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헤엄치는 3D 미스터리 드라마
2006년도 '아프게 살아가기', 2008년 '가위 바위 보', 2009년 '88, 세대들', 2010년 '괴롭히는 여자' 등의 단편영화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은 초현실적 연출을 통해 한국의 '데이빗 린치'로 주목받은 박홍민 감독의 첫 장편영화 '물고기'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코펜하겐국제영화제, 벤쿠버국제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독립영화다.
특히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고 제31회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부문 특별언급 수상 등 해외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지연(최소은)의 행방을 찾기 위해 흥신소에 의뢰한 교수 전혁(이장훈)은 아내를 찾았다는 흥신소 직원(김선빈)의 말에 강의도 휴강하고 무작정 진도로 내려간다.
진도에서 만난 흥신소 직원은 아내가 무당이 되어 가사도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아내가 무당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혁은 흥신소 직원과 함께 아내를 찾으러 가사도로 향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하며 궤변을 주고받던 나이든 낚시꾼(박노식)과 젊은 낚시꾼(권용환)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는다. 월척의 기쁨도 잠시, 갑자기 잡힌 물고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기괴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고속도로를 방황하던 진혁이 교통경찰에게 목이 마르다며 황급히 휴게소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물고기'는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는 남자와 흥신소 직원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영화 중반까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낚시꾼 장면이 교차로 전개되면서 주인공인 진혁만큼이나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또한 3D야말로 불거리 위주의 액션, 판타지, 공포, SF 장르에서 영화의 스펙터클과 사실성을 구현하여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7000만원의 저예산인 이 영화를 왜 구태여 3D로 제작했는지 처음엔 의구심이 들지만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3D연출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이 영화의 특성상,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영화의 공간이 칙칙하고 어두운 3D로 미묘하면서도 몽환적인 공간의 괴리감을 자아내 "아트필름과 3D필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장벽을 허물어줬다"라는 코펜하겐 국제영화제의 호평에 수긍이 간다.
그런 만큼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일상적 공간을 자연스럽게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이동시키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통제하는 박홍민 감독의 연출기법이 신선하다.
"교수님이 사모님 찾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모님이 교수님 찾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하시나?"라는 흥신소 직원의 말처럼 이 영화는 무당이 된 아내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무당이 되어가는 여성과 한 남자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이야기로 과학과 초자연적 현상이 뒤섞이고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세상을 펼쳐놓는다.
"이 영화는 나에 대한 반성이자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평생 한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을 위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2008년부터 수십 차례 진도를 방문해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했던 토속적인 무형문화재에 대한 경외감을 담으려 노력했다"라는 박홍민 감독의 연출의도처럼 중요무형문화재 제 72호인 전라남도 진도 씻김굿(죽은 이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어 극락으로 보내는 굿)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남자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유(有)의 세계와 무(無)의 세계를 통하는 무당, 죽은 자의 혼을 건지는 의식인 씻김굿과 맞닿아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허물어버린다.
무당과 굿, 그리고 거울을 통해 인물들이 처한 현실과 비현실의 혼란스러움을 전하는 물 밖으로 뛰어든 '물고기'는 잡힌 것인지, 아니면 잡힐 것인지, 주인공이 관객일 수도 감독일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만큼 어렵게 느껴지지만 보여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새로운 두근두근 시네마로 손색이 없다.
"잠시 들어 왔을 뿐,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지연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물고기' 스틸컷. 사진 = 미로비젼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