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롯데는 그가 트랜스포머가 되길 원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엔 거대한 로봇이 자동차로, 자동차가 다시 로봇으로 변신하며 우주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펼친다. 이들은 인류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힘과 능력을 보여준다. ‘응답하라 1992’가 메아리가 된지 20년. 롯데가 숙원사업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13년만에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와 체질개선을 일궈낸 양승호 전 감독 대신 김시진 감독을 끌어안았다.
롯데는 5일 김시진 전 넥센 감독과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김 감독을 영입하면서 “프로야구 감독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선수 육성 능력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결론은 쏙 빠졌다. 지도자 경험과 선수 육성 능력으로 우승을 일궈내길 바란다는 것. 5일 롯데 서울 사무소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김 감독은 넥센에서 경질된 뒤 2달만에 ‘성적 스트레스’ 세계로 돌아왔다.
▲ 롯데는 넥센보단 갖춰진 팀이다
롯데와 넥센은 완전히 다른 팀이다. 김 감독은 넥센에서 팀을 만들어가는 입장이었다. 늘 부족한 살림살이 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구단 수뇌부는 연이어 핵심 선수들을 팔았다. 그래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때로는 부드러운 옆집 아저씨처럼, 때로는 냉정한 호랑이처럼 선수들을 관리하며 5시즌간 넥센을 끌어왔다. 올 시즌 전반기를 3위로 통과하는 성과도 얻었다.
김 감독은 넥센에선 상대적으로 우승 부담은 덜했다. 후반기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지만, 넥센에선 성적보단 선수 육성 및 팀을 안정 궤도로 집어넣는 데 집중해야 했다. 주어진 환경이 그랬다. 물론 그 역시 성적을 내는 것 이상으로 힘겹고 어려운 일이었다.
롯데는 다르다. 김 감독에게 당장 우승을 원한다. 전력 구성도 우승에 근접했다. 양승호 전임 감독이 화려한 타격의 팀에서 실속있고 투타 균형이 잡힌 팀으로 체질을 바꿔놓고 옷을 벗었다. 롯데 모기업 고위층은 당장 김 감독이 내년 시즌 팀을 최소한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지 못할 경우 탐탁지 않아 할 것이다. 단기전 약체 이미지 탈피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또 하나. 부산 팬들은 넥센 팬들보다 훨씬 극성스럽다. 김 감독은 모기업 눈치에 팬들 눈치까지 봐야 한다. 양 전 감독의 아찔한 경험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 감독의 스트레스 지수가 고스란히 올라갈 것이다. 어쨌든 김 감독이 이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 김시진의 승부사 기질을 원한다
김 감독은 시험대에 올랐다. 넥센에서 보여준 모습 이상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줘야 한다. 사실 김시진 감독은 넥센에서 승부사라기보다 덕장과 믿음,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했다. 롯데에선 때로는 그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우승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모습을 선수들뿐 아니라 경기 중에 상대팀 감독에 보여줘야 한다. 롯데는 김 감독에게 그걸 원한다. 타 감독과의 기 싸움, 경기 운영능력에서 뒤지지 않길 바란다.
롯데는 현재 화려한 야구에서 실속 있는 야구로 가는 중간 과정에 있다. 양 전 감독이 포스트시즌서 승부처를 지배할 수 있는 세밀한 야구를 이식하려 했지만, 냉정하게 볼 때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제 김 감독이 마무리를 해줘야 한다. 과거에 비해 떨어진 장타력도 되살려야 한다. FA 홍성흔과 김주찬의 적극 보호 및 타선 위력 극대화를 위한 묘안을 짜내야 한다. 김 감독의 선택과 결단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 감독의 전공인 마운드에서도 보완할 점이 있다. 불펜은 잘 갖춰져 있다. 이승호의 완전한 부활과 기존 불펜진의 활용은 잘 할 것이다. 문제는 선발진. 온통 불안요소다. 넥센 시절 데리고 있었던 고원준과 함께 군 복무 후 돌아오는 조정훈의 관리 및 쉐인 유먼과 라이언 사도스키의 거취 정리 및 용병 활용 등 김 감독의 손길이 갈 부분이 많다. 김 감독으로선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 3.48로 재건된 마운드를 유지하고 더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 김시진은 트렌스포머가 될 수 있을까
김 감독은 하위권 전력의 넥센을 상위권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후반기에 힘이 부족해 미끄러졌지만, 롯데 모기업 고위층들은 전력이 비교적 잘 갖춰진 이 팀에서 김 감독이 그런 시나리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롯데에선 넥센에서 보여줬던 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냉철한 승부사로의 변신까지. 사뭇 다른 두 얼굴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 롯데에선 일종의 트렌스포머가 돼야 한다.
김 감독의 롯데 사령탑 공식 취임은 아시아시리즈 직후다. 그때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롯데에서의 우승 로드맵을 짜놓아야 한다. 김 감독의 눈 앞에 넥센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더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그 가시밭길을 넘어선다면, 감독 김시진은 새로운 승부사로 재평가 받을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시진 롯데 신임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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