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경민기자]“봉준호 감독의 신작”.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167개국에 판매된 블록버스터 영화”.
온갖 수식어가 붙은 올 여름 최대어 중 하나로 불리던 ‘설국열차’ (제작 모호필름, 오피스 픽쳐스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허를 찌르는 영화였다.
아니, 정치 조직과 권력 모두를 부정하는 ‘아나키즘’(anarchism)의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는 80년대였다면 절대로 상영 불가능한, 21세기에서나 한국에서 제작 및 상영이 가능한 ‘나쁜영화’일 수도 있다.
‘설국열차’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막기 위해 CW-7이라는 물질을 대기권에 대량 살포하면서 만들어낸 빙하기 이후를 그렸다. 윌포드라는 열차에 미친 인물이 만들어낸 내부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구를 횡단하는 관광열차는 인류 최후의 생존을 위한 ‘노아의 방주’가 된다.
하지만 이 열차 안에서는 사회적 계급과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가장 뒷 칸, 즉 무임승차한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단백질스틱을 먹으면서 인간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앞 칸에서는 그들은 잊어버린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산다는 소문만 돌 뿐 이들은 그 실체를 보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설국열차’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다면 밀폐된 열차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사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열차라는 ‘사회’와 각 칸으로 구분지어진 인간의 ‘계층’. 그리고 그 계층은 칸이라는 굴레 속에 엄격히 통제되고, 그들의 역할이 나뉘게 된다. 이 영화는 열차라는 작은 공간을 우리 사회에 투영했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아나키즘’을 그렸다.
봉준호 감독은 이 무거운 소재와 다국적 제작진이 모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그렸다.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에카테리나 다리에서의 참극과 새해를 맞는 열차 속 구성원들의 모습. 그리고 월포드를 만난 커티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당도하고 싶던 가장 앞 칸에서의 모습에는 비장미와 함께 무릎을 치게 하는 반전을 담아냈다.
여느 감독들이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도전을 했을 때, 자신의 색깔을 잃고 관객을 실망시킨 우를 봉준호 감독은 범하지 않았다.
‘설국열차’는 여름 블록버스터들의 성향인 ‘온 가족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틀을 깼다. 진정한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관객은 열차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그 사회의 통제와 그 파괴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긴장감의 끈을 놓지 못하던 초반부와 비교해서 중반부에서는 갑자기 흐름이 느슨해진다. 극 말미에 갑자기 우수수 죽어 나가는 매력 넘치는 조연배우들 또한 아쉽다.
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것이 어느 순간 제작비 대비 잘 나온 ‘버터냄새’나는 영화로 변질된 부분이 있다. 이런 ‘블록버스터’ 개념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던질 수 있는 ‘한 방’이 있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그가 만들어낸 ‘괴물’과 ‘살인의 추억’이 그랬듯 말이다.
‘설국열차’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겁다. 단순히 ‘열차’라는 폐쇄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액션만을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곱씹어야 하는 즐거운 고통을 관객들은 오는 8월 1일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 스틸컷.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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