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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를 보면 이천희가 이천희로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저 이기적인 기럭지는 익숙한 이천희의 것인데, 남영동 대공분실의 김계장이 된 그의 모습은 낯설다. 익숙한 얼굴이 자아내는 낯선 분위기가 괜시리 목 뒷덜미를 싸하게 만든다. 그는 고문 가해자를 연기했다.
실제 양수리 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하던 당시, 1980년대 가죽자켓을 입은 이천희의 모습을 목격한 관광객들이 그를 피해갔다고도 말했다.
"촬영하면서 뭔가 이상했어요. 한 달을 계속 대공분실에서 계장으로 살았는데, 양수리 세트장에서 80년대 분위기의 의상을 입고 있으면 관광객들도 '어 이천희?' 하다가 피해가요(웃음). 찍으면서도 '이거 다 찍고 나면 정신병 걸리겠다' 하긴 했었죠. 무엇보다 박원상 형이 가장 힘들었죠. '형, 치료 한 번 받아보세요' 했어요 진짜. 고문 당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몸보다는 뭉개지는 멘탈인데, 언제 내가 잡혀갈지 모르고 어제까지 잘 지내다 집에 가는 길에 끌고가서는 2주를 묶어놓고 때렸으니까요. (박)원상이 형이야 캐릭터 때문에 버텼지만, 실제 김근태 의원은 몸은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고문만 받으셨대요. 그냥 죽여라하는 심정이었겠죠."
이천희는 이토록 힘든 '남영동 1985'를 왜 선택했을까?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려던 차, 그가 먼저 정지영 감독에 러브콜을 보냈다. 전작 '부러진 화살'을 보고 너무 좋았기 때문이란다. '남영동 1985'의 시나리오를 읽고 곧장 정지영 감독을 찾아갔다. 그런데 반전. 정지영 감독은 이천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절 아예 모르셨죠. 그러면서 '너 이런 영화 안 했잖아. 할래?' 하시기에 '하고 싶어요'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김계장에 대해 말씀 드렸어요. 그 자리에서 캐스팅 됐고 준비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상태에서 뒤늦게 들어갔어요."
"촬영에 들어가서는 (박)원상이 형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이거 왜 하고 있지' 했어요. 고문 당하신 분들은 '이거 보고 어떤 기분일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고문하는 행태는 지금도 많아요. 강압수사나 군대에서는 아직도 인권이 없는 경우가 많죠. 그런 일들에 대한 각성 차원에서라도 이 영화는 꼭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김근태 의원의 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면서 서로 지켜줘야 할 것은 지켜줘야 하는데 왜 못지키고 사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영화죠."
이천희는 '영화의 수위가 꽤 세다'라는 말에 "진실은 더 세다"며 "시나리오를 보면서 너무 센 것 아닌가 했는데 실제 김근태 의원의 수기를 보면 더 잔인해요. 영화에서야 롱테이크로 가도 10분인데 실제는 그런 일을 6시간, 8시간 가는 거죠. 그 안에서 별일이 다 생기죠"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도 힘들었던 기억이 됐다. 그러나 '남영동 1985'는 관객을 각성시킨다. 우리가 알면서 모른척 했던 과거의 아픔을 들춰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봉은 22일. '부러진 화살'에 이어 이 영화가 가져올 파장이 기대된다.
[이천희. 사진=한혁승 기자hanfoto@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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