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박훈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력도 화려하다.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의 각본을 썼고, '혈투'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그런데 화려해도 너무 화려하다. 이 영화들이 그가 작업한 영화의 전부다. 그야말로 짧고 굵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영화인이다.
이런 그가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신세계'로 관객들 곁을 찾았다. 박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신세계' 역시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다. 극중 정청(황정민)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인 '브라더'의 세계가 여과 없이 펼쳐진다. 한층 더 스타일리시해졌고 감정의 밀당도 자유자재다.
물고 물리는 '신세계' 속 상남자들의 세계는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가 연기했다. 누구 하나 밀리는 법이 없다. 각기 다른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긴장감을 선사한다.
박 감독은 "책을 다 썼을 때부터 캐스팅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주연이 3명인데 다들 기가 센 캐릭터고 본인들이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배우들이 볼 때 애매하다. 하지만 강과장 역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맡고 난 후부터는 쉬웠다. 아무래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박혀 있으니, 다른 배우들이 볼 때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세 사람의 대립이 주된 포인트다. 어느 쪽이 빠져보이지 않아야 긴장감이 살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균형을 잡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워낙 센 배우들이라 잘못하면 과잉이 될까봐 걱정을 했는데 역시 노련한 분들이었다. 본인들이 과잉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자기 것만 보지 않고 전체 판을 본 후 그 선을 넘어가지 않더라"라고 세 명의 배우들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영화에서 특히 주목받은 인물은 자성 역으로 분한 이정재다. 경찰이지만 8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국내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 조직의 실세인 정청의 오른팔이 된 자성은 자신을 장기판의 말처럼 생각하는 강과장과 형제애로 대해주는 정청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한다.
박 감독은 "이정재 본인이 굉장히 연기를 잘 했다. 준비가 잘 돼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한 티가 난다. 원래 자성이라는 역이 어렵다. 뭔가 보여줄 게 있어야 하는데 일단 그게 없고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다. 그 안에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이정재에게 스트레스가 됐을 것"이라며 "피부도 거칠어지고 점점 야위어갔다. 스트레스를 받아 있는데 난 그게 좋더라"라고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로서 실제 자성이 된 이정재의 모습에 기뻐할 수 밖에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이정재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대표작을 추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생을 한 만큼 보람이 뒤따른 셈. 이처럼 걸출한 배우에게 새로운 타이틀을 달아준 박훈정 감독이지만 그에게 영화는 알면 알수록 더 어려운 예술이다.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부담도 됐다. 작품을 하면 누구나 그럴 것"이라며 "작품을 쓰거나 할 때 느끼는 것인데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영화라는 게 알면 알수록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모르면 오히려 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쉽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자꾸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고 자신을 낮췄다.
아직 차기작이 확실히 결정되진 않았지만 써 놓은 시나리오도, 현재 집필 중인 시나리오도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같은 장르를 빼고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다. 남자들이 이야기가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지만, 남자들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반면 여자들의 세계는 도무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다.
박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나 코미디, 멜로 같은 걸 쓰고 싶은데 못 쓰니까 안 쓰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뒤 "나도 말랑말랑하고 감성 돋는 작품을 쓰고 싶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어쩌겠냐 잘 하는 걸 해야지. 노력은 하고 있다"고 농담기 어린 말을 전했다.
'신세계'를 선보인 박훈정 감독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혹시나 느와르 장르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느와르 장르가 유난히 안 된다"며 "부담도 된다. 우리가 이 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었는데 잘 안 되면 느와르는 앞으로 한국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장르가 돼 버린다. '신세계'가 어느 지점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해야 앞으로도 느와르 장르의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 '신세계'의 스토리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 했다. '볼만하네', '어렵지 않네'라는 생각이 드는 느와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또 그렇게 만들었다"며 "예상 스코어는 감히 뭐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훈정 감독.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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