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뒷문 얼굴이 새 얼굴로 바뀌고 있다.
올 시즌 유독 경기 막판 역전승, 역전패가 자주 나온다. 흐름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게 야구지만, “이건 승부가 갈렸다” 싶은 분위기에서도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SK가 8일 인천 두산전서 대형사고를 쳤다. 1-10으로 뒤지던 경기를 13-12로 이겼다. 8, 9회에만 6점을 따냈다. 2003년 5월 27일 수원 현대-KIA전서 현대가, 2009년 9월 12일 대전 한화-히어로즈전서 한화가 9점차 역전승을 해낸 적은 있었다. SK의 10점차 뒤집기는 프로야구 31년 역사를 새롭게 쓴 승부였다.
SK의 어마어마한 뒤집기쇼에 가리긴 했지만, 한화도 창원에서 연이틀 NC에 인상적인 뒤집기쇼를 펼쳤다. 한화는 7~8일 8-4, 6-4로 승리했다. 2경기 연속 9회초 2아웃까지 3-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동점타 및 역전타를 만들어냈다. NC로선 아웃카운트 1개, 심지어 스트라이크 1개 남겨놓고 2승을 헌납한 셈이었다.
▲ 뒤집기쇼의 어두운 그림자, 속출하는 블론세이브
야구에서 역전승만큼 짜릿한 장면이 또 있을까. 8일 문학구장에 있었던 SK 팬들은 경기 후 넋이 나갔다. 사상 첫 10점차 뒤집기쇼를 현장에서 지켜본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SK 타선은 그만큼 힘이 있었고 집중력이 좋았다. 김상현 영입 후 전체적으로 탄력을 받았다. 같은 시간 창원에서도 한화의 경기 막판 집중력 있는 타격이 돋보였다. 특히 8일 경기선 0-4로 뒤지던 6~9회 야금야금 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타자들의 이런 활약 속에선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두산은 8일 인천 SK전서 선발 이정호가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홍상삼, 변진수, 오현택이 끝내 10점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오현택에겐 달갑지 않은 패전과 블론세이브가 주어졌다. NC도 마찬가지. 7일 창원 한화전 막판 2이닝을 소화했던 이민호, 노성호, 고창성도 5실점을 합작했다. 8일 경기서도 노성호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뒷문 불안이 심각하다. 상위권을 달리는 넥센, 삼성, 두산도 뒷문 불안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삼성은 여전히 불펜이 강하지만, 예전보단 두터움이 덜하다. 홍상삼이 마무리로 자리잡지 못해 집단 마무리 체제를 사용하는 두산 역시 8일 경기서 고민거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KIA가 김상현을 내주고 송은범을 데려온 것도 불펜 강화를 위해서였다. 중, 하위권 팀은 말할 것도 없다. 한화 마무리 송창식이 17경기서 24⅓이닝을 던진 건 그만큼 허리가 취약하다는 증거다.
그 결과 블론세이브가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 9일 현재 정규시즌 124경기가 치러졌다. 리그 블론세이브는 34개. 하루에 네 경기 벌어지는 프로야구에서 매일 1개씩 블론세이브가 나왔다는 의미다. 팬들 입장에선 짜릿한 역전극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세이브 상황을 지키지 못하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팀 입장에선 데미지가 어마어마하다. 다음경기 불펜 운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NC의 경우 7일 경기서 좋지 않았던 고창성이 퓨처스리그로 내려갔다. 8일 경기서도 불펜 운용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틀 연속 블론세이브.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 뜨거운 뒷문은 세대교체 중
왜 갑자기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팀의 불펜이 어려움에 빠졌을까. 불펜 야구의 중요성이 대두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삼성이 2005년과 2006년 통합 2연패를 차지하면서부터다. 오승환, 권오준, 정현욱, 권혁, 안지만의 필승불펜조가 결성됐고, 돌아가면서 부침과 부상도 겪었으나 지난해까지 독수리 5형제처럼 잘 맞물려 돌아갔다. 2007년과 2008년 통합 2연패를 달성한 SK도 정우람, 이승호 등 왼손 벌떼불펜진을 앞세운 정밀한 불펜야구를 선보였다. 두산 역시 정재훈, 이재우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불펜을 구성했었다.
이 팀들을 따라잡기 위해 나머지 팀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불안했다. 계속 새로운 피를 실험해야 했다. 과부하가 걸린 투수들은 수술, 재활과정을 겪었고, 해당 팀들은 부침을 겪었다. 이는 삼성과 SK가 최근 몇 년간 계속 프로야구를 양분한 한 가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삼성과 SK도 오랜기간 활약해온 필승계투조가 이적하거나 군입대를 선택했고, 일부는 과부하가 걸려 새로운 동력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키워온 심창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적한 정현욱, 재활 중인 권오준, 수술 후 가벼운 후유증이 있는 안지만의 아우라를 모두 메우진 못한다. 그만한 불펜 투수를 더 키워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도 박희수가 어깨 통증을 딛고 돌아왔으나 군입대한 정우람 공백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두산도 최근 2~3년간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불펜투수가 없다. 중, 하위권 팀들은 매년 젊은 선수 위주로 불펜을 새롭게 꾸리는 데 집중한다.
한 야구 관계자는 “변화구 구사에 능하지 않은데 직구가 빠르거나 담력이 좋은 신예들, 경험 많고 경기운영능력이 좋은 투수를 불펜에 내세운다. 그런데 불펜 야구 유행 초기부터 활약해온 베테랑 불펜 요원들이 여러 이유로 빠져나가면서 그 몫을 메우는 신진세력의 힘이 아직은 약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펜 전체의 힘이 약화됐다는 진단이다.
불펜이 무너지면서 역전극이 만들어지는 건 짜릿한 일이다. 그러나 그 짜릿함도 매일 이어진다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근본적으론 9개 구단 불펜이 좀 더 강해져야 경기 막판까지 팽팽하고 긴장감 있는 경기가 양산될 수 있다. 짜릿한 역전극이 잦다는 건, 그만큼 불펜이 약해졌다는 방증이다. 리그 경기력 수준과도 연관 있는 문제다. 대역전극에 즐거워하는 선수들의 반대편 덕아웃에 있는 감독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힘겨워하는 불펜 투수(위), 불펜 세대교체 앞장선 심창민(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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