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플랜B. 요즘 가장 중요한 명제다.
사람의 인생에서 플랜B란 어떤 의미일까. A라는 길을 여유있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혹시 A로 풀리지 않더라도 든든한 B로 인생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 플랜B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인생이란 안정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플랜A밖에 없는 사람은 A라는 길이 막힐까봐 매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야구도 인생사와 똑같다. 찌는 듯한 무더위. 퍼붓는 장맛비. 야구선수들에게 1년 중 가장 컨디션 조절을 하기 힘든 시기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딱 지금”이라고 말한다. 더워서 서 있기도 싫은데 3시간 넘게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꾸 퍼붓는 비는 지나친 휴식을 제공해 실전감각을 뚝 떨어뜨리기도 한다. 요즘엔 너나 할 것 없이 선수들의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서 5~6개월을 이끌어가는 정규시즌 장기레이스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게 플랜B다. 플랜B는 강팀과 약팀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 선두 삼성의 저력, 슈퍼백업의 힘
삼성은 확실히 6월 이후 경기력이 시즌 초반만 못하다. 불안한 선두를 지키고 있는 삼성에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단연 정현이다. 삼성은 부산고를 졸업한 유격수 요원 정현에게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실력을 끌어올리게 할 계획이었다. 장기적으론 김상수의 든든한 백업요원으로 만들 심산.
하지만, 류중일 감독은 김상수가 최근 가벼운 손목통증으로 경기에 나서기 힘들게 되자 정현을 1군으로 올려 주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활약이 나쁘지 않다. 4경기서 13타수 4안타. 13일 대구 한화전서는 데뷔 첫 홈런을 치기도 했다. 유격수 수비 안정감도 괜찮다. 10년 이상 주전일 것 같았던 김상수가 아파도 삼성의 센터라인은 든든하다.
김상수의 부상은 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류 감독은 굳이 무리를 시키지 않고 플랜B를 가동했다. 자연스럽게 플랜A의 큰 부상 방지, 컨디션 조절이 용이해졌다. 한편으론 플랜A에 대한 긴장감 조성도 가능하다. “자리는 잡는 사람이 임자”라는 게 류 감독의 모토. 최근 맹타행진을 벌이며 잘 나갔던 김상수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삼성은 건전한 주전경쟁, 안정적인 장기레이스 운용이 가능하다. 괜히 3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노리는 게 아니다. 김태완, 정형식, 우동균 등도 타팀에 가면 주전으로 중용될 선수들이다.
▲ LG 케이스, 되는 집안은 영웅이 매일 바뀐다
올 시즌 잘 나가는 LG를 봐도 플랜B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LG는 5월 말부터 상승세를 탔다. 그 중심엔 문선재, 김용의, 정의윤 등 새로운 플랜A였다. 김기태 감독은 이들이 잘 해줄 것이라 예상하고 전격 중용했고, 주효하면서 신바람을 탔다. 11연속 위닝시리즈. 그런데 지난 주말 천적 넥센에 3연패를 당하며 흐름이 한풀 꺾였다. 여기서 LG의 진짜 힘이 나타났다. 이번 주중 NC와의 홈 3연전을 스윕한 데 이어 13일 SK마저 누르며 4연승 상승세를 탄 것이다. 순위를 다시 2위로 끌어올렸다.
LG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플랜B가 원활하게 가동된다. LG는 삼성만큼 백업이 탄탄한 건 아니다. 그러나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가는 방법에서 유연함을 뽐내고 있다. 신진세력이 앞에서 돌풍을 이끌었다면, 요즘은 잠잠했던 베테랑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최근 연속타수 안타 신기록을 세운 야수 최고참 이병규를 비롯해 이진영, 박용택, 정성훈 등이 만점활약을 펼친다. 마운드에서도 류택현과 이상열 베테랑 듀오가 소금 같은 활약을 펼친다.
매일 영웅이 바뀐다는 것.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는 의미다. 상대팀도 이런 팀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A로도 이길 수 있고 B로도 이길 수 있는 LG. 한번 흐름이 꺾이자 맥없이 추락했던 예년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문가들은 올 시즌 LG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본다. 2013년 LG 야구엔 예년과 다른 안정감이 느껴진다. 삼성과는 좀 다른 플랜B의 힘이다.
▲ 불안한 장기레이스 이어가는 KIA, 한화 사례
불안한 장기레이스를 이끌어가는 팀은 결국 중, 하위권으로 처지기 마련. 대표적인 사례로 KIA와 한화를 꼽을 수 있다. KIA 선동열 감독은 지난해부터 수 차례 “백업이 약하다”라고 걱정했다. 실제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주전멤버의 능력만 놓고 보면 KIA는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들이 매년 우승후보로 불리는 이유다.
문제는 KIA에 최근 몇년간 부상 악령이 끊이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왼쪽 무릎 부상을 털어내고 1군에 복귀한 이용규가 13일 잠실 두산전서 선발로 나서지 못한 이유도 어깨통증 때문이었다. 실질적 에이스 양현종도 복귀 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굳이 최근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입에 실패한 것도 주전들의 줄부상 때문이었다. 유독 KIA에 부상자가 크게 부각되는 건 그들을 대신할 선수들의 활약이 미미하기 때문에 그 공백이 커 보이는 것이다. KIA는 최근엔 실전감각 문제까지 겹쳐 6위로 추락했다. 6위에 그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적지만, 앞날이 마냥 밝은 것도 아니다.
최하위 한화도 마찬가지. 최근 수년간 리빌딩 실패 후유증을 톡톡히 겪고 있다. 김응용 감독은 시즌이 절반이 지난 최근에서야 주전, 백업 교통정리를 완료했다. 하지만, 몇몇 선수가 갑자기 부진하거나 부상을 입을 경우 대안이 많지 않은 게 현실. 실제 13일 대구 삼성전서 송광민과 조정원을 연이어 빼자 3루수 요원이 없었다. 김태완을 부랴부랴 기용했으나 8회 불안한 수비로 2실점을 한 원인이 됐다. 주전을 위협하는 백업도, 백업을 간절하게 하는 주전의 힘도 부족하다. 그만큼 한화에 플랜B가 부실하다는 의미다. 최하위를 달리는 한화의 현주소다.
[정현(위), 이병규(가운데), 이용규(아래). 사진 = 삼성 라이온즈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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