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구 김진성 기자] 삼성은 6일 정규시즌을 마친 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24일까지 17일간의 공식 휴일이 주어졌다. 그 17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국시리즈가 달라진다. 단순히 체력 싸움에서 앞선다고 쉽게 이길 수 있는 SK가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기자들 앞에선 그저 “허허” 웃기만 하는 류중일 감독. 그 속엔 치밀함이 숨어있었다.
▲ 숨가빴던 17일
류 감독은 정규시즌 최종 홈 2연전이었던 10월 3~4일 두산, SK전서 결단을 내렸다. 왼손 중지손가락에 미세한 통증을 호소하던 이승엽을 일본에 보내 주사를 맞게 했다. 잔부상이 있던 박석민에게도 휴식을 줬다. 선발 투수들도 차례로 1군에서 제외했다. 주전들을 모두 투입해 미리보는 한국시리즈의 의미를 살려 기싸움을 할 수도 있었지만, 류 감독의 선택은 실리였다. 5~6일 KIA와의 광주 최종 2연전서는 사실상 1.5군이 나섰다. 굳이 먼 거리로 원정을 떠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대비훈련은 9일에 시작됐다. 공식 휴가는 이틀이었지만, 이승엽과 박석민은 정규시즌 우승 확정을 한 1일 이후 일주일 가량 푹 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주전들과 선발투수들도 대부분 4일 이상 쉬었다.
대신 9일부터 강도 높고, 치밀한 훈련에 돌입했다. 삼성을 제외한 포스트시즌 진출팀은 모두 천연잔디 구장을 홈으로 썼다. 류 감독은 마침 대구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관계로 대구구장에서 훈련이 불가능해지자 천연잔디가 깔린 경산볼파크에서 수비훈련을 충분하게 시켰다. 대구구장으로 돌아와선 야간청백전을 실시하며 최대한 실전 분위기를 냈다.
그 와중에 박석민이 옆구리 통증이 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팔꿈치 통증이 있던 권오준의 한국시리즈 참가 불발도 결정됐다. 박석민에겐 훈련량을 줄여줬다. 권오준의 몫은 심창민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선수들의 컨디션도 23일 1차전에 맞춰 100%로 끌어올리게 했다. 그리고 대망의 1~2차전서 압승했다. 공식 경기가 없었던 17일이란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었다.
▲ 기싸움에서 판정승
단기전은 흐름과 기세싸움이다. 삼성은 기세를 잡아야 했다. SK보다 전력상 우위라고 하지만, 6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SK는 절대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니었다. 류 감독은 선수들에게 내부적으론 “방심 금물”이라며 긴장감을 높였다. 하지만, 대외적으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선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선원들의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23일 미디어데이. 1차전 선발투수를 발표해달라는 MBC 스포츠 플러스 김민아 아나운서의 질문에 류 감독은 자신 있게 마이크를 쥐고 “1차전 윤성환, 2차전 장원삼”을 외쳤다. 이만수 감독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원래 1차전 선발만 말하려고 했는데”라며 “1차전 윤희상, 2차전 마리오”라며 마지 못해 1~2차전 선발투수를 모두 발표했다.
류 감독은 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2차전 선발투수까지 말했을까. 그만큼 마운드 전력에 여유가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선발 투수가 미리 분석을 당해도 상관 없다는 뜻이었다. 류 감독이 미디어데이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서 이 감독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실제로 1차전 윤성환, 2차전 장원삼이 모두 호투하며 2연승을 챙겼다.
류 감독은 2차전 직후 기자회견실에서 “3차전 배영수, 4차전 미치 탈보트”라고 또 선수를 쳤다. 반면 이 감독은 3차전 선발투수에 대해 “내일 발표하겠다”라고만 했다. 류 감독의 자신감이 3~4차전서는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한 대목이다.
▲ 에이스 2차전 빼돌리기 작전 대성공
류 감독이 1~2차전 선발을 미리 발표한 것엔 또 하나의 승부수가 있었다. 17승을 따낸 에이스 장원삼을 2차전으로 돌린 것이다. 물론 윤성환도 에이스로서 손색이 없지만, 류 감독은 올 시즌 장원삼을 1선발로 활용했다. 당연히 1차전 선발로 예상됐다. 하지만, 류 감독은 윤성환을 1선발로 내세워 올 시즌 부상 공백과 불운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그의 자존심을 세워줬고, 장원삼을 2선발로 내세워 설령 1차전을 패배해도 반드시 2차전을 잡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7전 4선승제의 단기전은 장기전의 성격이 있어 시리즈 속에서 흐름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류 감독은 2차전에 주목했다. 2차전을 잡으면 이동일에도 좋은 흐름을 잡은 뒤 원정 3~4차전서도 부담을 덜고 싸울 수 있다고 봤다. 1~2차전서 2승이 아닌 차선책으로 1승 1패를 해도 1차전보단 2차전을 잡는 게 중요했다. 결과적으론 1차전부터 힘을 냈고, 2차전서 대승하며 류 감독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1+1 선발야구도 지금까진 무난했다.
▲ 이유 있는 이지영, 심창민 띄우기
류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심창민에게 기대를 건다고 했다. 이지영에겐 1차전 선발포수 중책을 맡겼다. “큰 경기를 해봐야 좋은 선수로 성장한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경기에서 미래를 도모했다. 포스트 진갑용이 점점 급해지는 삼성이었다. 이지영은 정규시즌서 좋은 포수가 될 기미를 보여줬기에 류 감독이 ‘도박’을 걸 수 있었고, 좋은 활약을 펼쳤다. 1차전도 잡았고, 이지영의 담력도 키웠다.
심창민에겐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권오준의 한국시리즈 합류 불발 때문이다. 사이드암 핵심 불펜투수가 빠지면서 불펜 구색에 문제가 생겼다. 심창민이 반드시 잘해줘야 했다. 또한, 심창민이 큰 경기서 잘해줄 경우 이지영과 마찬가지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류 감독은 정규시즌 막판 심창민에게 “나태하다”는 말로 2군으로 보내 소위 ‘길들이기’를 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서 믿고 투입했고, 심창민도 각종 어려움을 딛고 호투하면서 한 단계 성장했다.
감독 류중일의 치밀함, 그게 없었다면 삼성의 한국시리즈 1~2차전 압승은 없었다. 그의 치밀한 용병술이 새삼 돋보이는 2012년 한국시리즈다.
[웃고 있는 류중일 감독. 사진 = 대구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