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만 타이중 김진성 기자] 예고된 참패다.
한국이 결국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 5일 대만 타이중 인터콘티넨탈구장에서 열린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B조 최종전서 대만에 승리했다. 그러나 한국은 TQB에서 3위로 밀려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됐다. 곧장 짐을 싸서 6일 귀국길에 오른다. 도쿄행 비행기 대신 인천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1회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던 대표팀은 이번 3회 대회서 1라운드 탈락이란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됐다.
야구의 성격상 강팀이 약팀에도 질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불운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 1라운드 탈락을 단순히 불운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알고보면 작은 틈새 사이로 불안감이 피어올라왔고, 작은 틈이 조금씩 커지면서 큰 구멍이 되고 말았다. 한국야구의 WBC 1라운드 탈락은 예고된 참패다. 이건 타이중 참사다.
▲ 선수선발부터 잡음, 결속력 다져봤지만…
이번 대회는 선수선발부터 잡음이 심했다. 지난해 가을. 메이저리거 추신수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류현진을 예비명단에 포함하면서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여기에 일부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이유로 대회 참가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KBO는 대회가 코 앞인 지난 1월까지 7차례나 엔트리를 교체했다. 때문에 최상의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 좌완 빅3의 불참과 추신수의 제외로 최근 몇 년간 구성된 대표팀 중 가장 약한 전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류중일 감독은 새롭게 뽑은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간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진갑용을 주장으로 선임했다. 선수들은 실제로 지난달 중순 설연휴가 끝나자마자 소집돼 지난달 12일 곧바로 대만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러나 처음부터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100% 소집되지 못하다 보니 팀 자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하고자 하는 의지와 훈련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2%가 있었다.
예를 들어 왼손투수 라인업은 확실히 이전보다 약했다. 타선도 예상 외로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2루와 3루 백업은 끝내 메우지 못한 채 대회에 돌입했다. 대만전서 갑작스럽게 주전 3루수 최정이 부상을 입어 선발출전하지 못했고, 류 감독은 부랴부랴 강정호를 주전 3루수로 기용했으나 이날 경기 내내 3유간은 불안했다.
▲ 장기 전훈, 컨디션 조절 실패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장기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지난달 12일부터 지난 1일까지 도류구장과 인터콘티넨탈구장에서 훈련을 했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각 팀이 대표 차출에 협조한 결과 비교적 넉넉한 훈련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기 전지훈련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지훈련서 대표팀 선수들은 좀처럼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WBC라는 대회 자체가 각국 정규시즌 개막을 1달 앞두고 실시하는 대회다. 선수들이 자연히 컨디션을 경기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는 게 어렵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은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번 대표팀 훈련 강도는 유례없이 셌다. 류 감독은 선수선발 잡음을 없애면서 조직력을 다지고, 어차피 정규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들을 위해 몸의 리듬을 빼앗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이게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독이 됐다. 장기적인 흐름으로 봤을 땐 강훈련을 실시하는 게 당연했으나 가장 중요한 본 대회 개막인 3월 초에 맞춰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했다. 연습경기서 연이어 타선이 침묵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전 참패도 결국 타자들의 컨디션 조절 실패가 주 원인으로 지적됐다.
뒤늦게 호주전서 방망이가 터지긴 했으나 홈팀 대만전서 다시 침묵하면서 1라운드 탈락의 원인이 됐다. 투수들도 구속을 140km 이상으로 손쉽게 끌어올리지 못했고, 일부 투수들은 컨디션 조절 실패로 본 대회서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전력이 극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은 객관적 전력의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 최근 수년간 새로운 동력 수혈 사실상 실패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보면 이번 대회는 결국 최근 몇 년간 정체된 한국야구의 수준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야구인들 사이에선 경기력 하락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어딘가 모르게 접전 상황에서 타이트한 맛이 떨어지고, 맥 없는 플레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잦았다는 게 야구인들의 설명이었다. 한 야구인은 일전에 “2009년 WBC 이후 각 팀에 새로운 피가 옳게 수혈되지 못해 정체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표팀 주축들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멤버, 2009년 WBC 준우승 멤버들이다. 이후 한국야구는 세대교체에 사실상 실패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은 꾸준히 배출됐으나 그들이 기존 주전들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2006년 류현진 이후 순수 고졸 신인 괴물이 탄생하고 있지 않은 점, 최근 몇 년간 계속 중고신인이 신인왕에 선정됐다는 점 등은 한국야구의 혈액순환이 원활하다고 할 수 없는 증거다.
한국야구는 타이중 참사를 맛봤다. 그냥 넘길 게 아니다.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세계야구는 빠른 속도로 평준화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2라운드행, A조 브라질의 선전 등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거엔 변방으로 치부됐던 팀들이 이젠 전력을 끌어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여전히 한국야구는 세계 정상급이다. 그러나 여기서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 WBC 참패를 계기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마야구 지원, 경기장 인프라 문제, 9~10구단 유입으로 인한 경기력 하락 우려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타이중 참사는 한국야구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걸 알려주는 적신호다.
[한국 선수들. 사진 = 대만 타이중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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