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구리에서 3일 열렸던 여자프로농구 KDB생명-신한은행전. 지난 1월 8일 3대3 맞트레이드를 한 팀들의 첫 맞대결이라 관심이 많았다. 경기가 시작되니 관심의 초점은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들이 아니라 KDB생명 벤치에 쏠렸다. KDB생명은 이날부터 이옥자 감독과 이문규 코치의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이 코치가 감독처럼 일어서서 경기를 운영했고, 작전타임에도 직접 패턴을 지시했다. 대신 이 감독은 코치처럼 벤치에 앉아있었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도 이 감독이 아닌 이 코치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 일까. 쉽게 말해서 KDB생명이 이옥자 감독에게 지휘봉을 내려놓게 한 것이다. 그러나 경질은 하지 않았고, 호칭도 그대로 사용한다. 단지 역할만 바꿨다는 게 현장과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단과 이 감독, 이 코치 합의 하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 이옥자 감독의 순탄하지 않은 프로데뷔 시즌
이 감독은 국내 프로스포츠 여성 감독 2호다. 여자프로농구로만 한정하면 처음이다. 이 감독은 과거 일본 샹송화장품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WKBL 최고령 감독으로서 지도자 경력은 후배 남자 감독 5명보다 많다. 그러나 프로 경력은 가장 적다. 일본에선 실업 선수들을 지도한 것이었다. 프로와 실업은 천지 차다. 여기서 오는 괴리가 이 감독을 혼란스럽게 했다.
챌린지컵 결승전이 끝난 지난달 19일 이 감독은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룰도 다르고, 선수 관리 방법도 다르고, 일본 선수와 한국 선수들의 특성도 달랐다. 그 시행착오의 결과는 냉혹했다. 우승후보라던 KDB생명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7연패에 빠졌을 땐 경질설이 나돌기도 했다. 뒤늦게 이 감독은 “이젠 감을 잡았다”라며 3대3 트레이드 후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했었다.
2연승을 거두며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1일 KB에 패배했다. KB는 4위를 달리고 있는 팀.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4위에 들기 위해선 KB를 잡았어야 했지만 맞대결서 패해 2경기 손해를 봤다. 3일 신한은행을 이겼지만 KDB생명의 대역전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에 구단이 결단을 내렸다. 이옥자 감독은 4일 마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서 “성적을 내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구단과 합의 하에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 KDB생명의 고육지책? 이 감독은 어떻게 되나
감독과 코치가 역할을 바꿨는데 호칭은 그대로다. 이 감독 입장에선 경질을 당하면서 팀을 떠나는 것보다 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성적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단의 분위기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포스트시즌 진출 불씨를 살리기 위해 감독, 코치, 선수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이 나온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바뀐 첫 경기서 이기긴 했으나 남은 경기서 선수들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농구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감독의 경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다. 이에 김경철 KDB생명 사무국장은 “국내 최초 여성 농구 감독이다. 이대로 감독님을 경질하면 다시 여자농구에 여성감독이 들어오기가 힘들다. 우린 감독님을 최대한 배려하고 싶다. 상황에 따라 남은 경기서 감독과 코치 역할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물론 이 감독은 “역할이 다시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일축했다. 구단과 이 감독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올 시즌 후 이옥자 감독과 이문규 코치의 거취에 관심이 간다. 2년 계약을 맺었으나 이미 이 감독의 지휘권이 박탈된 상황에서 계약기간은 의미가 없어졌다. 김 국장도 이를 인정했다.
[이문규 코치와 이옥자 감독(위), KDB생명 선수들(아래).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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