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동안 너무 안이하지 않았나 싶어요.”
윌리엄존스컵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남자농구대표팀 유재학 감독. 15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그는 “내년 스페인 농구월드컵 진출 가능성은?”이라는 질문에 단박에 “50%”라고 말했다. 머뭇거림이 없었다. 매우 피곤한 표정의 유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시원하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한국농구에 냉정한 잣대를 들이댔다.
▲ 亞선수권 3위? 유재학 감독의 냉정한 50% 발언
존스컵서 드러난 아시아 농구 지형도는 분명했다. 최근 몇 년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양분한 중국과 이란이 강력한 2강구도를 구축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중국과 양강을 형성했으나 이미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이 추락한 건 오래 전 일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경계해야 할 팀으로는 꼽아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14일 대만전 완패. 아무리 존스컵이라고 해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퀸시 데이비스라는 206cm짜리 귀화선수에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했다. 레바논, 요르단, 일본 등에도 귀화선수가 버티고 있다. 레바논은 218cm의 로렌 우즈가 최근 귀화를 허가 받아 아시아 선수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도 장신 귀화선수가 있다고 한다. 유 감독은 “대부분 팀에 귀화선수가 1명씩 꼭 있다. 누가 세계대회 티켓을 딸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한국은 신장과 힘에서 이미 아시아 정상권이 아니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유 감독은 “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유럽농구를 구사한다. 2m넘는 포워드들이 즐비하다. 외곽에서 3점을 마구 집어넣는다.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막질 못한다”라고 했다. 218cm의 이란 간판센터 하메드 하다디는 NBA리거답게 힘과 탄력, 기술에서 탈아시아급이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이란은 저 멀리 달아났다. 한국은 레바논, 요르단, 일본, 필리핀, 대만에도 더 이상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유 감독은 “아시아선수권서 100%로 붙으면 누가 이길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했다. 한국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내년 스페인 남자농구월드컵에 출전할 가능성이 50%라고 한 유 감독의 말. 굉장히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장신자 수비에 대한 해법도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3년 전 광저우아시안게임서 은메달을 이끌어낸 유 감독. 이번엔 현실을 즉시하고 있다.
▲ 만수의 안타까운 외침, “우리가 너무 안이했다”
유 감독의 별명은 익히 잘 알려진대로 만수(萬壽)다. 만 가지 수를 갖고 있다며 붙여진 별명. 그는 통산 400승(425승)을 돌파한 한국농구 최고의 명장이다. 그런 그도 한국농구가 아시아권에서 조차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던 모양이다. 유 감독은 귀화선수 등 장신자 수비에 대해서 “장신자가 골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 아예 골밑에 박히게 해서 밖으로 나오는 볼을 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 등을 연습해야 한다”라면서도 “자유투 성공률 높이고 상대에게 자유투를 덜 주는 것, 실책을 줄이는 것, 움직임을 정확하게 가져가는 것 등으로 10점을 줄여야 한다”라고 했다. 현실적인 선택이다.
근본적으로 한국농구가 아시아권에서도 인사이드 열세를 극복하기가 어렵다. 이제 아시아선수권대회는 보름 앞으로 다가온 상황. 유 감독도 이런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듯했다. “우리도 돈만 있으면 되는 건데”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공식적으로 스카우트, 전력분석 등 대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유 감독은 로렌 우즈, 퀸시 데이비스 등 귀화선수에 대한 정보를 대만 현지에서 뒤늦게 입수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문제지만, 대한농구협회나 KBL에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단순히 존스컵 성적과 지원 미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농구가 최근 국제대회서 연이어 악몽을 맛봤음에도 유망주 체계적 육성, 정보, 전력분석, 대표팀 관리 등에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존스컵서 또 한번 확인했기에 유 감독으로선 속이 타는 것이다.
만수를 가진 천하의 유 감독. 아시아선수권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기본적인 지원 미비와 한국농구의 태생적인 체격, 기술 한계 속에서 세계대회 진출을 일궈내기란 쉽지 않다. 유 감독도 결국 농구 감독 일뿐이다. 마술사가 아니다.
[유재학 감독(위), 남자농구대표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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