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울산 김진성 기자] “저를 만들어준 분, 저를 만들어준 팀이죠.”
싱겁게 끝난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사실 2~3차전이 진행되면서 울산 모비스의 우승을 예감한 이가 적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MVP에 대한 얘기도 흘러나왔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모든 사람이 “양동근”을 말했다는 점. 모비스 프런트, 유재학 감독, 주변에서 만난 농구인의 선택은 모두 양동근이었다. 결국 그는 4차전 29점 활약을 더해 기자단 투표 78표 만장일치로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됐다. 2006-2007시즌에 이어 생애 두번째 MVP.
양동근의 이미지.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국내 프로스포츠 전체 선수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성실남’이다. 그가 오늘날 국내 최고 가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요체. 사실 프로 초년병 시절만 해도 가드치고 패싱센스도, 슛도 별로였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지금은 리그 상위권 수준에 올라섰다. 그가 말하는 모비스 농구. 그 실체가 궁금했다.
▲ 말 없는 유재학, “위대한 선수”라는 말에 깜짝 놀란 양동근
유재학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인터뷰실에서 양동근에게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잘 이끌고 나가는 위대한 선수”라고 했다. 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한 유 감독이 드디어 양동근을 최고의 선수로 인정한 것이다. 유 감독은 챔프전 내내 “MVP를 꼽으라면 단연 동근이다.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높다. 그게 팀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라고 극찬했었다.
양동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고 노력한다”라며 멋쩍어 했다. 자신을 높게 평가한 건 둘째치고,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 자체에 더 놀라는 모습. 양동근은 “요즘은 수고했다는 말씀도 자주하셨는데, 원래 감독님은 말이 많은 분이 아니다. 했던 말씀도 절대 두번 하는 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 감독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작은 체구이지만, 농구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다. 기본이 되지 않는 선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양동근도 처음엔 힘들었다. “버텨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시기를 잘 넘기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그 역시 유 감독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 “감독님과 만나지 못했다면 은퇴했을 수도 있다. 나를 만들어준 신과도 같은 분”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만난 것도 만 9년. 이제 10년에 접어들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대단하다.
▲ 양동근은 문태영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고 싶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모비스는 최근 7시즌 중 3번이나 챔피언결정전서 웃었다. 이젠 진정한 명문구단 반열에 올랐다. 올 시즌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은 상황. 하지만, 새롭게 영입된 문태영과 신인 김시래가 유 감독의 농구에 녹아드는 게 시간이 필요했다. 양동근 조차 유 감독의 농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2년이 걸렸으니 당연하다.
결국 두 사람은 모비스의 일원이 됐다. 문태영은 모비스에서 팀원들과 함께 하는 농구에 눈을 떴고, 수비력도 향상됐다. 김시래는 시즌 막판과 포스트시즌서 맹활약을 펼쳤다. 거품이 아니라 차세대 넘버 1가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양동근은 “태영이 형과 시래가 정말 잘 해줬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았다”라고 했다.
양동근은 문태영에 대한 오해가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의 공격만 하는 선수. 팀을 생각하지 않는 선수라는 세간의 평가. 그러나 성실남 양동근이 바라본 문태영은 ‘진짜 성실남’이었다. “국내 선수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 슛 연습을 할 때도 경기 상황에 맞춰 슛 연습을 한다. 이기적인 선수가 아니다. 누구보다 팀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다. 감독님은 내가 적응하는 데 얘기를 많이 해줬다고 하는 데 그런 거 아니다. 태영이 형이 엄청나게 노력한 것이다”라고 치켜세웠다. 문태영도 화답했다. 3차전 이후 한국말로 소감을 밝히겠다는 걸 지켰다. “햄. 복. 합 미. 다.(행복합니다)”
김시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래가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라고 했다. 유재학 감독은 “패싱센스, 시야 모두 최고 수준이다. 김태술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라고 했다. 양동근도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다. 내가 선배니까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하지만, 힘든 훈련을 잘 따라오면서 내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 크게 될 후배”라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나18일 김시래의 LG 트레이드가 발표돼 두 사람의 호흡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 무적의 모비스? 내 나이도 이제 34
모비스는 김시래의 이적 외에는 올 시즌 전력을 고스란히 다음 시즌에도 가져간다. 여전히 우승후보 1순위라는 의미. 변수는 많다. 기본적으로 프로농구는 외국인선수에 대한 영향력이 높다. 모비스 두 외국인선수의 내년 거취도 아직 결정된 게 없고, 다른 팀의 변수도 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은 경희대 3인방이 데뷔하는 원년. FA 시장의 변수가 있다. 그럼에도 모비스 특유의 끈덕진 조직력이 내년엔 좀 더 질겨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양동근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내년엔 나이가 34살입니다.” 어느덧 베테랑 반열에 들어선 양동근이다. “(함)지훈이도 30살이 넘었고, 태영이 형은 37살이다. 체력이 문제다”라고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30대 중반이라 서서히 체력적으로 힘겨워질 시점이란 것. 실제 양동근은 올 시즌 중에도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안하고 뛰고 있습니다”라는 속내를 토로했다.
자타공인 성실남 양동근. 국내 최고의 명장 유재학. 그리고 주전들의 원숙미. 양동근의 걱정과는 달리 당분간 모비스는 전성기를 달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왜냐고? 양동근이 말하는 모비스. 생각보다 더욱 끈끈했기 때문이다.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위), 양동근과 김시래(중간), 양동근(아래). 사진 = 울산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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