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인터뷰하고 나니까 기분 좋은데요?”
경기 전 기자들의 덕아웃 취재 시간. 보통 부진한 선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부진한 선수일수록 예민할 확률이 높다. 때문에 기자들은 통상적으로 맹활약 중이거나 가장 핫한 스타들의 코멘트를 들으려고 하는 편이다. 2일 대전 롯데전을 앞둔 한화 덕아웃. 전날 1점차 패배가 아쉬운 듯 선수들은 말 없이 묵묵히 훈련에만 임했다.
마침 최진행이 눈에 들어왔다. 최진행은 타격훈련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몇몇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수비 훈련도 뒤로 미루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최진행은 시즌 초반 부진하다. 타순도 5번, 3번, 7번 등을 오가는 신세. 무엇보다 시즌 첫 홈런이 나오지 않아 애가 탔던 그다. 부진한 선수이지만, 김태균과 함께 한화를 대표하는 타자이니만큼 요즘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 이것저것 해보는 데 잘 안 되네요
최진행은 시즌 초반 극도의 슬럼프와 싸우고 있다. 그는 “컨디션은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훈련의 결과가 잘 안 나온다. 아직 왜 잘 안 맞는지 원인을 모르겠다.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라면서도 “지난해에도 5월부터 좋아졌으니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최진행은 할 수 있는 건 다해보고 있다. “원래 잘 안 맞을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타격 폼도 조금 바꿔보고,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도 바꿨다. 좋았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예전 좋았을 때의 동영상을 보면서 연구도 한다. 경기에 들어가면 구질 하나를 노리기도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팀은 추락했다. 물론 한화의 최하위 추락이 100% 최진행의 탓은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 팀에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도 있다. 시즌 초반 최진행은 무릎이 좋지 않았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시범경기부터 그를 세심하게 관리했다. 초반엔 지명타자로 나섰다. 그러다 무릎이 조금 괜찮아지면서 최근엔 외야 수비를 나가고 있다. “몸 상태는 7~80%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참고 해보겠다. 경기를 못 할 정도가 아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 초반 무릎이 아프면서 타격 밸런스에 악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 태균이형 볼넷? 내가 더 잘해야죠
김응용 감독은 시즌 개막 직전 최진행을 4번타자로 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최진행이 시범경기부터 컨디션이 좋지 못하자 개막전부터 거짓말쟁이가 됐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김태균을 4번에 놓았다. 대신 최진행은 5번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면서 김태균의 볼넷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김태균은 현재 볼넷 13개, 고의사구 1개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28일 인천 SK전서는 무려 6개의 볼넷을 얻어 한 경기 최다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역시 최진행이 5번에서 워낙 잘 맞지 않고 있기 때문에 투수들이 4번 김태균과의 승부를 피해가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김태균이 걸어나간 뒤 최진행이 옳게 해결을 하지 못하면서 공격이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 최진행은 “냉정하게 보면 맞는 말이다. 내가 홈런, 타점을 올려줘야 투수들이 태균이 형에게 정면승부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김태균은 하루 전날 부진에 빠진 최진행을 두고 “나까지 한 마디를 하면 잔소리가 된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라고 했다. 최진행도 기사를 통해서 김태균의 인터뷰를 봤다. 전적으로 동감했다. “태균이 형이 아직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전에 살아나야 한다”라면서 “잡아당기는 스윙을 하지 말고 가운데로 뻗어가는 스윙을 하라는 김종모 코치님의 조언을 받았다”라며 선전을 다짐했다.
▲ 인터뷰 하고 나니까 기분 좋은데요?
부진한 선수를 인터뷰할 때 길게 야구 얘기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최진행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 화제를 돌렸다. “짧게 자른 머리가 어울린다. 스포츠 머리가 촘촘하다. 눈썹이 예쁘다” 등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제서야 최진행의 표정이 풀렸다. 덩치만 컸지, 알고 보니 아줌마 기질이 있었다. 만담에 꽤 능했다. 기자들과 가벼운 얘기를 하면서 기분 전환을 확실하게 했다.
최진행은 20분 정도 기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인터뷰 하고 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오늘 홈런 하나 나오면 대박이겠다”라고 웃었다. 기자들도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잠시 후 최진행은 3번 좌익수로 출전해 3월 31일 부산 롯데전 이후 1달만에 3안타 게임을 완성했다. 7회엔 시즌 첫 홈런포를 쏘아 올리면서 오랜만에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처럼 5월 대반격의 신호탄을 쐈다.
물론 최진행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올린 건 아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분 전환이 된 건 확실해 보였다. 인터뷰 직전과 직후 그의 표정이 달랐다. 스스로 인터뷰 이후 기분이 좋았다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때로는 훈련 20분보다 기분전환의 인터뷰 20분이 슬럼프 탈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래서 야구는 멘탈게임이다. 최진행과의 인터뷰, 알고 보니 힐링 인터뷰였다.
[최진행.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