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낮은 리더십이다.
사령탑 2년차를 맞이한 LG 김기태 감독. 전쟁 중인 장수의 지도력은 위기에서 빛나는 법. 김 감독의 리더십이 다시 은은하게 빛난다. 아직 올 시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LG가 포스트시즌 한을 푼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김 감독 특유의 낮은 리더십이 모래알 LG를 바꾸고 있는 건 확실한 듯하다.
그는 슈퍼스타 출신이다. 타격하면 김기태였다. 그런 그가 요미우리와 LG 2군에서의 짧은 지도자 경력을 뒤로하고 지난해 정식 1군 감독이 되자 확 달라졌다. 스타의식을 버리고 철저히 몸을 낮춘다. 성급하지 않다. 겸손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주눅들거나 움츠러드는 법 또한 없다. 자신의 소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 김기태의 부모론, “임찬규는 내 자식,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진다.”
LG는 지난주 4승 2패하며 하락세였던 분위기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무리가 개운치 않았다. 기분 좋게 끝내기 승리를 거뒀으나 세리머니 과정에서 임찬규가 방송 인터뷰 중이던 KBS N 정인영 아나운서에게 물을 끼얹어 옷이 흠뻑 젖고 방송에 차질을 빚었다. 여기에 관련자들의 감정 섞인 말들이 오가며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다. 지난 2~3일 내내 야구계의 이슈는 임찬규 물벼락 사건이었다. 결론적으로 방송사의 영역을 침범한 임찬규의 잘못이 명백했다.
김 감독은 28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난 잘 모르겠는데?”라며 짐짓 웃었다. 부드럽게 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 이내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게 사과했다. “선수의 잘못은 감독의 잘못이다. 감독에게 선수는 자식이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정인영 아나운서와 방송사에 죄송하다. 따로 연락해서 사과를 하겠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였다. 김 감독은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찬규는 또 씩씩하게 던져야 된다”라며 제자를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모든 비난 화살은 자신이 맞을 테니, 임찬규가 더 이상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 딱 부모 마음이다. 김 감독은 그렇게 LG 선수 모두를 가슴 깊이 품었다. 김 감독이 역대 그 어떤 LG 감독과는 달리 선수단 장악 및 운영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 김기태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권위적인 감독석이 불편하다
모든 덕아웃엔 감독 전용 의자가 놓여있다. 화려한 장식에 기대면 푹신할 정도의 안락함이 있다. 김 감독은 아직 단 한번도 그 의자에 앉아서 경기를 지휘한 적이 없다. 대신 ‘LG 감독용 의자’라고 적힌 작고 등받이 없는 낡은 의자에 살짝 걸터앉는다. 선술집에나 있는 허름한 의자. 김 감독은 다리가 아플 때 어쩔 수 없이 가끔 앉는다고 한다. 거의 서서 경기를 지휘한다. 김 감독은 “감독한지 얼마나 됐다고 거기에 앉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고생하는데 감독이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볼 수 없다”라는 생각. 김 감독은 덕아웃 감독 전용 의자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권위적인 의자”라고 했다.
김 감독은 누군가에게 권위적인 게 싫다. 현역시절 정말 야구 잘했던 김 감독이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닐 만하다. 하지만. 감독이 되자 각 파트별 코치에게 철저하게 전권을 맡긴다. 김 감독 역시 요미우리 연수 시절 타격 파트를 담당했으나 “타격은 김무관 코치님이 계시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최근 데뷔한 류제국 등판일정 조정도 차명석 투수코치의 의견을 최대한 따른다.
선수들에겐 형처럼 다가간다. 부산 시범경기 당시 덕아웃을 지나가던 모 선수에게 “어제 뭐 먹었어?”라고 묻자 “곱창”이라는 말을 듣더니 고개를 뒤로 제치고 손으로 술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조금 마셨습니다”라는 말에 웃고 넘어가는 김 감독. 오히려 특유의 손가락 세리머니를 하며 격려했다. 이미 LG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손가락 세리머니. 건성으로 해선 손가락을 부딪히는 게 쉽지 않다. 선수들과 진지하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어있다. 감독 계급장 내려놓고, 큰형처럼 다가서고 싶은 낮은 리더십이다. LG 선수들도 그런 김 감독을 이해한다. 보이지 않았던 벽이 사라졌다.
▲ 의연한 김기태 감독, 뒤도 안 돌아보는 굳은 소신
김 감독이 아무 때나 고개를 숙이고 타협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김 감독은 이번 임찬규 논란 속에서도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정의윤이 캠프에서 연습했던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문선재는 기동력이 좋아서 팀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투수들이 1점 승부에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박수를 보냈다. 잘못은 잘못, 칭찬은 칭찬이라는 의연한 마인드.
절대 기 죽는 법 없다. 4월 말 이후 부진에 늪에 빠졌을 때도 앓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항상 의연하게 대처한다. 지난해 9월 잠실 SK전서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기용한 사건도 주변에선 “김 감독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생각은 “SK에 이대로 당해선 안 된다”였다. 김 감독은 주위 만류도 뿌리치고 응징을 했다. 당시엔 김 감독이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 감독의 소신도 재조명을 받았다.
김 감독은 26일 잠실 SK전 무사 1루 상황에서도 정의윤에게 과감하게 페이크 번트 앤 슬러시 작전을 냈다. 갑작스러운 강공 전환과 더블플레이 위험에도 밀어붙였고, 성공했다. “코치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18초간 고민한 뒤 내가 결정했다. 의윤이가 잘해줬다”라고 여유있게 말했다. LG의 1승에 김 감독의 뒤도 돌아보지 않는 굳은 소신이 있었다.
김 감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불세출의 스타 감독으로 본다. 그렇지 않다. 임찬규 물벼락 사태에서 지도자 김기태의 낮은 리더십이 보였다.
[김기태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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