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싸울 준비가 안 돼있으면 안 올린다.”
넥센 염경엽 감독의 선수단 운용 대원칙. “1군엔 준비된 선수만 쓴다.”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선수는 절대로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 여기서 ‘싸운다’는 선수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의 100%를 경기에 표출할 준비가 돼 있는 선수를 뜻한다. 염 감독은 넥센 1군 선수들에게 일종의 ‘싸움닭’이 되길 바란다.
30일 목동구장. 넥센 덕아웃의 이야기 주인공은 단연 안태영이었다. 삼성에서 방출된 뒤 고양 원더스를 거쳐 지난해 넥센에 입단한 안태영. 27일~28일 대구 삼성전서 7타수 6안타를 기록하며 일약 ‘깜짝스타’가 됐다. 30일 목동 한화전서도 3타수 2안타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염 감독은 “어려웠던 애들이 잘 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 이런 케이스가 많이 생겨야 한다”라고 웃었다.
▲ 안태영 1군행 숨은 뒷이야기, ‘포지션’ 보단 ‘감’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 왜 안태영이 27일 1군에 등록돼 첫 선발출전까지 한 것일까. 염 감독은 “포지션 보단 감이다”라고 했다. 자세히 풀어보자. 안태영의 포지션은 1루수. 염 감독은 “태영이가 수비가 좋은 편이 아니다. 지명타자 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성열과 포지션이 겹친다. 이성열 역시 지명타자와 우익수를 오간다. 그런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안태영이 이성열을 제치고 3경기 연속 선발출전했다. 홈런 16개를 친 타자를 놔두고 2군에서 갑자기 올라온 선수를 주전으로 쓰는 것. 보기 흔한 그림은 아니다.
염 감독은 “보통 2군에서 1군으로 선수를 올릴 땐 1군에서 구멍이 난 포지션을 한정해서 보기 마련이다. 포지션에만 얽매이다 보면 감 좋은 선수를 놓칠 때가 많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성열의 활용도가 줄었다. 그러나 2군에서 안태영의 타격감이 좋다는 보고를 받은 염 감독은 승부수를 걸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다시 말해서 2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가 1군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1군에 확실한 주전이 있더라도 때로는 경합을 시켜 전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염 감독은 “2군에서 준비된 선수가 1군에서 성공하면 다른 2군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된다”라고 했다.
▲ 김병현-서건창-문성현 케이스, 싸움닭만 1군에서 쓴다
결국 염 감독에게 안태영은 ‘싸움닭’이다. 일찌감치 1군에서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본 것이다. 염 감독은 감독 1년차인 올 시즌 이처럼 분명한 원칙을 갖고 선수단을 운영한다. 염 감독은 이와 같은 원칙 속에서 김병현을 2군으로 보냈고, 서건창을 1군에 올리지 않았다. 문성현은 김병현 대신 31일 목동 한화전 선발투수로 내보낸다.
염 감독은 “김병현은 종아리도 좋지 않고 밸런스도 무너졌다. 종아리 치료를 한 뒤 2군에서 선발로테이션을 돌게 할 계획이다. 언제 1군에 올릴지는 모르겠다. 1군에서 싸울 준비가 돼야 올라올 수 있다”라고 했다. 오른쪽 새끼 발가락 부상을 입은 뒤 재활 중인 서건창을 두고서도 “주전 2루수라고 할지라도 몸이 완전히 낫기 전엔 절대 1군에 올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염 감독은 “그동안 2군에서 문성현, 배힘찬, 조상우,장효훈 등을 선발로 준비시켰다”라고 했다. 1군 선발투수 5명으로 한 시즌을 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놓은 것. 염 감독은 이들 중에서 문성현이 1군에서 싸울 준비가 가장 잘 돼있다고 판단했다. 일단 문성현이 김병현이 빠져나간 선발로테이션을 메운다.
▲ 싸움닭을 만들기 위한 염 감독의 철저한 준비, 그리고 겸손함
넥센은 6월 이후 확실히 시즌초반의 광풍 행보는 아니다. LG의 엄청난 기세에 3위로 밀려났다. 4위 두산, 5위 KIA에 1경기, 1.5경기로 오히려 쫓기는 형국. 그러나 넥센이 작년보다 강해진 건 분명하다. 사실 1군에서 싸울 준비가 제대로 된 선수를 고르는 것도 염 감독의 안목이 탁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안태영의 깜짝 활약엔 염 감독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염 감독은 “2군 코칭스태프의 노력 덕분입니다”라고 겸손한 모습이다.
염 감독의 철저한 준비가 돋보이는 대목. 염 감독은 “태영이는 고양 원더스에서 지명타자만 했다. 하지만, 프로에선 수비가 약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태영이가 롱런하려면 포지션이 있어야 했다. 외야수비는 너무 불안해서 1루로 보냈다. 작년 마무리캠프에서 1루 수비 훈련을 엄청나게 시켰다. 본인도 힘들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안태영을 좀 더 가능성 있는 싸움닭으로 준비시킨 것이다. 안태영이 넥센에서도 지명타자만 가능했다면 심지어 2군에서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을 것이다.
또 다른 케이스. 염 감독은 신인 조상우를 퓨처스리그가 아닌 1군 선수단과 동행시키고 있다. “상우는 내년, 내후년에 더 많은 활약을 해줘야 할 투수다. 지금은 너무 싸울 준비가 안 돼 있다. 특히 제구력이 좋지 않아서 2군에서 경험을 쌓아봤자 효과가 떨어진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조상우를 1군 선수단과 동행시키면서 1군 투수들에게 하나라도 배우게 할 요량이다. 1군 투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싸움닭으로 거듭나라는 바람이다.
염 감독이 넥센 모든 선수를 싸움닭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는 어떤 상황이든 이겨야 한다. 부상 선수가 있다고 해서 지는 걸 팬들이 인정해주나요?”라고 반문했다. 김병현, 서건창, 유한준 등이 1군에서 빠진 넥센. 염경엽 감독의 확고한 지론 속에 싸움닭 군단으로 변신했다. 넥센이 3위를 지키는 원동력이다.
[염경엽 감독(위), 안태영(가운데),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