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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나는 타고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기초부터 밟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 혼자 발버둥을 쳤다.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게 열심히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최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배우 김성령이 불혹의 나이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계기를 털어놓으며 했던 말이다. 김성령은 이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 속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배움에 대한 열정을 넘어 배우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김성령의 입학은 23년차 연기자가 새파란 신입생들과 섞여 다시 연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김성령의 시작은 화려한 스타였다.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 그는 당시 영화, 드라마, CF 등 러브콜이 쇄도했다.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 주연으로 발탁돼 신인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작품을 수차례 거절했고 점차 그를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김성령은 그 이유에 대해 "일이 너무 쉽게 들어와서 그랬던 것 같다. 차근차근 조연부터 밟아가지 않고 미스코리아가 되고 단번에 주연이 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성령의 이 발언을 듣고 있자니 몇몇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떠올랐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 쌓아놓은 인지도와 팬덤으로 다른 신인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라마, 영화의 주조연 자리에 쉽게 안착한 그들 말이다. 물론 그들이 어떤 식으로 드라마에 합류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누구나 연기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고 그것이 아이돌 출신이라 해서 무시당하거나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연기력에 대한 것이다. 아이돌이 작품 속에서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이에 비춰볼 때 실제로 몇몇 아이돌들은 작품 속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들의 연기는 때때로 놀라울 정도라 아이돌이라는 후광을 잊게 만들기도 하고 몇몇은 아이돌로 활동할 때보다 연기자로 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은 답답한 연기력으로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들 중에는 어색한 발음이나 시선처리 등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삐걱거리는 이들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솔직하게 묻고 싶다. 본인 스스로 연기에 대해 얼마만큼 열정과 절실함이 있는지.
물론 이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연기하는 아이돌 개인에게 전부 돌려서는 안 된다. 소속사 시스템의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속사에서는 아이돌 연기자들이 곧잘 연기가 가능하다 싶으면 연기에 대한 철학이나 깊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투입 시키고 그렇게 이미지만 소비하다 끝나는 일이 종종 있다.
문제는 그렇게 쉽게 시작한 연기에는 절실함도 소중함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역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신인배우와 단박에 비중 있는 역할을 꿰찬 아이돌 중에 누가 더 작품의 절실함을 느낄까. 어렵게 얻어야 소중함도 더 느끼는 법이다.
그래서 40대 여배우 김성령이 "주인공을 해보고 싶다"는 발언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는 연기자로 생활해오며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교훈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돌 연기자들이 김성령에게서 이 같은 교훈을 배웠으면 한다. 상대적으로 쉽게 얻어지는 그들의 기회가 흔치 않은 것임을 절실히 느끼고 또 그 덕분에 김성령처럼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빛날 수 있는 연기자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배우 김성령.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SBS 방송화면 캡처]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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