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베테랑들의 여름은 춥다.
한화 김응용 감독은 “감독은 사계절 내내 벌벌 떤다”라고 했다. 승부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의미. 선수도 마찬가지다. 각 팀 베테랑, 아니 노장 소리를 듣는 선수들에겐 하루하루가 아쉽다. 좀 더 잘하고 싶은데 몸과 기량은 예전같지 않다. 새파란 젊은 후배들은 자꾸 치고 올라온다. 성적과 리빌딩을 동시에 성공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선 기왕이면 젊은 선수를 쓰고 싶어 한다.
프로야구에서 베테랑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올 시즌 KBO에 등록된 최고령 선수는 KIA 최향남이다. 그는 1971년 3월 28일생이다. 한국나이로 마흔 셋. LG 최동수와 류택현도 각각 1971년 9월, 10월생이다. 1972년생인 SK 박경완과 1973년생인 넥센 송지만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이들은 올 시즌 KBO에 등록된 5명의 만 40대 현역선수. 이들 중 5일 현재 1군 엔트리에 등록된 선수는 류택현이 유일하다.
▲ 야구선수들 수명 길어졌지만… 노장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일전에 “요즘 선수들은 야구 참 오래한다. 내가 현역으로 뛸 때만 해도 30살만 되면 노장이라고 했다. 이젠 30대 중반까지 야구하는 건 예사다”라고 웃었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30대 초반에 은퇴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야구 선수들에게 30대 초반은 전성기다.
전문가들은 FA가 활성화됐고, 최근 몇 년간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너도나도 몸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 지적한다. 과거보다 몸 관리를 훨씬 체계적으로 하기 때문에 야구를 오래할 수밖에 없다. 야구는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스포츠. 나이가 들어 운동능력이 떨어져도 노련미를 내세워 잘 할 수 있는 스포츠다.
올 시즌 베테랑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로 단연 LG 이병규를 꼽을 수 있다. 이병규는 1974년생으로 한국나이 불혹이다. 올 시즌을 부상으로 뒤늦게 출발했지만, 39경기서 타율 0.357 3홈런 33타점이다. 규정타석에 들지 못한 장외 타격왕. 류택현 역시 29경기서 11홀드 평균자책점 3.52다. 리그 최강의 왼손 원포인트 요원. NC 이호준도 타율 0.278 9홈런 55타점을 기록 중이다. 젊은 선수가 많은 NC를 지탱하는 중심 축이다.
문제는 이병규, 류택현, 이호준이 특수 케이스라는 것이다. 대부분 30대 중, 후반 베테랑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한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안 따라준다. 현역 생활을 해도 주전으로 뛰는 게 쉽지 않다. 일전에 한 30대 후반 베테랑은 “나 같은 노장들은 1군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지상과제다. 주전? 쉽지 않다”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 성적+리빌딩, 베테랑들은 경쟁할 기회를 잃는다
최근 몇 년간 베테랑들이 급속히 뒤로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젊은 선수들이 채우고 있다. 9개 구단을 살펴보면 주전 라인업에 35세 이상 선수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다. 삼성 이승엽, LG 이병규, 두산 홍성흔, SK 박진만, 조인성, NC 이호준 정도다. 범위를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선수로 넓히면 좀 더 많은 선수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1군에서 자신의 입지가 확실한 30대 중, 후반 선수는 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감독 입장에선 성적과 동시에 세대교체. 즉 리빌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기량이면 베테랑의 연륜보단 젊은 선수의 패기를 믿는 편이다. 그게 현재와 동시에 미래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때문에 일단 나이가 30대 중반 이상이 넘어가면 기본적으로 젊은 선수들과 동등한 경쟁 기회를 얻는 게 쉽지 않다. 그들이 젊은 선수들을 확실하게 실력으로 누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더더욱 그렇다. 일부는 구단으로부터 은퇴를 종용받기도 한다.
결국 베테랑들은 퓨처스리그에서 혹시 모를 1군 콜업을 기다린다. 그마저도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모 구단 1군코치는 “퓨처스리그는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무대다. 베테랑들이 꾸준히 경기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라고 했다. 점점 베테랑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규칙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경우 컨디션 조절이 어렵다. 경쟁에서도 밀린다. 베테랑들에겐 일종의 악순환이다.
▲ 그래도 베테랑들의 노련미가 필요하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베테랑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령탑 중 한 명이다. 그는 SK 감독 시절에도 꾸준히 베테랑들을 기용해왔다. 젊은 선수들과 최대한 동등하게 경쟁기회를 배분했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 역시 베테랑들의 경륜을 높이 산다. 정규시즌 긴 여정에서 고비와 마주칠 때 베테랑들의 경험과 노련미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한 야구관계자는 “어느 팀이든 시즌 중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그때 베테랑이 해줘야 할 부분이 꼭 있다. 각 팀들이 베테랑들을 평소에 잘 관리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베테랑들이 물러난 뒤 그 빈자리를 젊은 선수들이 옳게 채워주지 못하면서 리그 하향평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부 야구인들의 생각.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2000년 삼성에서 뛴 1958년생 훌리오 프랑코는 만 50세에 은퇴했다. 한국에서 다시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일본 최고령 현역선수인 1965년생 주니치 야마모토 마사는 올해 4월 9일 야쿠르트전서 47세 7개월로 역대 최고령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자기관리다. 현재 주전으로 뛰고 있는 30대 중, 후반 베테랑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관리가 뛰어나다.
국내 투타 최고령 기록 대부분은 양준혁 SBS ESPN 해설위원과 송진우 한화 투수코치가 갖고 있다. 그 기록들이 언제 깨질지 기약이 없다. 그들의 노련미와 아우라에 필적할 베테랑들이 더 많이 나와야 프로야구에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베테랑들의 개인적인 노력과 동시에 각 팀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올 시즌 맹활약 중인 류택현(위), 이병규(가운데), 이호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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