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조인식 기자] 아직 2라운드조차 채 끝나지 않았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이미 끝난 분위기다. 한국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탈락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표팀은 비록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2승을 거둬 2승 1패라는 나쁘지 않은 표면적 결과로 대회를 마감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3경기에서 2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내용은 답답했다.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
이러한 경기력 논란과는 별개로, 대체로 모두가 한 목소리로 비판한 것이 있다. 바로 1라운드 순위결정 방식이다. 2라운드는 지난 2009년 대회와 같이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이기 때문에 점수에 관계없이 승패만이 중요한데, 1라운드는 승패에서 동률을 이룰 경우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는 TBQ(Team Balance Quality)라는 생소한 용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TBQ란 잘 알려진 대로 (득점/공격한 이닝)-(실점/수비한 이닝)을 계산해 나온 값이다. 똑같이 9이닝씩 공격과 수비를 했다면 단순한 득실차에 불과하지만, 선공한 팀이 패할 경우 9회말이 없기 때문에 때에 따라 다소 복잡할 수도 있는 계산을 거쳐야 한다.
이 TBQ의 복잡성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TBQ 방식 적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들이다. 예컨대 1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대만과의 일전이 그렇다. 1승 1패였던 한국은 TBQ를 고려했을 때 대만을 상대로 최소 5점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다.
이 경기에서 선공팀은 대만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5점차 이상의 리드를 8회 이전까지 만들어야 했다. 말공격을 하는 팀이 9회 이후에 승리하게 되면 최대한 많은 득점을 한다고 해도 4점차 승리가 최대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 이 경기가 9회말로 가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하지만 한국이 3점차 이상으로 승리했을 때 2라운드 진출이 가능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이 8회말 공격을 마친 상태에서 2점차 이내 리드를 갖고 있었다면 9회초 공격에서 상대 공격을 막아선 안 된다. 반드시 동점을 내주고 9회말 공격에 들어가 3점홈런이나 만루홈런을 때려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벌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로 그랬다면 1-2로 뒤지고 있던 8회말에 역전 투런홈런을 터뜨린 강정호는 홈런을 때리고도 역적으로 몰렸을지 모를 일이다.
TBQ는 고의실점과 무성의한 경기의 가능성을 열어둔 주최측의 명백한 실수다. 한국이 3점차 이상으로 승리할 경우 2라운드 진출이 가능했다면 한국은 9회초에서 1점을 내줘 3-3을 만들고 9회말 공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만도 대책은 있다. 9회초 공격에서 허공을 가르는 스윙으로 전원이 삼진을 당하면 된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 동점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피홈런 걱정은 없다. 주자가 모이면 다음 타자의 몸을 맞히거나 고의4구로 밀어내기를 내주면 1점차 끝내기 패배가 되기에 2라운드 진출에 걸림돌이 없다.
결국 TBQ라는 순위결정방식은 때로 야구에 치명적일 수 있다. TBQ는 축구의 골득실과 비슷한 성격이다. TBQ를 축구에 적용하자면 (득점/플레이 시간)-(실점/플레이 시간)인데, 시간은 양 팀에게 동일하다. 야구처럼 공격은 8번만 하고 수비는 9번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축구는 골득실로 해결이 된다.
하지만 단순 득실을 통해 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축구, 농구와 같은 시간제 경기에서 어울리는 방식이다. 배구, 탁구, 배드민턴 등의 랠리포인트 스포츠에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야구는 9회말이 넘어서 홈팀이 승리할 경우 4점차 이내 승리만 가능하고, 공수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8회말까지 3점 이내의 리드를 가진 홈팀이 4점차 승리를 필요로 할 경우 원점으로 돌아가서 만루홈런을 때릴 수 있고, 그 과정은 조작의 요소가 있다.
TBQ 방식 도입은 이런 부작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산물이다. 만약 상황이 조성되어 한국이 이러한 방식으로 대만을 누르고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과정은 아름답게 보이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승리를 향한 노력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지만, 주최측의 치밀하지 못한 준비로 인해 자칫하면 세계의 야구팬들을 우롱할 뻔 했던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1라운드에서 나타났듯 이탈리아의 약진과 베네수엘라의 탈락, 브라질의 선전 등 이번 대회는 야구의 세계화와 각국 대표팀의 전력 평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앞으로 더욱 세계적인 위상을 갖춘 대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룰 개정은 필수적이다. TBQ 대신 '최소실점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 방법도 완벽하지는 않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두가 머리를 짜내 대안을 생각해볼 일이다.
[대만전 승리에도 표정이 밝지 못한 대표팀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조인식 기자 조인식 기자 ni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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