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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 배급 CJ엔터테인먼트)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몇 떠올려보자.
많은 장면들이 있지만, 하정우가 양면으로 된 재킷을 뒤집어 입는 장면, 베를린의 스산한 풍광을 트렌치코트를 입은 전지현이 걸어가던 장면은 기억에 꽤 또렷하게 남아 있다. 꽤 많은 여성관객들이 전지현의 트렌치코트를 검색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성관객들도 하정우의 양면 재킷을 탐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한석규와 이경영의 트렌치코트도 꽤 멋스러웠다. 류승범의 빈티지스러운 잠바 역시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의상을 담당한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를 최근 신사동에서 만났다. 영화 크랭크인을 겨우 2주 앞두고 급히 투입됐다는 그는 의상팀의 스케줄 역시도 영화만큼이나 긴박했다고 했다.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베를린' 팀이 모두 동의한 의상에 관한 의견은 '절대 북한스러워 보이지 말자'였었다고.
“북한 사람이지만 베를린에 살고 있는 이들이에요. 베를린과 너무 동떨어져 보이는 느낌이 나면 안됐죠.”
처음 시나리오를 본 그는 트렌치코트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류승완 감독 역시도 그의 의견과 같았고, 주인공 배우들의 트렌치코트를 찾는 007을 방불케 하는 작전이 시작됐다.
먼저 전지현.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는 “전지현의 의상의 경우, 북한스럽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어울리는 느낌. 여자가 가진 절제된 느낌을 표현하는 게 중요했어요”라고 말했다.
미팅과 콘셉트 회의, 의상을 구하러 발품을 파는 등, 1~2시간 정도 쪽잠을 자는 강행군 속에 어느 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다 찾아낸 것이 지금의 전지현의 트렌치코트. 신진 디자이너 조주연 씨의 매장에서 찾아낸 지금의 코트는 전지현 캐릭터의 느낌에 맞춰 새로 제작에 들어갔다.
“두 벌의 트렌치코트가 있었는데 한 벌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한 벌은 컬러가 마음에 들었어요. 결국 마음에 드는 부분만으로 새로 제작해야했는데 독일 촬영을 앞두고 있어 시간은 딱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탁을 드렸어요. 디자이너 분과 제가 서로 바빠 그 때부터는 전화로 의견을 조율하고 우체통에 물건을 남기고 찾아가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힘들고 정신은 없었지만 완성본은 생각보다 잘 나와 모두가 만족했죠.”
그런가하면 한석규의 트렌치코트는 우연이 발굴한 보물이 됐다. 많은 트렌치코트를 입어보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의상은 찾기 힘들었다. 한석규가 연기하는 정진수 캐릭터는 무언가 조직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이었기에, 첩보 영화 캐릭터 특유의 멋스러운 느낌보다는 기러기 아빠 같은 외로운 느낌을 전하고 싶었고, 그에 부합하는 의상을 찾아야만 했다.
“한 번은 류승범 씨와 의상을 구하러 광장시장을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길이감도 적당하고 옛스러운 트렌치코트가 있더라고요. 가격도 2~3만 원대로 저렴했죠. 안 입어도 싸니까 하며 샀는데 한석규 선배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저희가 생각해도 꽤 재미있게 찾아낸 것 같아요.”
반면 하정우의 양면재킷은 꽤 고가라고 한다. 아무래도 양면을 다 살려 특수제작을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재킷이 양면으로 들어가다 보니 자연히 제작비는 올라갔죠. 이 재킷은 요원이 작전을 수행하다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 옷만 뒤집어 입어도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목 폴라를 똑딱이로 만들어 뜯을 수 있도록 제작하고, 안경을 벗고 재킷을 뒤집어 입으면 완전히 다른 옷이 되게끔 제작해어요. 앞면은 포멀한 그레이 하프코트인데 뒤집어 입었을 때는 깔깔이(방한 내피) 느낌이 나잖아요.”
그리고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는 의상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배우는 류승범이라고 밝혔다. 본인의 옷까지 직접 가져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직접 광장시장을 찾는 등, 열의를 보였다고. 그러나 이는 스스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패셔니스타이기 이전 배우인 류승범은 본인이 멋스러워 보이는 의상이 아닌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하는 의상을 찾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는 “배우들까지 광장시장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경우는 드물어요. 저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죠. 류승범 씨, 류승완 감독님을 비롯 하정우 씨와 배정남 씨 등 배우들이 직접 광장시장에 출동한 날은 시장이 그야말로 뒤집어졌죠”라며 “그 중에서도 류승범 씨는 의상에 관해 터치할 수 없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어요. 제가 한 일은 함께 상의하고 도와드리고 필요한 여분을 제작하는 정도였어요. 본인이 그만큼 잘 어울리는 의상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죠. 워낙 타고난 감각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류승범이 연기한 동명수는 가장 최근까지 북한에서 산 인물. 북한 내에서는 엘리트이지만 베를린과는 가장 동 떨어진 인물인터라 다른 인물들과 달리 너무 세련된 느낌이 나와서는 안됐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한 류승범은 북한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아이템을 찾아냈다고 한다.
영화만큼이나 긴박했던 그러나 그만큼 의미있었던 '베를린' 작업을 끝낸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는 "영화의상은 전체를 보는 것이 중요해요. 처음에는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 실수도 많았고, 지금 역시도 엄청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라며 "그래도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뻔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작업은 철저한 공동작업이기에 팀웍이 중요하죠. 감독은 물론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작업이에요"라고 말했다.
# 신지영 스타일리스트는 영화 '불어라 봄바람'의 의상팀 막내로 영화의상 일을 시작했다. 이후 이다해, 차수연 등 배우들의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7년을 일했다. 그러나 다시 영화 의상이 좋아 저예산 영화를 통해 영화계로 복귀했다.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의상팀 팀장으로 일했다. '이태원 살인사건', '풍산개' 등의 의상도 담당했고, 한재덕 PD와의 인연으로 '베를린' 팀에도 투입됐다.
[영화 '베를린'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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