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웃으면서 야구하자고 했어.”
한화 김응용 감독은 4일 대전 KIA전에 앞서 “코치들과 선수들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 지는 건 모두 내 책임이니 즐겁게 야구해라. 실책 10개, 삼진 10개 당해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 웃으면서 야구해라”는 내용의 미팅 내용을 공개했다. 소용 없었다. 한화는 개막 5연패를 당했다. 선수들도, 김 감독도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사실 웃자고 말한 김 감독부터 너무 괴롭다. “혈압이 15나 올랐다”라고 할 정도. 주중 6시 30분 경기서 기자들의 홈팀 덕아웃 취재는 통상 오후 3시 30분쯤 시작된다. 홈팀 감독은 늦어도 4시에는 덕아웃에서 기자들과 만나는 게 관례. 그러나 이날 한화 덕아웃엔 김성한 수석코치가 나왔다. 김 감독은 두문불출했다.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들의 한화 관련 질문 세례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김 감독은 4시 50분쯤 덕아웃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 감독실로 들어갔다. ‘웃자’라고 말하던 김 감독의 얼굴이 무척 까칠해 보였다.
▲ 웃음 안 나오는 한화 야구
한화 야구를 보고 웃음이 나오는 한화 팬들이 몇이나 있을까. 있다고 해도 헛웃음일 것이다. 개막 5경기서 나타난 한화 전력은 지난해보다 더 떨어졌다. 박찬호, 류현진, 양훈의 공백이 너무나도 크다. 마무리 안승민은 개막전부터 블론세이브를 하더니 이후에도 불안했다. 롯데와의 두번째 경기서 끝내기 점수를 내줬던 송창식이 4일 호투했으나 필승조의 뼈대는 사실상 붕괴됐다.
매 경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5일 현재 한화의 6~9회 실점은 무려 28점이다. 전체 45실점의 절반이 넘는다. 불펜 불안으로 경기가 계속 늘어진다. 이러니 야수들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한화의 실책 개수는 단 4개. 그러나 그보다 기록되지 않은 실수가 더 많다. 3일 경기만 해도 경기 막판 추승우가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놓치면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야수들과 투수들이 서로 믿음을 주고 받기가 어려운 구조다.
바티스타, 이브랜드 등 외국인 듀오가 그럭저럭 제 몫을 하고 있고, 타선이 팀 타율 0.282로 준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수비와 뒷문이 불안하니 이기기가 쉽지 않다. 5경기 내내 드라마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김 감독도 이 선수, 저 선수를 기용하며 실험해보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 김응용 리더십 시험대 오른다
김 감독은 1476승을 거둔 명장이다. 현역 최다승 감독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타파했던 노 감독이지만, 한화의 허약한 전력 앞에서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김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할 문제인데, 그 시간이 기약이 없다는 게 한화 팬들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한화는 어느덧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 기간 최하위만 3차례 차지했다.
구단은 최고의 명장을 현역에 컴백시켰다. 김 감독은 없는 재료로 마법을 부려야 할 상황이다. 어쩌면 김 감독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 감독은 해태와 삼성에서 최고의 선수들만 데리고 야구를 했었다. 강한 팀을 더욱 강하게 결집시키는 데는 도가 텄으나 약한 팀을 더 좋은 팀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구단도 이런 점을 알고 있지만, 야구 장인 김 감독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셔온 것이다.
▲ 김성근, 김인식은 약팀 강호로 만들어냈었다, 김응용은?
김 감독과 함께 3대 명장, 즉 3김 감독으로 분류되는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모두 약한 팀을 강한 팀으로 끌어올리는 데 수완을 발휘했다. 김성근 감독은 1996년 쌍방울 감독을 맡아 1997시즌 일약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1999년 팀이 공중 분해되면서 김성근 감독의 쌍방울 생활도 저물었지만, 당시 능력을 인정 받아 LG, SK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김성근 감독이 2002년 한국시리즈행을 이끌었던 LG는 이후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신생팀의 한계가 분명했던 SK도 김 감독을 만나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김인식 감독도 마찬가지다. 김인식 감독은 해태 시절 김응용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맡아 직접 노하우를 체득한 인물이다. 이후 1990년 쌍방울 초대 감독을 시작으로 OB와 한화에서 믿음의 야구로 시대를 풍미했다. 기량은 좀 덜 여물어도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급 선수를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끌었고, 약한 팀을 다크호스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김응용 감독도 사실 숱한 헷병아리들을 리그 정상급 스타로 만들었다. 9개 구단 감독 및 코칭스태프 중 김 감독의 지도를 받지 않은 인사는 드물다. 현재 각 팀 베테랑급 선수들 중에서도 김 감독의 손이 묻은 선수가 많다. 다만, 당시에는 강팀을 이끌면서도 요소요소에 젊은 선수들을 키워 배치했었다면, 이번엔 기본 토대 자체가 허약한 상황에서 또 다시 새로운 선수들을 리그 정상급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다. 전문가들은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개막 5연패 과정에서도 충분히 나타났다. 기본적인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젊은 선수들을 키우면서 승리까지 이끄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한화에 박찬호, 류현진 같은 중심을 잡아줄 스타가 없는 건 매우 뼈 아프다. 일본야구까지 경험했던 김태균이 주장으로서 나름대로 팀 분위기를 잡으려고 애 쓰지만, 김태균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선수들을 편하게 해줘야겠다”라고 말한 김응용 감독. 1476승에 빛나는 김 감독이 약팀 한화를 강팀으로 발돋움시킬 수 있을까.
[김응용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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