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잃어버린 라이벌 의식이 살아난다.
삼성과 LG는 재계라이벌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전자제품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답게 매번 경쟁의 중심축에 선다. 두 팀은 그동안 라이벌 이미지를 야구로 끌고 오지 못했다. 삼성이 21세기 들어 한국시리즈 우승만 5차례 차지하는 동안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흑역사를 보냈다. 적어도 야구에서만큼은 삼성과 LG의 격차가 하늘과 땅이었다.
그랬던 두 팀이 2013년 확 달라졌다. 맞붙기만 하면 팽팽하다. 2~4일 잠실 3연전서 LG가 2승1패로 위닝시리즈를 챙겼는데,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LG의 선전 덕분이다.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상승세가 아니다. 5월 이후 2개월 넘게 꾸준한 상승세를 타며 안정적인 2위를 지키고 있다. 안정된 투타 밸런스가 도무지 깨질 것 같지 않다. 선두 삼성도 LG를 상대하는 게 버겁기만 하다. 한국야구에 한동안 실종됐던 라이벌 의식이 살아나고 있다.
▲ SK-두산 이후 자취 감춘 명품라이벌
국내에선 몇 년까지도 SK와 두산이 명품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김성근 감독과 김경문 감독이 기동력 야구를 주창했고, 뒷문에 중심을 둔 마운드 운영을 하면서 장점이 교묘하게 맞아 들어갔다. 두 팀은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서 명승부를 연출했다. 2009년 플레이오프까지 3년 연속 가을야구서 맞붙었다. 경기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기동력이면 기동력, 장타력이면 장타력, 작전야구면 작전야구. 두 팀은 언제든 서로 장군멍군이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두 감독의 야구관이 미묘하게 달랐기에 거기서 발생하는 미묘한 오해와 승부욕이 라이벌 의식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심지어 벤치클리어링 사태도 몇 차례 일으키면서 장외 설전이 후끈 달아오른 적도 있었다. 이런 혈전 속에서 수 많은 젊은 스타들이 양산됐다. 그들이 WBC, 베이징올림픽 선전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SK와 두산은 한때 한국야구 흐름을 선도했다. 한국야구의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도 일조했다. 그래서 명품라이벌이었다.
영원한 건 없다. 두 김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 SK와 두산의 전력은 약해졌다. 공교롭게도 한국야구의 하향평준화 논란이 일어난 시점도 두 팀의 전력이 약해질 때쯤이었다. 이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상당히 희석됐다. 더 이상 두 팀은 한국야구를 선도하지 않는다. 이후 삼성이 한국야구를 쥐고 흔들며 독주했다. 적어도 지난해까진 명품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매치업이 발견되진 않았다.
▲ 삼성-LG, 명품라이벌의 조건을 갖췄다
올 시즌 삼성과 LG는 확실히 명품라이벌의 조건을 갖췄다. 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의 경기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올 시즌 LG가 급성장했다. 5월 중순 이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더 이상 DTD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팀 타율(0.287) 2위와 팀 평균자책점(3,69) 1위를 달리는 LG는 삼성만큼 안정된 전력을 자랑한다.
LG는 이제 삼성과 승부가 된다. 일단 봉중근을 중심으로 한 불펜이 삼성에 버금가는 힘을 갖췄다. 삼성이 예년보다 불펜의 힘이 약간 떨어지면서 두 팀의 뒷문 힘이 절묘하게 비슷해졌다. 또 두 팀 타선은 리그에서 가장 짜임새가 있다. 기동력과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돼 있다. 신구조화도 이뤄져 있다. 올 시즌 상대전적은 6승 5패. 두 팀은 만나기만 하면 접전이다. 지난 2~4일 잠실 3연전은 그 결정체였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승부가 아닌, 적절히 치고 받으면서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팬들은 이런 묘한 긴장감에 열광하기 마련이다.
류중일 감독과 김기태 감독은 90년대 말 삼성에서 잠시 함께 뛴 적도 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서로를 잘 안다. 잔꾀로 상대를 속이기보단 정면 승부를 선호한다. 이번 3연전서도 서로 불필요한 자극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야구를 존중했다. 이러니 팬들은 더욱 경기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효과가 있었다.
▲ 스토리만 풍부해지면 된다, 올 가을야구 대충돌이 기대된다
아직 두 팀을 ‘라이벌’로 명확하게 규정짓기는 좀 애매하다. 몇 경기 접전을 펼쳤다고 다 라이벌이 되는 건 아니다. 수년간 좋은 전력을 유지하면서 서로 대등한 승부를 벌여야 한다. 한국야구의 패러다임도 뒤흔들 수 있어야 한다. 명품 라이벌 관계엔 자연스럽게 역사와 전통, 스토리가 깃들기 마련이다. 삼성과 LG가 재계라이벌인 이유도 지난 수년간 전자업계에서 경쟁을 펼치며 이야깃거리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라이벌이 된 게 아니다.
현 시점에서 삼성과 LG는 명품 라이벌이 될 조건만 갖췄다고 보는 게 옳다. LG가 향후 몇 년간 좀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 역시 한국시리즈 패권을 연이어 차지한 팀들의 과거처럼 전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 결국 명품라이벌로 거듭나려면 스토리가 풍부해져야 한다. 좀 더 치고 받으면서 사건을 많이 남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팀이 올해 포스트시즌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건 반갑다. 포스트시즌만큼 라이벌 의식을 고취하고 이야깃거리를 생산하는 데 마침맞은 무대는 없다. 야구 팬들은 삼성과 LG의 올 가을을 기다린다.
[삼성-LG 맞대결.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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