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마이데일리 = 충주 김진성 기자] “이시영을 배워야 한다.”
인천시청 김원찬 감독은 이시영을 더 이상 배우로 보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제자로 여긴다. 사실 이시영에 대한 시선엔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 “배우가 선수가 소화하는 훈련을 다 따라서 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언제까지 하나 두고보자”라는 시선도 있었다. 24일 충주체육관. 이시영은 이런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이시영이 김다솜(수원태풍체)에게 국가대표 복싱 여자 48kg급 선발전 결승전서 역전승을 거두고 복싱 입문 4년만에, 정식 훈련 1개월만에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여자 48kg급은 가장 저변이 취약한 종목이다. 이시영도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대회서 예선을 거치는 게 정상이었으나 이 체급에 선수가 적어 곧바로 결승전만 치르게 됐다.
그래도 태극마크의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무릎 통증을 딛고 1달만에 일궈낸 값진 성과다. 김 감독은 ”6~7개월 훈련을 시켰다면 더 좋은 경기를 할 수도 있었다”라고 아쉬워했으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경기 초반 유효타에서 밀리면서 열세를 보였으나 경기 중반 이후 페이스를 살려내면서 승부를 뒤집었고, 상대의 성급한 공격을 치고 빠지기로 버텨낸 뒤 왼손 스트레이크와 오른손 훅으로 태극마크를 가져왔다. 노련하면서 지능적인 경기운영이었다.
김 감독과 이시영 모두 “경기서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초반 이시영이 너무 긴장했다고 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린 이시영은 김다솜을 때려눕힐 저력이 있었다. 이시영은 “로드워크와 야간훈련을 빠졌다. 아직 너무 부족하다”라고 했으나 무릎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오히려 김 감독은 “시영이가 그럴 줄 몰랐다. 다른 선수들이 시영이에게 배워야 한다. 신종훈도 시영이에게 배운다. 근성과 열정이 대단하다. 깜짝깜짝 놀란다”라고 활짝 웃었다. 실제 김 감독은 이번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왼손 스트레이트에 이은 오른손 훅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긴 팔 다리와 신장이 강점인 이시영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이시영은 성실한 자세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정으로 훈련량 부족을 만회했다.
배우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이젠 당당히 국가대표 복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파워도 키워야 하고 더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한다”라고 자신을 채찍질한 이시영. 실제 전국체전과 아시안게임은 결코 녹록한 무대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줬던 모습으로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김 감독의 자체 평가다. 김 감독은 “이시영을 영입하기 위해 2년을 기다렸다”라고 했다. 그 결실, 이제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 감독의 안목이 통했고, 이시영의 노력 역시 통했다.
남들보다 훨씬 늦은 정식선수 데뷔와 무릎 부상으로 인한 적은 훈련량. 이시영은 훈련에 임하는 자세와 근성, 열정은 오히려 동료들이 배워야 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김 감독이 결코 서비스 멘트를 던진 게 아니었다. 김 감독은 이시영을 배우로 보지 않는다. 이시영 역시 마찬가지다. “이시영을 배워라”라는 김 감독의 말 속엔 뼈가 들어있다. 이시영이 복싱계에 핵주먹급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다.
[이시영. 사진 = 충주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