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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지영 기자] 어느 배우나 그렇듯 배우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역할이 동일시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혼란에 빠진다. 그것이 10년 차가 넘은 배우였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극의 중반 '못하겠다' 소리치고 현장을 떠날 수도 없다. 그것이 배우의 숙명이다.
10년 차가 넘은 김정은도 '나 같았으면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할진 데 이제 막 5년 차에 접어든 배우 한채아가 처음 시놉시스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울랄라부부'가 종영하고 2일 뒤 한 카페에서 만난 한채아에게 "왜 이런 역할을 하셨어요"라고 묻자 "저도 이런 역할이었으면 처음부터 안했겠죠?"라고 웃으며 답했다. 정말 우문현답이었다.
사실 한채아는 '울랄라부부' 직전까지도 KBS 2TV 드라마 '각시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채홍주 역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시탈’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채아는 또다시 새로운 캐릭터로 월화드라마 '울랄라부부' 촬영에 돌입했다. 대체 '울랄라부부'의 어떤 매력이 한채아를 끌어들였을까.
"전작 드라마 속 캐릭터가 무거웠잖아요.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히어로'의 윤이온이나 '각시탈'의 채홍주나. 그 무게를 버리고 밝은 느낌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때마침 '울랄라부부'의 밝고 쾌활한 빅토리아를 만났고 이거라면 되겠다 싶었죠."
유부남 수남을 향한 빅토리아의 사랑이 진실하게 그려지면서 이들의 불륜이 마치 금기의 사랑인 양 미화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휴식기도 포기할 만큼 이 드라마에 매력을 느꼈다던 한채아. 그 역시 이 같은 내용이 이어질지 상상도 못했다.
"사실 시놉시스에서는 마지막회나 마지막 전회에서 수남과 여옥(김정은)의 몸이 다시 뒤바뀌는 거였어요. 수남의 영혼을 가진 여옥과 계속 투닥거리면서 코믹하고 유쾌한 드라마가 될 줄 알았죠. 시놉시스 끝자락에는 여옥의 몸을 한 수남이 빅토리아에게 신장을 떼주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또 한 번 갈등이 이뤄지고요. 그런데 이런 내용이 실제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많이 바뀌었죠."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불륜 미화 논란에까지 서다 보니 속이 상했다. 사실 극 초반 빅토리아는 수남과 눈도 못 마주치고, 말도 한마디 못 걸어보는 순수한 여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하지만 쟁쟁한 배우들의 애드립이 더해지면서 극은 예상보다 10~20분 정도 늘어나게 됐고, 감독님은 극을 위해 빅토리아의 부분을 잘라냈다. 그래도 드라마는 첫 회부터 승승장구, 재미있다는 호평과 함께 시청률도 날개를 달았다.
"드라마만 재미있다면 제 부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불륜 미화 논란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만약 그 부분이 편집되지 않았더라면 시청자 분들도 빅토리아를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예전에 빅토리아는 저렇게 뻔뻔하지 않았는데, 미안해했었는데' 하면서요. 빅토리아의 단면적인 이야기만 부각이 되면서 불륜미화라는 말이 시작된 것 같아요."
"저도 멀리서 보면 시청자들 입장이 이해가 돼요. '정말 이런 애가 어디 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대본을 보면서도 '이건 아닌데'하기도 했죠. 저도 여자니까요."
하지만 한채아가 빅토리아였고, 빅토리아는 한채아였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에게 돌을 던져도 한채아만큼은 빅토리아를 이해해야 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니까 실마리를 찾았어요. '빅토리아는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라는 생각. 친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낯선 나라에 가서 또 다시 낯선 부모님에게 버림받았잖아요. 그러던 차에 지금까지 받지 못했던 사랑을 주는 이가 수남이었던 거죠. 다른 사람이라면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랑을 그만뒀겠지만 빅토리아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어요. 내가 너무 아파서 안 되는 거 알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 저는 빅토리아를 그렇게 이해했어요."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빅토리아가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17회에서 빅토리아는 떠나기 전 여옥을 찾아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했어요, 언니. 제가 정말 나빴어요. 그땐 제 사랑밖에 볼 줄 몰랐어요"라고.
"'어떻게 하면 빅토리아를 이해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3개월을 보내다 보니 오히려 빅토리아에 더 많이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17회 여옥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빅토리아가 정말 안타깝더라고요. '너는 왜 이런 일을 했니. 어디서든 당당할 수 없고, 항상 미안해야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자리가 진심으로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빨리 현장을 떠나고 싶고, 역할이었지만 (김)정은언니를 보는 게 힘들었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종방연에서 만난 작가와 감독은 한채아에게 가장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여옥을 맡은 김정은 역시 한채아에게 "만약 내가 너였다면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아. 잘했어"라고 따뜻한 칭찬을 건넸다.
"(김)정은언니나 (신)현준오빠, 모두 저한테 수고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현준오빠도 '힘들었을 텐데 내색 안 하고 진실하게 연기해줘서 고마웠다. 연기선배로서 칭찬해주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제 마음을 알아주셨다니 감사하죠. 작가님도 '한채아가 이렇게 연기할 줄 아는 배우인 줄 몰랐다'라고 하시던데. 배우로서 많이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정은 언니가 드라마가 끝나고 저한테 '힘들었니? 답답했구나 너도. 연기 10년 넘게 해보니 다 그런 게 피가 되고 살이 되더구나'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정말 공감되면서 감사했어요.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이번 역할을 통해서 노력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각시탈'이 잘되고 만약 다음 작품이 잘 돼서 승승장구했으면 이런 노력을 했을까 싶어요. 나 자신과 싸우고 이 배역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면서 또 성숙해지고. 나중에 '울랄라부부'를 돌아봤을 때 다른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배우 한채아.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이지영 기자 jyou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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