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마이데일리 = 최두선 기자] 지난 2009년 12월 31일,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아이리스'로 우수연기상을 받은 배우 김태희는 참 많이 울었다.
"'아이리스'는 제가 연기자로서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저를 구원해 준 너무나 소중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상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배우 김태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자괴감'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연기력 논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2002년 단편영화 '신도시인' 출연을 시작으로 연기에 입문한 김태희는 이듬해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인지도를 높였지만 "예쁘기만 한 배우"라는 오명을 안았다. 드라마 '구미호 외전',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영화 '중천', '싸움'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은 단골 손님이었다.
우수상 수상과 한 맺힌 눈물로 더 이상의 연기력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봤지만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를 통해 첫 사극 도전에 나선 그녀에 대한 채찍질은 여전하다. 일부 시청자들은 김태희의 연기가 전작들과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으며 연기하는 방식과 말투 등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동시간대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의 수지 역시 첫 사극 도전이지만 김태희와 비교되며 칭송받는다. 최근 '장옥정'의 시청률 부진도 '김태희가 연기를 못해서'라고 말한다.
김태희는 정말 연기를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발연기' 지적은 선입견이 낳은 무조건적 비판일까.
'장옥정'에서 김태희는 권모술수에 능한 역사 속 요부 장희빈이 아닌 옷에 대한 열정을 가진 침방나인 장옥정을 연기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사랑에 솔직한 여성 장옥정이다. 김태희는 전작과 다른 새로운 장희빈을 표현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나아가 퓨전사극으로서 정통 사극에서 요구되는 발성, 표정과는 다른 현대적 감각도 요구된다.
"조선을 삼켜보자"는 당숙 장현(성동일)의 충격적 요구에도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천한 것'이라고 표현한 이순(유아인)의 말을 듣고 오열할 때도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눈물을 삼키려 노력한다. 지인들과 옷을 만들고 대중에 선보일 때는 밝은 웃음으로 천진난만함을 전한다. 이런 모습은 장희빈이라는 한 여성의 내면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좀 과한 느낌이다. 유독 김태희에게만 엄격한 연기력의 잣대가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김태희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장옥정'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방송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연기력 논란이 제기됐다. 물론 연기력 논란을 자아낸 주체 김태희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태희라는 배우를 선입견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김태희에 대한 연기력 평가는 섣부른 감이 있다. 24부작 '장옥정'은 이제 4회분 방송됐다. 아역 분량 2회를 제외하고 김태희가 본격 등장한 방송분은 불과 2회 뿐이다. '장옥정'의 연출을 맡은 부성철 PD가 지난 1일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밝혔듯 '착한 장희빈'은 흥행에 치명적이지만 중반부까지 이순(유아인)과의 멜로에 치중하다가 왕후가 되는 순간 강한 극성을 발휘한다. 왕을 변화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멜로와 장희빈의 카리스마가 조화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태희의 장희빈은 아직 기량을 채 펼치지도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장옥정의 부진은 비단 김태희만의 문제는 아니다. 원톱으로서 드라마 흥망성쇠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 장옥정은 스토리 전개에 있어 무게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퓨전사극으로서 현대 감각을 가미한 기법은 장희빈이라는 존재감 강한 역사 속 인물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가볍다. 기존 장희빈과 새로운 장희빈의 간극을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새다.
['장옥정'에 출연중인 김태희. 사진 = SBS 제공]
최두선 기자 sun@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