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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명장’ 알렉스 퍼거슨(72)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떠났다. 1986년 11월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한 퍼거슨은 27년간 27개의 다른 맨유를 이끌었다. 브라이언 롭슨의 맨유부터 칸토나의 맨유, 베컴의 맨유 그리고 호날두와 루니의 맨유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했다. 시대에 따라 축구 팬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맨유는 모두 다를 것이다. 잉글랜드 최초로 트레블(프리미어리그+FA컵+유럽챔피언스리그)을 달성한 1999년 맨유를 꼽는 팬들이 있는 반면 호날두, 루니, 테베스, 베르바토프 등 맨유판 판타스틱4가 공존했던 2009년 맨유의 손을 드는 팬들도 있다.
정답은 없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최고 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퍼거슨의 맨유 역사상 가장 변화무쌍했던 2007-08시즌 맨유를 최고의 팀으로 꼽고 싶다. 그해 맨유는 2시즌 연속 EPL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1968년과 1999년에 이어 역대 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한 박지성은 두 개의 심장을 가동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맨유의 신형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때 맨유는, 매우 역동적인 팀이었다.
① ‘변화무쌍’ 포메이션
지금의 맨유는 4-2-3-1이 주요 포메이션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시즌 전까지만 하더라도 맨유는 4-4-2와 4-3-3을 동시에 사용하는 팀이었다. 일반적으로 EPL에선 4-4-2를 썼고 챔피언스리그에선 4-3-3을 가동했다. 공통점은 중앙에 두 명의 미드필더를 세웠다는 점이다. 보통 스콜스(또는 플레쳐)와 캐릭이 그 자리를 맡았다. 4백 수비에선 퍼디난드와 비디치가 가운데서 두터운 벽을 형성했고 왼쪽은 에브라의 담당했다. 그리고 오른쪽은 좀 더 수비적인 브라운이 포진했다. 센터백이 가능한 브라운 덕분에 맨유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높이 싸움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투톱의 경우 최전방은 루니와 테베스가 차지했고 측면에는 호날두, 박지성, 긱스, 나니가 배치됐다. 스리톱일때는 이들 중 3명이 상황에 따라 퍼거슨의 선택을 받았다. 물론 호날두, 루니가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이처럼 당시 맨유는 특정한 포메이션을 사용하지 않았다. 퍼거슨 감독은 기본적으로 4-4-2와 4-3-3을 사용했지만, 필요하다면 4-5-1, 4-2-3-1, 4-4-1-1도 가리지 않았다.
② 퍼거슨 감독의 제로톱?
다양한 포메이션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격 전 지역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날두, 루니, 테베스는 최전방은 물론 좌우 측면 심지어 처진 공격수도 가능하다. 전술에 대한 이해도 뛰어났다. 세 명 모두 잦은 포지션 체인지에도 자신들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호날두는 타겟맨이 없는 맨유에 높이를 제공했고 루니는 후방으로 내려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다. 특히 호날두는 때때로 제로톱이 되기도 했다. 최전방에 위치했지만 좌우로 자주 빠지며 상대 센터백을 당황시켰다. AS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원정이 대표적이다.(*맨유는 호날두, 루니의 연속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박지성도 선발 풀타임 출전해 루니의 쐐기골을 도왔다) 이들은 심지어 압박과 수비도 잘했다. 루니와 테베스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상대를 전방부터 괴롭혔고 측면에서도 대충 수비하는 법이 없었다. 그로인해 퍼거슨은 이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을 수 있었고, 상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을 내세웠다.
③ ‘수비형 윙어’ 박지성
‘수비형 윙어’ 박지성도 당시 맨유 전술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퍼거슨 감독은 4-3-3 시스템에서 박지성을 자주 기용했다. 그는 EPL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을 상대할 때는 박지성보다 공격적인 카드를 내세웠다. 포메이션도 4-4-2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 빅클럽을 만나거나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를 치를 땐 중원을 강화한 4-3-3을 사용했다. 그리고 박지성은 팀의 공수밸런스를 맞추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2009시즌 이후에는 리버풀, AC밀란전서 센트럴 팍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만큼 박지성은 퍼거슨에 다양한 전술 옵션을 제공했다) 물론 이 때문에 박지성은 정작 가장 중요했던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제외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가 결승에 오르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운 박지성 없이 결승전을 치렀다. 대신 당시만 해도 건강했던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시켰다.
이 선택이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경기는 1-1 무승부 끝에 연장을 거쳐 승부차기로 돌입됐고 첼시 주장 테리의 어이없는 실축 덕에 맨유는 구단 역사상 3번째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제외한 것은 내 감독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 이었다”며 박지성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이밖에도 2007-08시즌 맨유의 장점은 너무도 많다. 리그 38경기서 22실점 밖에 내주지 않는 철벽수비와 맨유 역사상 슈마이켈과 함께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판 데 사르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그 퍼거슨이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축구 역사상 뛰어난 명장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열심히 껌을 씹으며 패배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승리하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퍼거슨 감독을 쉽게 잊지 못하는 건 지금의 우리가 그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2007-08시즌 퍼거슨의 맨유.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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