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프로야구가 2일 한국프로스포츠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KBO는 2일 잠실, 목동, 대전, 군산에 총 4만7175명이 입장해 올 시즌 누적관중이 704만502명이 됐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4년 연속 역대 최다 관중 신기록을 쓴 프로야구는 현재 한국 스포츠 최고의 킬러 콘텐츠다. 최고의 호황인 프로야구에 “지금이 위기다”라고 말하면 야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700만 관중, 예상보다 늦었다
올 시즌 관중 동원의 가장 큰 특징은 100만 관중부터 600만 관중까지 모두 역대 최소경기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실제 100만 관중은 65경기만인 4월 29일, 200만 관중은 126경기만인 5월 18일, 300만 관중은 190경기만인 6월 6일, 400만 관중은 255경기만인 6월 26일, 500만 관중은 332경기만인 7월 28일, 600만 관중은 419경기만인 8월 26일에 넘어섰다.
올 시즌 어림잡아 약 6~80경기, 20일에서 1달 이내에 100만명 단위의 관중이 각 경기장에 채워졌다. 그런데 700만 관중은 600만 관중이 돌파한 뒤 113경기, 37일만에 기록됐다. 6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넘어가는 페이스가 더뎠다는 건 그만큼 시즌 후반 관중 몰이가 힘겨웠다는 의미다. 예년에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휴가철 이후, 그리고 순위가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시점인 8~9월 관중 동원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는 런던올림픽까지 열렸다. 태풍과 가을 장마의 영향으로 경기일정이 뒤죽박죽 꼬인 영향도 있었다. 그럼에도 700만명을 돌파한 건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삼성이 8월 이후 단독선두 체제를 고수했고, 넥센과 LG가 4강에서 멀어지면서 야구장의 관중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주중에는 외야석에 관중을 찾기 힘들었고, 주말에도 외야석은 절반이 비었다. 2일 목동 넥센-두산전서 들려온 만원관중 소식은 오랜만이었다. 9월 중순 이후 날씨가 좋아지면서 관중이 다시 좀 늘어나긴 했어도 시즌 중반까지 발 디딜 틈 없던 야구장이 8~9월 초순 급격하게 한산해진 모습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 콘텐츠의 질을 높이자
하향평준화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정규시즌 우승팀 삼성이 최근 분전해 겨우 승률 6할을 넘겼다. 5할대 후반을 형성하던 삼성을 나머지 7개 팀은 쉽사리 붙잡지 못하고 서로 물고 물렸다.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 몇 년간 가을잔치에 나서지 못했던 팀은 결국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승부처를 버티지 못했다. 팬들은 그런 모습에 실증을 느껴 야구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풍성한 개인 타이틀 홀더가 배출되기 직전이지만, 30홈런 돌파 선수는 단 1명이고, 15승 투수는 단 2명뿐이다. 20승과 40홈런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올 시즌 MVP 후보들도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모그룹과 현장의 파워게임이 프런트 독식주의로 흐르고 있다. 감독이 파리 목숨이다. 자신의 소신을 발휘할 수가 없다. 명장이 탄생하기 어려운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에서 좋은 선수가 발굴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작금의 중, 고교 야구의 허약한 구조와 맞물려 콘텐츠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6년 류현진 이후 특급신인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현실, 고등학생들이 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서 충격의 5위를 차지한 현실, 내년 WBC 마운드를 이끌 축이 보이지 않는 현실. 모두 작금의 하향평준화와 불투명한 한국야구의 미래와 연관이 있다. 물론 포스트시즌이 되면 또 관중이 많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같다면, 그들을 실망시킬 지도 모른다. 프로야구의 질적 하락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관중이 떠나는 건 한 순간이다.
▲ 700만 관중 환상에서 벗어나자
영화 ‘도둑들’이 지난 8월 말 개봉 20여일만에 2009년 ‘해운대’ 이후 3년만에 한국영화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고, 2일엔 1300만명을 돌파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600만 관객 돌파가 눈 앞이다. 매커니즘이 다른 야구와 영화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가 활용을 위해 야외로 나설 때 떠올리는 가장 흔한 콘텐츠가 영화다. 프로야구가 열리는 저녁, 야구장에 오던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면 결국 야구계는 영화계에 콘텐츠 소비력에서 밀리는 것이다.
각 구단의 라이벌은 타 구단이 아니다. SK 신영철 사장의 과거 말마따나 영화관과 놀이공원이 라이벌이다. 그들이 끝없는 업그레이드를 추구한다면 구단들도 관중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최근 만난 또 다른 야구 관계자는 “지방구단들이 야구장 신축공사에 나서야 한다. 매년 리모델링을 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직면했다. 더 많은 관중이 좀 더 편하게 야구를 관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 지방 구장은 열악하다. 관중들은 불편한 자세를 감수하고 야구를 구경한다. 출입구도 비좁고, 화장실, 매점 시설도 협소하다. 하지만, 그들의 충성심에 취해 야구인들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제 그들이 놀이공원과 영화관으로 떠날지 모른다. 이미 망신도 당했다. 지난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첫날 경기가 일제히 비로 연기되자 외국 선수들이 협소한 실내 훈련 시설에 갈팡질팡하자 한국관계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700만 관중 돌파는 분명 축하 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내일 당장 700만 관중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한 위험 요소가 너무 많이 숨어있다. 야구인들이 700만 관중의 감흥에 더 이상 취해선 안 될 이유다. 야구는, 찬스 뒤 위기다.
[잠실구장.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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