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난 2할3푼대 타자다. 언제까지 기다려주겠나?”
왜 삼성 이승엽이 국민타자일까.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라이온 킹의 본능이 여전했다. 20일 인천 SK전서 한국프로야구 개인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을 작성한 이승엽. 그는 지독하리만큼 냉정했다. “400홈런이 목표다”라면서도 “머리가 나빠졌다.” “2할 3푼대 타자를 언제까지 기다려주겠나.” “홈런이 아니라 안타가 나와야 한다”라고 처절한 자기반성을 했다. 신기록 달성의 흥분이 가시지 않던 20일 밤 문학구장. 경기 후 이승엽을 만났다.
▲ 352호포? 아무런 생각 없었다. 홈런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이승엽은 담담했다. 기본적으로 352호 홈런 자체를 선수생활 말년에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봤다. “내일 또 경기가 있다. 끝이 아니다”라며 옷 매무새를 다듬는 이승엽이다. 그는 윤희상에게 3회 1사 1,3루 볼카운트 2B2S에서 직구를 공략해 뽑아낸 역사적인 352호 홈런을 회상했다. “넘어갈 줄 몰랐다. 처음엔 잡힌 줄 알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라운드를 돌았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승엽은 “요즘 타격감이 워낙 안 좋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홈런이 아니라 안타를 쳐야 한다. 352호 홈런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라고 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류중일 감독도 이미 “승엽이의 컨디션이 하루 좋으면 다음날 또 안 좋다. 왔다갔다한다”라고 아쉬워했다. 14~15일 창원 NC전서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며 타격감이 올라왔다 싶었지만 16일 경기서 삼진만 4개. 결국 20일 경기서 4번타자로 출전했다. 본인도 “타순이 내려갔다면 어땠을까 싶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이승엽에겐 홈런을 신경 쓸 여유도, 홈런을 치고 기뻐할 여유도 없다.
▲ 난 2할3푼대타자, 둘째가 아버지가 좋은 선수라는 걸 알아야 할텐데…
이승엽은 사실 올 시즌 한국에서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날 홈런 포함 3안타를 때렸으나 여전히 타율 0.237 7홈런 43타점이다. 팀내 타점 선두이지만, 낮은 타율은 이승엽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 예리한 변화구에 방망이가 휙휙 돌아간다. 장타력도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홈런이 될 타구가 워닝트랙에서 잡힌다.
가장 큰 문제는 어쩌다 2~3안타를 몰아쳐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 류 감독이 지적한대로다. 이승엽은 “그게 제일 큰 걱정이다. 홈런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솔직히 요즘 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 이게 아닌데. 자책을 했다. 부담은 없었는데 너무 느낌이 좋지 않았다”라고 했다. 351호 홈런도 완벽한 밸런스가 아니라고 했다. “느낌이 좋은 홈런이 아니었다”라는 게 이승엽의 설명.
좀 더 솔직하게 말했다. 취재진이 언제까지 야구를 하고 싶으냐고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 최대한 오래하고 싶다”라면서도 “난 2할 3푼대 타자다. 언제까지 기다려주겠나”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승엽은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그는 “안타가 나와야 홈런도 나오는 것이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자신에겐 지독하게 냉정한 이승엽이다.
기자가 아내 이송정 씨와 두 아들(은혁, 은엽 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승엽은 “요즘 부진하니까 집사람이 아무 말도 안 한다. 오늘도 평상시와 똑같이 연락을 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내 솔직한 말을 꺼냈다. “둘째 아들이 이제 세살이다. 아버지가 야구선수라는 걸 알지만, 좋은 선수였다는 건 모른다. 둘째가 아버지가 좋은 선수였다는 걸 느낄 때 그만두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 홈런 3대 하이라이트 필름 “통산 첫 홈런, 2002년 48호, 2003년 56호”
이승엽은 “352개 홈런을 모두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나온 홈런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홈런을 쳤을 때 상대 투수, 볼카운트, 구질, 방향, 경기 상황까지 모두 복기할 수 있다는 것. 이승엽에게 물어봤다. 가장 기억나는 홈런 세 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역시 데뷔 첫 홈런이었다. 이승엽의 역사적인 데뷔 첫 홈런은 1995년 5월 2일 광주 해태전서 이강철에게 뽑아냈다. 이승엽은 “19살 때였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홈런을 쳤구나’였다. 광주구장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라고 웃었다. 이승엽은 넥센 이강철 수석코치가 “내가 이승엽을 키운거야”라며 홈런 순간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고 전하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은 건 투수에게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두번째 홈런은 역시 2002년 정규시즌 마지막날 열린 광주 해태전이었다. 당시 이승엽은 연장전서 극적인 47호 홈런을 뽑아냈다. 심정수를 1개 차로 제치고 단독 홈런왕을 확정지은 순간이었다. 마지막 홈런은 역시 2003년 10월 2일 대구 롯데전. 이승엽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일시즌 56호 아시아신기록이었다. 상대는 이정민이었다. 이승엽은 “라이너로 제대로 넘어갔다. 그땐 정말 홈런 칠 때 느낌이 좋았다”라고 했다.
▲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400홈런 목표로 뛰겠다
이승엽은 솔직했다. 그리고 담백했다. “오늘 홈런은 느낌이 좋았다. 홈런을 치고도 느낌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라고 추억에 잠겼다. 이어 “좋았던 감각이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데. 홈런보다 3안타를 친 게 더 중요하다. 계속 이 감각을 이어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엽은 굶주린 사자다. 홈런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야구를 그만두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400홈런을 목표로 뛰겠다. 한일통산 511개의 홈런은 공식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라고 했다. 48개 남은 400홈런이다. “언제 달성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400홈런을 쳐야 마음 편하게 은퇴를 할 수 있겠다는 의미다.
이승엽은 요즘 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렇게 타격감이 안 좋은데도 팬들이 “홈런 안 쳐도 됩니다.” “힘내세요, 못해도 돼요”라고 하시더라. 정말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매 게임 더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다”라고 했다. 이어 “처음엔 1군에 드는 걸 목표로 뛰었다. 이렇게 홈런을 칠 것이라고 생각도 안 했다”라며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이승엽은 인터뷰 말미 “요즘 잘 치는 타자가 많다. 최정, 김태균도 있고”라고 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 프로란 승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했다. 힘 닿을 때까지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것. 역사적인 홈런을 친 자신에게 지독하게 냉정했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나 아직 안 죽었어”라며 생명연장의 꿈을 꾸는 노장들과는 다르다. 자신의 진짜 상태를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말. 바꿔 말하면 37세 베테랑 국민타자가 먹고 사는 법이다.
[이승엽. 사진 = 문학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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