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호타준족. 단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 타이틀을 얻기 위해선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박재홍은 '호타준족'이란 표현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파워와 정확도를 겸비한 강타자이면서도 빠른 발을 무기로 누상에서도 상대 배터리를 긴장시켰다.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바꾼 최고의 호타준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프로에 입문하자마자 '괴물'이란 별칭이 붙었다. 프로 데뷔 첫 해에 홈런왕을 차지하고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할 선수가 또 나타날 수 있을까.
박재홍의 플레이는 야구 팬들을 환상에 젖게 했다. 1998년 30홈런을 꽉 채우고 도루는 무려 43개를 기록하면서 생애 2번째 30-30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1999년 가장 극심했던 '타고투저' 시즌 속에 무려 3명의 30-30 클럽 가입자가 배출됐다. 외국인 타자가 득세하고 타고투저 시즌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그 다음해인 2000년 박재홍이 다시 한번 30-30 고지를 밟으면서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이후 30-30 클럽을 가입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엔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을 치렀고 발야구가 득세했다. 외국인 선수는 투수를 선발하는 게 '대세'가 됐다. 그러나 박재홍의 근처라도 따라갈 선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시대를 탓하기만은 어렵다. 그만큼 특별했다는 것이다.
이승엽이 2003년 56발을 쏘아 올리고 일본으로 떠났을 때, '포스트 이승엽'이 나타날지 관심을 모았다. 물론 이승엽이 떠난 후 50홈런 타자는커녕 40홈런 타자도 단 1명(2010년 이대호)이 배출됐을 뿐이었다. 그래도 당시에 언급할 선수는 있었다.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를 펼친 심정수를 비롯해 프로 3년차까지는 이승엽보다 홈런 개수가 더 많았던 김태균이 꼽혔다.
박재홍이 떠난 지금, '포스트 박재홍'으로 언급할 선수는 찾기 어렵다. 반드시 꼽아야 한다면 최정과 전준우 정도다.
최정은 지난 해 20-20 클럽을 달성했지만 아직 30홈런이나 30도루를 달성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전준우는 2010년 19홈런 16도루를 올리며 향후 30-30 클럽을 노릴 유망주로 꼽혔지만 1번타자로 타순이 바뀌면서 출루에 신경을 쓰느라 장타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가 되야 박재홍급 대형 선수를 만날 수 있을까. 워낙 큰 획을 긋고 떠났기에 후계자를 찾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박재홍의 현역 시절 타격 장면.(사진 위)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박재홍.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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