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두 사람은 한 배를 탔다.
삼성 이승엽에 대한 류중일 감독의 신뢰. 절대적이다. 지난해 일본 생활을 접고 컴백했을 때부터 그랬다. 김성래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치들 역시 “따로 조언이 필요 없다”라며 극찬을 보낸다. 류 감독의 절대적인 믿음. 이승엽이 올해 한국에서 뛴 시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도 여전하다.
이승엽은 12일 현재 타율 0.230이다. 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5번째로 낮다. 천하의 이승엽이 시즌 중반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도 멘도사라인을 전전하고 있다. 타격 타이밍도 맞지 않고 변화구에 급하게 방망이가 나간다. 33타점으로 팀내에서 타점이 가장 많지만, 홈런은 4개에 불과하다. 장타율도 0.363에 불과하다. 지난 주말 두산은 이승엽의 앞 타자를 거르고 이승엽 타석에서 만루 작전을 활용했다. 이쯤 되면 슬럼프 혹은 시련을 넘어선 국민타자의 굴욕이다. 이승엽은 지금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 이승엽-류중일, 베이징올림픽 이승엽-김경문?
5년 전 베이징올림픽. 첫 경기 미국전서 타점을 기록한 이승엽은 이후 침묵했다. 대표팀 김경문 감독은 눈 하나 꿈쩍거리지 않고 이승엽을 계속 중심타자로 기용했다. 이승엽은 결국 살아났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8회 역전 우월 투런포, 쿠바와의 결승전 1회 선제 좌월 투런포.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 역전 홈런은 지금도 한국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 중 하나로 회자된다.
우승 이후 김경문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승엽을 기용했다. 잘 되면 승엽이도 살고 나도 사는 거고, 잘 안되면 승엽이도, 나도 같이 실패하는 것이다.” 김 감독의 뚝심이 결국 통했다. 이승엽은 일본전 역전 투런포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스승의 믿음에 감사하고 미안했다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5년 전 얘기를 장황하게 적은 건, 지금 류중일 감독과 이승엽의 관계가 5년 전과 묘하게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이승엽이 잘해주든, 그렇지 않든 꾸준하게 3번으로 기용하는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5년 전 김 감독과 마찬가지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의미다.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었던 이승엽을 그만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 류중일 감독 “차우찬 빼면 그 자리는 누구?”
삼성 마운드에 최근 차우찬의 분전이 돋보인다. 그는 시즌 초반 극심한 제구 난조로 선발진에서 탈락했다. 이후 롱릴리프로 등판 중인데, 최근 확실히 페이스가 좋다. 6일 목동 넥센전서 7경기 연속 무실점행진이 끊겼으나 9일 대구 두산전서 다시 3⅔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류 감독이 꾸준하게 기용하며 믿음을 보내자 살아났다.
류 감독은 내심 억울했던 모양이다. 지난 6일 목동 넥센전을 앞두고 차우찬 얘기가 나오자 “우리팀에서 차우찬보다 잘 하는 왼손투수가 누가 있노. 팬들은 걔 못하니까 빼라고 하는데 2군에 더 좋은 투수가 있으면 바로 쓰지. 없잖아”라고 했다. 감독이 선수에게 무한 믿음을 보내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승엽도 마찬가지다. 류 감독은 배려를 하고 있다. 삼성 3번타자는 이승엽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물론 박석민, 채태인 등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이승엽이 해줘야 팀 타선이 가장 강해지는 것이라 본다. 지금까지 이승엽이 3번에서 부진했으나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나중에 결정적인 상황에만 해줘도 충분하다는 생각. 대다수의 전문가도 결국 이승엽은 제 페이스를 찾을 것이라 본다. 나이에 대한 편견도 아직은 이르다.
▲ 무한믿음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
간판타자의 슬럼프. 감독의 대처는 어떨까. 일단 타순을 바꿔주거나 하루 정도 쉬어가게 한다. 그럼에도 부진할 경우 2군으로 내보내거나 경쟁에서 낙마시키기도 한다. 충격요법을 쓰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 지금의 류 감독처럼 꾸준한 믿음을 보내는 것. 류 감독은 이승엽의 상징성을 감안해 타순조차 내리지 않는다. 물론 “하루쯤 벤치에서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라며 6일 목동 넥센전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를 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두산과의 홈 3연전서는 다시 정상 출전했다. 부진 역시 이어졌다.
감독의 무한한 믿음에 대한 긍정론. 살아날 경우 감독과 선수의 신뢰가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된다. 다른 동료 선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팀 전체에 안정감을 꾀할 수도 있다. 부정적인 측면. 부진한 간판타자 대신 더 잘 하는 누군가가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의미다. 공정한 경쟁의 축이 무너질 우려도 있는 것. 무한한 믿음이 선수 본인에게 되려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거듭된 부진으로 팬들에게 욕을 먹는 것 역시 감독과 선수 모두 이겨내야 한다.
이승엽은 최악의 슬럼프 속에서도 겉으로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과 연구에 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휴식기를 맞이한 삼성. 류 감독과 이승엽도 한 템포 쉬어가면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류 감독의 승부수가 적중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류 감독은 5년 전 해피엔딩의 재현을 믿는다.
[이승엽과 류중일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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