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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의 박진성(김범)은 반전있는 남자였다. 그토록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며 동경하던 오수(조인성)를 제 손으로 찔렀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수와 오영(송혜교)의 해피엔딩을 바라던 시청자들은 결말을 20분 남겨놓고 새드엔딩을 걱정하며 마음을 졸여야했다.
김범은 최근 진행된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김사장의 협박에 못 이겨 좋아하던 형을 찌르고 어찌할 줄 모르던 진성의 눈빛은 오수의 주변 인물이던 진성을 단박에 극의 한 가운데 세워놓았다. 온전히 진성을 위한 이 장면을 위해 김범 역시 심혈을 기울였다.
"진성이 오수 형을 찌르는 장소는 원래 옥상에서의 밤 신이 아니라 지하 주차장에서의 낮 신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영상을 고려해 개방적인 공간인 옥상으로 가자고 하셨죠. 저도 야외로 간다면 밤 신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낮이면 쓸쓸함이 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반적으로 배우의 요청대로 대본이 바뀌기는 힘들다. 게다가 낮이 밤으로 바뀌려면 전체적인 극의 시제가 다 수정돼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김범의 요청대로 밤 신으로 바뀌었다. "작가님께 처음 말씀드렸더니 '바꿔줄게'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대본을 볼게' 하셨어요. 저도 말씀은 드렸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낮 신과 밤 신, 둘 다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수정고가 밤 신으로 바뀌어서 나왔어요. 작가님께서 '이 장면은 온전히 진성이의 것'이라고 하시면서 바꿔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듣고보니 김범이란 배우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그가 맡은 배역에 대한 해석력이 노희경 작가를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하 빠담빠담)에 이어 '그 겨울'로 두 번째 작업을 함께 했다. 노희경 작가는 김범의 이런 모습 때문에 그와 연달아 작업했던 것일까?
"작가님께 왜 저를 또 불러주셨는지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빠담빠담'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꼈었거든요. 이 작품을 찍는 동안 배우를 떠나서 성격과 성향, 가치관에 변화를 준 작품이라서 교훈도 많이 얻었고요. 찍는 동안 정말 행복했는데 아마 감독님과 작가님도 그런 걸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실제로 김범에 따르면 '그 겨울' 촬영장에서는 '빠담빠담' 이야기가 많이 회자됐다고 한다. 그렇게 '빠담빠담'때 느꼈던 행복감은 '그 겨울' 촬영장으로 그대로 전이됐다.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조인성이나 촬영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송혜교, 달달한 커플 연기를 했던 정은지까지 그에게는 모두 소중한 행복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인성이 형은 사석에서 보다가 오수와 진성으로 만나게 돼서 좋았어요. 진성이 오수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동경하는 연기를 하는데 많이 도움이 됐죠. 의지할 수 있었던 형이 있어서 굉장히 힘이 됐던 것 같아요. 혜교 누나는 정말 예뻐서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니터만 봐도 정말 아름답다고 할 정도였어요. 저도 촬영이 없어도 옆에서 모니터로 보고 그랬죠. 누나랑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예쁜 누나를 얻게돼서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진성과 대부분을 함께했던 문희선 역의 정은지와 호흡이었을 것이다. 김범은 정은지에 대해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라고 털어놨다. 본업이 아이돌 가수인데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들어가는 신인 연기자에 대한 우려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완전히 기우였다고.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똑똑한 친구였어요. 열정도 있고 성실해서 무언가 이야기할 때 부담도 없었고요. 저는 친한 오빠로서 현장에서 편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했어요."
김범과 정은지는 조인성, 송혜교 커플 못지않게 극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커플이었다. 조인성과 송혜교가 무거운 감정을 안고 가는 커플이었다면 김범과 정은지는 극의 밝은 부분을 담당했다. 얼마나 달달하고 톡톡 튀었는지 별명이 탄산커플일 정도였다.
"진성이랑 희선이가 어떻게 하면 풋풋해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담요 키스를 생각해낸 거죠." 짧은 입맞춤 뒤에 얼굴을 담요로 가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달달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사실 이 장면은 김범이 제안한 것이었다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이리와' 하면서 이불을 덮고 키스를 하잖아요. 진성과 희선은 진한 장면이 오래 나오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떨까 제안했죠."
밝은 캐릭터 덕에 풋풋한 키스신도 연출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편집된 장면들도 많았다. 특히 스틸컷으로만 공개됐던 탄산커플의 포옹신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원래는 희선이가 희주 누나의 죽음에 대해 오수 형과 대화를 하다가 뛰쳐나가서 진성이 안아주는 신이 있었어요. 그림은 아름다웠지만 극 전체에 흐름에 있어 맞지 않아서 편집됐죠."
아쉽게 편집된 장면은 있었을지언정 '그 겨울'이라는 작품 자체에 대한 김범의 만족도는 높았다. "극 전체가 전부 맘에 들었어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한데 엉킨 상황도 좋았고 그 안에서 갈등을 빚어낸다는 스토리도 좋았고. 찍으면서 정말 행복감을 느꼈어요.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아요."
(배우 김범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배우 김범.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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