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작년에 농구 그만두려고 했죠.”
하나외환 김정은. 온양여고를 졸업하고 2006년 신세계에 입단한 8년차 포워드. 요즘 여자농구에선 저연차 선수가 주전으로 뛰는 게 쉽지 않지만, 김정은은 입단하자마자 주전으로 중용됐다. 그만큼 주위에서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김정은은 기대대로 폭풍 성장했다. 데뷔 첫해 신인왕을 거머쥔 뒤 국내 여자선수로서는 드물게 원핸드슛을 장착했다. 저돌적인 돌파와 파이팅 넘치는 투지를 앞세워 국가대표 포워드로 성장했다. 득점왕, MVP도 해봤고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무대 경험도 제법 쌓았다.
그녀가 풀지 못한 숙제도 있다. 우선 지난 7년간 소속팀을 단 한차례도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지 못했다. 또 하나. 일각에서 그녀를 향해 보내는 냉정한 시선을 아직 완벽하게 잠재우지 못했다. 이런 김정은은 여전히 농구에 목이 마르다. 지난 4월부터 팀 훈련을 착실히 소화하면서 2013-2014시즌을 기다린다. 지난 17일 서울 청운동 숙소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 너무 힘들었던 2012년, 농구 그만두려고 했다
2012년 봄. 김정은에겐 따뜻하지 않은 봄이었다. 7년간 몸 담아온 신세계의 돌연 해체선언. 기자와 인터뷰를 한 구단 사무실 옆 회의실에서 불과 1년 3개월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김정은은 “그때도 이 자리였다. 선수들이 쭉 일렬로 앉아있었고 그 통보를 받았다.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라고 했다. 김정은의 두 팔에 진짜로 닭살이 돋았다.
사실 김정은 정도의 기량이라면 신세계가 공중분해 돼 여자농구가 5개구단 체제로 재편됐더라도 다른 팀에서 계속 농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지난 7년간 함께한 언니들, 동생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다 같이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는데”라며 아찔한 기억을 떠올렸다. 다행히 지난 7월 하나외환의 재창단이 결정됐고, 전 선수가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아무런 지원을 받은 것도 없어서 이상한 옷을 입고 운동을 했다”라고 지난해를 떠올린 김정은. 부실한 시즌 준비. 결국 5위로 점철됐다. 한 숨을 내쉬는 그녀의 표정. 아쉬움 그 자체였다.
김정은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운동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 “대표팀에서도 솔직히 팀 생각만 났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작년에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다”라고 털어놨다. 농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점. 팀 해체에 대한 스트레스. 더 이상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등이 꼬이고 꼬여 농구에 대한 집중을 방해했다.
▲ 롤모델 (박)정은 언니, 따라가려면 멀었다
김정은은 마음을 다잡고 2012-2013시즌에 임했다. 하나외환이 WKBL 경력이 있는 나키아 샌포드를 영입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을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부상자 속출로 흔들렸다. 승부처에서의 집중력 부족 현상도 여전했다. 하나외환이 신세계 시절부터 겪어온 악령이었다. 김정은도 그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감한 얘기 좀 할께요”라는 기자의 말에 흔쾌히 동의한 김정은. 그녀는 모든 걸 이해했다. 스스로도 팀이 힘들 때 좀 더 힘을 보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조동기 감독은 김정은을 두고 “수비, 어시스트 등에 좀 더 눈을 떠야 한다”라고 했다. 자신의 득점은 챙길 줄 알지만, 아직 팀 전체를 영리하게 장악하고 나아가 경기 자체를 지배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게 김정은에 대한 주변의 평가. 쉽게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고 기록에 찍히는 건 능하다. 지난해에도 17.4점으로 득점 3위였다. 국내선수 중에선 1위. 지금 김정은은 진정한 에이스를 향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김정은도 간단하게 말했다. “아직 (박)정은 언니를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삼성생명에서 은퇴한 박정은. 현역시절 별명은 ‘농구9단’, ‘농구도사’였다. 김정은은 유독 박정은에게 끌린다고 했다. “이름도 같고, 대표팀에서 많이 배웠다.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다. 많이 가르쳐주시고 고마운 분이다. 난 도저히 정은 언니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목소리를 낮췄다.
▲ 득점왕? MVP? 이젠 정말 팀 성적이다
그래도 김정은은 WKBL 최고의 포워드다. 분명한 사실이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스스로 발전을 꾀하려는 욕망이 매우 강하다. 4월부터 시작된 혹독한 팀 훈련을 군소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 “요즘 좀 지겹네요”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김정은. 이내 신발끈을 고쳐 묶는다. “감독님이 정말 합리적이다. 강하게 밀어붙이면서도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적생 (김)보미 언니와 (이)유진이도 정말 밝다. 잘 적응하고 있다. 구단 지원도 대단하다. 이젠 정말 잘 해야 한다”라고 했다.
김정은은 “원 핸드 슛도 자세를 잡는 게 쉽지 않다. 미세한 동작 변화에 대해서 계속 연구한다”라고 했다. 본인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면 자연스럽게 팀 성적도 업그레이드 된다고 믿는다. 다가올 2013-2014시즌에 그렇게 되길 원한다. “득점왕도 해봤고 MVP도 해봤다.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이젠 정말 팀 성적이다”라는 김정은. 지난 7년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와 포스트시즌 1라운드 탈락만을 반복했던 세월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하나외환의 올 시즌 객관적인 전력은 중위권. 김정은은 땀방울을 믿는다. 지난해 우리은행이 그렇게 확 달라질지 누가 알았나. 하나외환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기자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만족하지 못하면 적어도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고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씩 웃었다. 어느덧 프로 8년차. 팀내 서열 4위. 이젠 적어도 그 정도는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의미였다. 2013년 여름. 김정은은 무더위도 잊고 자신과 팀을 채찍질하고 있다.
[김정은. 사진 =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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