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일부러 여유있게 시즌 준비하는 건 아니다.”
24승 11패 단독선두. 삼성의 행보는 놀랍기만 하다. 예년보다 험난한 레이스를 예상했던 2013년. 예상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놀라움보다 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간 사실에 놀라는 사람이 많다. 삼성에 항상 뒤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슬로스타터’다. 아직 시즌 3분의 1지점도 통과하지 않은 시점. 2013년 삼성은 슬로스타터와는 거리가 멀다.
삼성의 이런 수식어 자체가 사실은 과학적 신빙성(?)이 없다는 설명이 나왔다. 삼성 류중일 감독이 직접 언급했다. 류 감독은 지난 15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슬로스타터라고 해서 일부러 남들보다 늦게 몸 컨디션을 올리는 건 아니다. 우리도 똑같이 개막전에 맞춰서 훈련을 한다. 어쩌다 보니 몇 시즌 초반 부진했던 것”이라고 했다.
▲ 최근 몇 년간 슬로스타터였던 건 맞다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슬로스타터였던 건 사실이다. 5월 20일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류 감독 체제였던 2011년 5월 20일 당시 삼성은 21승 18패로 선두 SK에 4.5경기 뒤진 3위였다. 6월 28일에서야 처음으로 선두에 올랐고, 이후 선두를 질주했다. 작년엔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 속 5월 말에서야 처음으로 5할을 찍었다. 선두에 나섰던 건 7월 1일이었다.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던 2010년. 5월 20일 당시 22승 21패로 선두 SK에 무려 8.5경기 뒤져 있었다. 여름 이후 연승을 달리며 두산을 밀어내고 2위가 됐다. 정규시즌 막판 SK를 위협하기도 했으나 끝내 선두까진 올라서지 못한 채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심지어 2007~2009년엔 5월 20일 당시 5할도 채우지 못한 채 중위권을 전전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2006년에도 5월 20일엔 18승 14패 1무로 당시 선두 현대에 5경기 처져있었다.
▲ 여름 삼성? 매년 여름에 강한 건 아니었다
삼성이 슬로스타터라는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가설 하나. ‘여름 삼성’이다. 유독 여름만 되면 강하다는 주장. 기록상으로도 나타난다. 지난해에도 7월 1일 선두에 올라선 뒤 7~8월 2달간 무려 25승 13패를 기록했다. 2011년에도 7~8월에 24승 16패를 거두며 선두를 공고히 했다. 2010년엔 6~8월에만 44승 23패를 기록하며 선두 SK와 2강을 형성했다. 심지어 2007년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도입됐던 서머리그서도 14승 6패로 우승했다. 2007년 삼성은 정규시즌 4위를 차지했다.
삼성이 매년 여름 강한 건 아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2009년. 6~8월 31승 34패로 5할이 되지 않았다. 세대교체 여파로 시즌 초반부터 부진했다. 여름에도 반등하지 못한 채 중위권을 전전하다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2005년에도 여름에 썩 강하지 않았다. 당시 5월까지 34승 14패로 선두를 질주했으나 6월 9승 14패로 휘청거렸다. 7~8월 20승 13패로 선두를 되찾으며 우승에 골인했으나 여름에 재미를 본 건 아니었다. 올 시즌 흐름을 과거에 비춰보자면 2005년과 비슷하다. 올 시즌 행보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다.
▲ 여유 있게 시즌 준비하는 것 아니다, 주위에서 붙여준 수식어?
류 감독은 “우리도 다른 팀과 똑같이 개막전에 컨디션을 맞추고 훈련을 한다. 일부러 시즌 중반에 몸 컨디션을 맞추고 훈련을 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사실 삼성의 동계훈련은 꼼꼼하기로 정평이 났다. 선수들이 비활동기간에 착실하게 몸을 만들어오면 스프링캠프에선 구단이 준비한 촘촘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여유 있게 시즌을 준비하는 마인드가 자리잡을 수 없다는 설명.
류 감독은 “주위에서 슬로스타터라고 하니까 슬로스타터처럼 보이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삼성이 슬로스타터 행보가 아니었던 시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슬로스타터 행보가 워낙 강렬했던 것도 사실이다. 류 감독은 “어느 감독이 시즌 초반엔 못해도 되고 중간부터 잘해도 된다고 독려하겠나”라며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데 유독 시즌 초반 부진한 선수가 많았다”라고 했다.
▲ 시즌 중반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류 감독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언급했다. “예전 선수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스프링캠프에선 다른 팀한테 박살이 났다. 팀도 아니라고 했다”라면서도 “막상 시즌 중반쯤 되니 선수들 자세가 달라졌다. 시즌 초반에 좀 부진해도 날이 더워지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은 있는 것 같다. 지금 부진해도 결국 올라간다는 믿음을 갖고 차분하게 경기를 치른다”라고 했다.
매년 슬로스타터 페이스를 그린 건 아니지만, 초반 부진했다고 해서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자멸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삼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사실 하향세는 어느 시점에도 찾아올 수 있다. 삼성은 초반 좋지 않은 흐름에서 최대한 버티다 반전 포인트를 만들어내면서 결국 치고 올라간다. 선수단 전체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반대로 약팀의 전형적인 모습. 시즌 초반 반짝하다가도 시즌 중반 무너지는 그래프를 그린다. 좋지 않을 때 버티는 힘이 떨어지니 그 시점에서 그대로 무너진다. 그래서 삼성이 더욱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모른다. 삼성 외에 시즌 초반 보합세 혹은 하향세를 딛고 시즌 중반 치고 올라간 저력을 보여준 팀도 그리 많지는 않다.
[삼성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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