사 1루 상황에서 타석의 하주석이 희생번트 자세를 취하는 척하다 헛스윙을 했고, 이후 곧바로 1루 대주자 이학준이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위장 스퀴즈는 아니었지만, 삼성 내야진이 순간적으로 1루 주자의 견제와 2루 커버가 허술해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번트 헛스윙 이후 반박자 늦게 원위치로 돌아간 삼성 내야진은 이학준의 2루 도루를 막지 못했다. 한화는 이후 하주석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찬스를 만든 뒤 오선진의 중견수 플라이로 3-0으로 달아나 승기를 굳혔다.
번트, 가장 적극적인 공격이면서도 부담스러운 공격이다. 일단 성공하면 공격 측엔 짜릿함이, 수비 측엔 좌절감 그 자체이니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번트 장면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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