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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더 이상 류현진을 예측하면 안될 것 같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29일 완봉승.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경기를 생중계한 MBC 스포츠 플러스 한명재 캐스터의 굵고 떨리는 음성이 29일 낮 대한민국 야구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외신도 칭찬 일색이었다. 류현진은 경기를 미국 전역에 생중계한 ESPN, LA 최대 일간지 LA 타임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까지 싹 접수해버렸다. 국내에서도 주요 언론이 시간대별로 류현진 소식을 전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도 점령했다.
하루가 지났다. 다시 차분해질 때다. 투수가 좋은 투구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평상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듯, 팬들도 이쯤에서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 류현진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다. 지금 시점에선 지나친 장밋빛 전망, 필요 이상의 빡빡한 시각 모두 배제할 때다.
▲ 진화하는 괴물, 사람들의 예측을 뛰어넘는다
류현진의 29일 LA 에인절스전 완봉승은 단순한 완봉승이 아니었다. 투구 내용이 고무적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총 29타자를 상대해 내야땅볼이 무려 14개였다. 삼진은 그의 절반인 7개. 가장 위험성이 높다는 외야 플라이는 6개였다. 피안타 단 2개. 무사사구. 초반 제구가 높게 형성됐으나 직구로 힘있게 밀어붙인 뒤 경기 중반 이후 변화구 사용빈도를 높였다. 에인절스 타자들을 농락한 한 판이었다.
류현진은 5승을 달성한 23일 밀워키전을 비롯해 최근 몇경기서 서드피치인 커브의 비중을 높였다. 류현진을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도 미리 분석하고 들어온다는 느낌이었다. 직구-체인지업의 단순한 조합으론 더 이상 힘 있는 메이저리거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결론. 때문에 류현진으로선 투구패턴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커브의 적극적인 활용은 성공적이었다.
29일 경기서 또 한번 변했다. 초반에 오히려 직구 승부로 간 뒤, 경기 중반 직구에 포커스를 맞춘 타자들에게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걸었다. 경기 막판 갑자기 삼진이 늘어난 이유였다. 이렇듯 류현진은 스스로 먹고 살길을 개척하고 있다. 또 다음 등판에서도 이런 수 싸움은 계속된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이날 경기막판에도 패스트볼이 153km를 찍었다. 스테미너 논란 역시 잠재웠다는 의미. 쉬어가는 타순 없이 1~9번타자 모두 전력피칭 하는 통에 경기 중반 구위가 다소 떨어지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맞춰잡기로 투구수를 아끼면서 끝까지 위력적인 볼을 던졌다. 이런 점들은 류현진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 현지에선 류현진이 잠시 부침을 겪었을 때 “이대로는 쉽지 않겠다”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예측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 전국구스타? 신인왕후보? 전국 생중계에서 강렬함 입증
류현진 완봉승 경기는 미국 스포츠전문케이블채널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 경기 플레이볼이 미국 서부시간으로 28일 저녁 7시였다. 류현진이 완봉승을 거두고 포수 AJ 앨리스와 감격의 포옹을 나눌 때엔 동부 시간으로도 프라임 타임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MBC 스포츠플러스, KBS N, SBS ESPN 같은 방송사가 류현진의 완봉승 장면을 미국 모든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메이저리그는 매일 14~15경기가 열린다. 스포츠전문케이블채널보단 지역방송의 중계가 더 발달돼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 유료회원가입을 하면 전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 어쨌든 1경기서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고 해서 그 파급효과가 미국 전역에 미치는 건 어지간해선 쉽지 않다.
마침 류현진이 등판한 에인절스전은 미국 메모리얼데이 주간을 맞아 전국에서 관심을 끄는 캘리포니아주 지역 라이벌전이었다. 일명 LA-애너하임 프리웨이 시리즈. 아무래도 전국방송을 타게 되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모두 안테나를 세우게 돼 있다. 미국 굵직한 언론들도 좀 더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때문에 완봉승 직후 류현진에게 “전국구스타 발판” “신인왕 유력후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류현진이 스타성, 괴물 기질이 있다.
▲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지는 말자
미국 전역 생중계에서의 강렬한 모습은 분명 전국구 스타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아직 류현진은 미국 대부분 지역의 팬들에게 낯선 동양인 투수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신인왕 역시 전국 생중계 파급효과는 크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 이제 류현진은 11차례 선발로 나섰다. 올 시즌 던져야 할 공이 던졌던 공보다 더 많다. 미국 언론은 원래 수식어의 마술사들이다. 1경기 잘하면 띄워주고, 1경기 못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다반사다. 아무래도 이날 류현진 완봉승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미국 특유의 립 서비스가 조금은 섞여있다고 보면 된다.
좀 더 꾸준한 모습을 보였을 때 기대하고 흥분해도 늦지 않다. 과거 박찬호 역시 거쳤던 과정이다. 몇 년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면서 FA 대박을 쳤고, 미국 어디에서도 알아주는 동양인 야구스타가 됐다. 그런 박찬호 역시 텍사스 시절엔 무지하게 욕도 먹었다. 류현진은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미국 언론들 역시 그런 류현진을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들은 만약 류현진이 당장 몇 경기 연속으로 부진하면 곧바로 의문부호를 달 주체들이다. 하루아침에 전국구 스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류현진은 확실히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계약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닌 것 같다. 그 흔한 예측도 아직은 섣부르다. 다저스는 이제 50경기 치렀다. 시즌 3분의 1도 소화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괴물의 메이저리그 정복기와 미국 언론의 반응을 지켜보면 될 것 같다.
[류현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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