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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배우 윤은혜는 달라져 있었다.
MBC 드라마 '보고싶다'의 이수연보다 머리가 조금 짧아져 어깨를 약간 넘는 정도였고,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색을 띄고 있었다. 목소리는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보고싶다' 마지막 촬영 때는 병원에 실려가 링거를 맞고 돌아와야 할 정도로 몸은 엉망이었고, 지금도 예전의 컨디션은 되찾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또렷했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적인 질문을 했을 때에도 기사로 공개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사적인 답변을 해줬다. 뒤늦게 "거짓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솔직하고, 진심이다'란 느낌이 남았다.
의외로 이수연에게서 빠져 나오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보고싶다'에서 이수연이 치유 받았기에, 이수연을 연기한 윤은혜도 치유 받은 채로 드라마를 빠져 나왔다. 시청률에도 연연하지 않았다고 했고, 정체됐던 시청률에 대해선 나름의 분석도 가지고 있었다. 이수연을 연기한 자신에게 스스로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을 때는 "후한 점수를 안 주는 편이다. 그래도 칭찬해주신 부분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대견스럽게도 느낀다. 하지만 난 단점들과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이 더 잘 보인다. 높은 점수를 주진 못한다. 많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몇 점이냐"라고.
"부족해서 90점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렇게 잘했나요? 제가?" 하고 웃었고, 재촉하는 목소리에 결국 "진짜 많이 줘서 70점"이라고 얘기했다. 자신의 연기에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짚어 달라는 요청에는 "단점은 얘기할 수 없다. 얘기를 하면 그것만 보인다. 대신 스스로 잘 고쳐나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보고싶다'가 아동 성폭행 피해자인 이수연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지 못한 것이나 엔딩에서 이수연을 주체적이지 못한, 지극히 수동적인 여자로 그렸던 것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런 얘기를 윤은혜와 나눴을 때, 대신 이수연을 연기한 윤은혜가 누구보다 이수연을 잘 이해하고 있었단 걸 알았으며, '보고싶다'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을 때는 "여러 가지 고충이 있었지만, 내가 '보고싶다'를 보고 위로 받은 느낌을 많은 분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란 말을 하기도 했다. 비극적이지 않은 결말도 이수연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엔딩이었다고 강조했다.
단 이수연의 어린 시절이었던 배우 김소현의 연기를 보면서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안 좋은 기사가 나오는 편인데, 아이들까지 연기를 잘하니까 불안했다. 방송 전에 소현이의 촬영분을 봤는데, 정말 잘하더라. 그때도 불안했는데, 방송이 되고 난 뒤 더 연기를 잘하는 게 느껴졌고, 예상했던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인 배우들이 아역 배우들의 바통을 이어갈 수 있을까?' 같은 기사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고, 잘해도 본전일 거란 생각에 큰 기대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촬영장에 가는 게 즐겁지 않고, 남의 밥상에 숟가락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극 중간에 투입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진행돼 있는 단계에 내가 들어가 평가 받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수연이 캐릭터는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절제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사실 좋은 반응을 포기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막상 내 분량이 방송된 뒤 좋은 얘기들을 해주시는 걸 보면서 '웬일이지' 싶은 마음이었다.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확 풀리더라. 그 뒤로는 마음 놓고 더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 이후 윤은혜에겐 부담감이 생겼다. 다시 그 정도의 관심을 받아야만 할 것 같고, 스스로 작품을 이끌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 "마음처럼 안 되는 부분이 생겼고, 오해를 살 때도 있었다.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신 멜로를 못할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가수 출신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날 바라보는 시선들에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나름의 기대가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기대가 있었다.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소심한 성격에 신경이 쓰였다. 두려웠다. 주변에서도 내가 상처를 받진 않을까 '괜찮다'고 위로하지 못했다. 친구와 통화하면서 혼자 눈물 흘리고 그러던 때였다" 하고 윤은혜는 고백했다.
그렇지만 윤은혜는 결국 그 시기를 극복해냈다. 스스로 만들어낸 압박감을 자만할 수 없는 계기로 삼았고, 배우로서 연기에 정성과 진심을 다하면 누군가는 인정해준다는 것도 배웠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을 지우는 대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최한결과 함께 영원히 남겨둔 채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윤은혜는 '보고싶다'의 이수연으로 자신의 배우 인생에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어떤 여배우도 쉽지 않았을 이수연이었으며 윤은혜는 곧 이수연이었다. 그래서 70점이란 점수는 윤은혜에게 적당한 점수라고 생각한다. 30점은 윤은혜가 아직 채우지 못한 여백이고, 윤은혜가 앞으로 꼭 보여줘야만 할 잠재된 능력이기 때문이다.
[배우 윤은혜. 사진 = 더하우스컴퍼니엔터테인먼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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