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 류승완의 장점? 예산과 시간을 초과하며 잘 찍는 것은 누구나 한다!"
"'베를린'은 영화인 강혜정의 전환점이 된 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영화 제작사, 외유내강은 남편 류승완 감독과 아내 강혜정 대표의 성을 딴 이름이다. 이 탁월한 제작사의 이름처럼 류 감독과 강 대표는 둘이 하나가 돼 비로소 완성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번져 나오는 부부다.
충무로 액션키드에서 이제는 그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인생을 새삼 들추어본다면, '그의 뒤를 받쳐준 아내 강혜정 대표가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류 감독의 영화인생이 지금만큼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은 더욱 길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부당거래'로 많은 칭찬을 들었던 류승완 감독에게 고예산 영화 '베를린'은 어쩌면 큰 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이 아니라, 류승완 감독 스스로도 그의 우울증을 공공연히 고백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너무 큰 숙제를 부여받은 감독은 불면에 시달렸고, 씻는 시간이라도 아껴볼까 삭발까지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그의 심적 부담감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이렇게 류승완 감독이 현장에서 스스로를 담금질 할 때 그의 아내이자 제작사 대표인 강혜정 대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가 완성돼 700만 관객돌파라는 훌륭한 결과를 낸 지금에야 사람들은 부부가 영화를 만들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결과론적 공식을 내놓지만 '베를린'까지 걸어오는 모든 인생의 과정에서 이 부부는 어떤 이야기로 상대와 스스로를 토닥였을까.
영화계는 '베를린'의 성공으로 '부부 영화인'들을 새삼 조명하고 있지만, 강혜정 대표는 '부부가 함께 영화일을 한다는 것'은 "함께 식당을 하는 것이나 포장마차를 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진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강혜정 대표가 일을 함에 있어 더욱 고민이 됐던 부분은 '부부라서'가 아니라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강혜정 대표는 세 아이의 어머니다. 복지 좋은 대기업을 다니다가도 아이를 낳으면 퇴사를 하는 일들이 여전히 많이 일어나는 이 땅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영화일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고 한다.
"제가 생각해도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면서 영화일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에요. 친정엄마 고생도 말이 아니었죠. 또한 제가 다른 커플들보다 일을 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해요. 사실 '베를린'을 끝내고 나서야 '앞으로 나의 영화인생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제 막내가 9살이 됐으니 내가 나의 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가져도 되겠구나 싶은 거죠. 사실 그 전만해도 늘 가정이 7, 일이 3이었어요. 그런 균형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중심을 어느 한 곳에도 잡지 못하고 일과 가정 사이 치인다고 생각했다면 지쳐서 오래 못했을 거예요. '짝패'를 만들 때 회사를 만들었으니까 그때가 막 막내가 태어났을 때죠. 젖몸살인 채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기준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역설적으로, 일적인 성취를 많이 하지 못해도 욕심 부리지 않은 것이 오래 버틴 이유가 된 셈이죠. 사실 류 감독도 내게 다른 날고 기는 여성 영화인들이 이룬 것들을 바랄 때가 있었어요. 그 때 냉정하게 말했죠. '그 사람들은 당신 애 안 키워. 난 당신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어. 치열하게 요구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은 아니야. 더 우왕좌왕하게 돼.' 공감하더라고요(웃음)."
자연히 강 대표는 류 감독에게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다만 시나리오 과정에서는 티격태격하며 감독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조율했다. '베를린'도 마찬가지.
"'베를린'의 순제작비가 80억이 넘어가면서 류 감독은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 레퍼런스라고 했지만 나는 '쉬리'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남자들은 액션에 열광하지만 여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니까. 류 감독은 굉장히 버럭했죠. '쉬리'는 결단코 그 사람 취향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시나리오를 디벨럽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됐어요. 전지현의 영향도 컸죠. 그 배우가 들어오면서 드라마의 중심도 련정희로 이동된 부분이 분명 있고, 내연이 깊어졌으니까."
"제 스타일은 감독과 PD와 기획을 하고 시나리오 나올 때까지의 과정에서는 치고박고 치열하게 싸우지만 시나리오가 나오고 캐스팅이 완료되고, 파이낸싱까지 되고 나면 일절 코멘트를 하지 않아요. 철저히 감독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이제부터 감독은 나랑 약속한 예산과 스케줄을 지키면 되는 거예요. 또 시나리오가 괜찮은 데 영화가 후지게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시나리오가 후진데도 연출력이 뛰어난 감독들로 영화가 잘 나오는 반대의 경우는 더러 있어도 제 경험상 이미 시나리오에서 그릴 수 있는 만큼의 미니멈은 나오니까."
이는 류 감독이 강혜정 대표의 표현에 의하면 '직업윤리가 강한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류 감독은 예산과 스케줄을 오버해서 찍는 사람이 결코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존경하기도 하죠. 예산을 오버하고 스케줄을 오버해서 잘 찍는 것은 누구나 해요. 그것을 다 지키며 최대치를 뽑아내는 것이 힘든 일이죠. 사실 그런 감독이기에 '베를린'을 힘들어했던 것이기도 해요. 해외촬영이 있는 영화를 준비하면서 꽤 버거워했죠. 예산도 '부당거래'의 3배 이상이 뛰었으니까. 사실 '베를린'은 류승완 감독 최고의 성적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실감이 잘 안나요. 여전히 둘 다 초긴장 상태이기 때문이겠죠. 특히나 감독으로서의 압박감이 컸을 거예요. 그래도 '베를린' 이후 우리는 달라져있겠죠. 저도 류 감독도 이제 뭐든 할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붙어있을 거예요."
'베를린' 이후 두 부부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또 이제 세 아이를 번듯하게 키운 강혜정 대표의 영화인으로서의 인생은 얼마나 다채로울까.
그녀의 취향은 액션키드 류승완과는 사뭇 상반된 '시네마 천국', '인생은 아름다워', '아무르', '더 헌트', '밀양' 등등. 지금까지 류승완 감독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창작자를 서포트하는 대신 제작자로서 늘 그러했듯 책임을 지겠다는 강 대표는 "'베를린'을 하고나서 제 영화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 이 압박감이 큰 영화를 이겨내면서 앞으로 내 영화를 어떻게 할 수 있겠다 혹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녀는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여전히 영화는 사회적 역할이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기에 오락으로서가 아닌 우리 역사에서 한 번은 짚고넘어가야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선 제 인생의 깊이가 있어야 하겠죠"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귀띔했다.
[제작사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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