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우리는 추격조가 없습니다. 다 나가죠.”
현대야구에선 불펜을 필승조와 추격조로 나눠서 운영하는 게 보편화됐다. 불펜 투수들 중 가장 좋은 구위를 갖고 있는 마무리투수를 필두로 셋업맨, 원포인트 들을 경기 후반 리드 상황에 등판시켜 승리를 결정짓게 한다. 반면 경기 후반 뒤지는 상황엔 구위가 다소 떨어지는 불펜 투수를 롱릴리프로 활용해 마운드 출혈을 최소화한다.
넥센은 좀 다르다. 마무리 손승락만 세부 보직이 확실하다. 한현희, 송신영, 이정훈, 이보근, 박성훈, 김상수의 역할 분담이 썩 명확하지 않다. 염경엽 감독은 1일 목동 한화전을 앞두고 “우리는 추격조가 없다. 남들이 필승조, 추격조를 나눈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염 감독은 “나는 시즌 들어갈 때부터 필승조, 추격조를 구분하지 않고 불펜을 운영했다”라고 덧붙였다.
▲ 염경엽 감독의 마이웨이, 왜 필승조, 추격조 분업을 포기했을까
염 감독이 완전히 분업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마무리 손승락이 지는 경기에 나올 리는 없다. 또한, 김상수는 롱 릴리프다. 이기는 경기서 1~2이닝을 맡지는 않는다. 그 외엔 분업은 사실상 없다. 염 감독은 기본적으로 불펜투수 개개인이 소화할 수 있는 최다이닝을 파악했고 그걸 철저하게 지켜준다. 염 감독은 “세이브 투수는 1이닝이 원칙이다. 신영이도 나이가 들어서 1이닝 이상은 어렵다. 보근이 정도가 2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넥센 불펜은 강하지 않다. 1일 목동 한화전만 해도 8회 이보근이 흔들리는 등 마무리 손승락까지 가는 과정이 삼성이나 LG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염 감독은 “삼성같이 확실한 불펜 투수들이 있으면 필승조와 추격조를 구분해 운영하면 된다. 우리팀은 삼성만큼 확실한 불펜 투수가 없다”라고 했다. 마무리 손승락 외에 불펜 투수들의 실력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굳이 필승조와 추격조를 구분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개인별 한계 이닝을 지켜주는 게 더 중요하다.
필승조와 추격조가 구분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 염 감독은 “안지만이 부진하면 삼성 불펜의 분위기가 다운된다. 다른 투수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그런 존재감을 갖고 있는 투수가 손승락뿐이다. 다른 불펜투수들이 설령 무너져도 팀 분위기가 급격히 떨어지진 않는다”라고 했다. 기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불펜이 무너지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또 다른 투수로 위기를 넘기면 된다는 것. 염 감독의 결론. 지금 넥센 불펜은 필승조, 추격조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
▲ 불펜 투수들 혼란스럽지 않을까? 염경엽 감독의 대답은 NO!
한 가지 의문점. 넥센처럼 필승조와 추격조 구분이 없는 팀의 경우 불펜 투수들이 더 피곤하지 않을까. 쉽게 말해서 넥센 불펜은 손승락 외엔 모든 불펜 투수가 이기든, 지든 매 경기 긴장하고 대기를 해야 한다. 몸을 풀었다가 쉬는 걸 더 많이 반복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피로와 체력저하를 야기한다.
염 감독은 걱정을 일축했다. “나는 불펜 투수들을 피곤하게 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세심하게 불펜 투수들을 관리한다. “불펜 투수에게 투수코치를 통해 누구 타석에서 들어간다는 말을 해준다. 몸을 풀어야 할 때가 되면 미리 몸을 풀라고 지시한다”라고 했다. 불펜 투수들에게 미리 등판 시점을 정해주고 세심하게 준비 지시를 내린다는 설명.
등판 시점 설정엔 염 감독의 배려가 있다. “좀 더 많이 쉬었던 투수에겐 상위타선, 컨디션이 좋지 않은 투수에겐 하위타선을 상대하게 한다. 데이터 상으로도 강했던 타자들을 우선적으로 상대하게 한다. 포수에게 수시로 투수들의 구위를 체크한다. 여러가지를 확인해야 하니 내가 더 피곤하다”라고 웃었다.
염 감독에게 불펜 운용이 가장 어려운 경기는 브랜든 나이트와 밴헤켄이 등판할 때다. 보통 상대적으로 약한 4~5선발이 나오는 날 불펜을 조기에 가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불펜 운용이 힘들다. 그러나 염 감독은 원투펀치가 나오는 날 체크해야 할 게 더 많다. “두 친구에겐 최대한 많은 이닝을 맡기려고 하는 게 내 욕심이다. ‘한 타자 더, 한 타자 더’ 라는 생각이 든다. 미리 등판시점을 통보했던 불펜 투수에게 통보를 다시 해야 할 때가 생긴다”라고 웃었다.
▲ 염경엽의 촌철살인 코멘트“여친에게 인형 뽑기 선물 주는 심정으로 던져라”
염 감독이 이런 불펜 운용을 언제까지 하겠다고 선언하진 않았다. 염 감독은 “내년엔 현희는 8회를 확실하게 막아주는 셋업맨으로 키우고 싶다. 현희-승락이로 이어지는 라인이 강해졌으면 한다”라고 했다. 결국 염 감독도 궁극적으로 팀 불펜이 강해지면 삼성처럼 확실한 승리조 구축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실제 염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삼성 불펜 같은 루틴 야구를 하고 싶다. 그게 강팀”이라고 강조했다.
염 감독은 “올해는 조심스럽다. 지금도 현희에게 강한 타자는 되도록 안 만나게 해주려고 한다. 그래야 현희가 나중에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했다. 이어 “현희는 지금도 셋업맨 같지만, 사실 승락이가 많이 던졌을 땐 마무리로도 나오곤 한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넥센이 4~5월 잘 나갔던 건 이러한 세심한 불펜 운용이 원동력이라고 본다. 실제 넥센은 7회 이후 역전패한 경기가 단 1경기다. 팀 블론세이브도 9회로 리그에서 세번째로 적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 염 감독이 넥센 투수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 “여자친구에게 인형 뽑기 선물을 주는 심정으로 공을 던져라.”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500원짜리 동전을 뽑기 기계에 집어넣은 남자친구에게 인형에 대한 집중도는 최고라는 것. 그 집중력을 마운드 위에서 발휘하면 만원짜리 인형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딸 수 있다는 게 염 감독의 생각이다. 그야말로 촌철살인 코멘트다.
[염경엽 감독(위), 손승락(가운데), 한현희(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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