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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배우 정웅인을 만났다. 무서운 눈빛으로 “말하면 죽일 거다. 네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죽일 거다”라고 싸늘하게 내뱉던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 속 살인마 민준국을 연기한 그를 드디어 만났다.
하지만 기자의 예상과 달리 5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차 만난 정웅인은 민준국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증언한 장혜성(이보영)을 죽이기 위해 몇 십 년 동안 감옥에서 칼날을 갈던 살인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행복함과 감사함에 가득 찬 한 사람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도 저를 무서워하더라고요. 지하주차장에서 만나면 제 손부터 보기도 하고 무서워서 엘레베이터도 같이 안타려고 하고. 정말 몰입이 됐는지 제 오른손에 뭐가 들렸는지 보는 분들도 한두 분 계셨죠. 그런 반응들이 굉장히 웃기기도 하고 그만큼 몰입됐다는 거니까 고맙기도 하고 그랬어요.” (웃음)
실제로 정웅인이 연기한 ‘너목들’의 민준국은 올해 가장 무서운 악역 중 하나였다. 이 캐릭터는 초반에는 ‘I'll be there’라는 벨소리로, 후반에는 잘린 왼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한밤 중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무표정하게 혜성의 집을 바라보는 정웅인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의 여름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정웅인의 말처럼 그는 ‘너목들’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웅인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은 물론이고 1회에 등장했던 민준국의 ‘말하면 죽일 거다. 네 이야기를 들은 사람도 죽일 거다’라는 대사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 등장할 정도로 유행어가 됐다.
“1회에서 했던 대사가 7~8회에서 갑자기 회자될 줄은 몰랐어요. 대본을 받았을 때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굉장히 기분 좋았어요. 인기야 스쳐지나가는 것이지만 연기력 쪽으로 뭔가 발휘가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거든요. 댓글들을 보면 나쁜 놈이라는 이야기보다는 ‘연기력 좋다’, ‘심장이 쫄깃해’, ‘정웅인 싫어했는데 연기는 잘 한다’ 같은 연기에 대한 표현들이 많이 생겼는데 정말 다 좋아요.”
이런 뜨거운 관심은 17년차 배우 정웅인에겐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1997년 데뷔한 그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항상 코믹 배우라는 이미지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너목들’의 민준국 캐릭터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과 영화 ‘전설의 주먹’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하게 되기까지 뭔가 계속 잘 안 맞았어요. 그러는 사이에 통장 잔고도 없어지고…. 웬만하면 다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쪽에서 절 찾지 않았죠.”
대신 ‘너목들’의 조수원 PD는 정웅인에게 숨겨져 있던 섬뜩함을 발견해냈다. 조수원 PD가 전작인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끝낸 후 가장 먼저 접한 영화가 ‘전설의 주먹’이었다는 것이 그 계기였다. ‘전설의 주먹’ 속 정웅인의 모습은 충분히 비열할 정도로 살벌했고 조수원 PD는 그런 정웅인의 모습을 보고 ‘너목들’에서 그를 민준국으로 캐스팅했다.
“‘너목들’이 타 방송사에서 편성 불발된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저도 ‘너목들’ 전에는 작품을 하려다가 계속 잘 안됐었고. 이보영 씨도 다른 작품을 하려다 ‘너목들’을 하게 됐고 이다희 씨도 우여곡절 끝에 ‘너목들’에 합류하게 됐거든요. 여러 가지 그동안 쌓여있던 복합적인 요소들이 이 작품을 폭발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민준국이 치킨 집에서 정말 혜성이 엄마를 죽일 줄은 몰랐어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수하가 민준국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나 그걸 민준국이 알고 역이용한다는 점도 굉장히 재밌었고요. 수하의 아버지와 민준국의 관계, 아내의 심장을 빼앗긴 사연 등 사회적인 고발도 있어서 좋았어요.”
함께 호흡을 맞췄던 후배인 이종석에 대해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종석이는 연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인지 몰랐어요. 극중 박수하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고민하더니 살짝 고개를 젓는 걸로 포인트를 주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연기자의 자세가 된 것 같아요. 굉장히 영민한 친구예요.”
이밖에도 그는 함께하는 신이 많았던 배우 김해숙이나 윤상현 등에 대해서도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윤상현에 대해서는 “함께 술 한 잔 먹고 싶은 친구”라며 애정을 담아 표현했고 김해숙에 대해서는 “함께 드라마에 투입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기뻤다”고 존경심을 담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정웅인 본인은 앞으로 어떤 배우를 꿈꾸고 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너목들’에 함께 출연한 김해숙과 윤주상을 언급했다.
“김해숙, 윤주상 선배님이 드라마에 나온다고 했을 때 제가 캐릭터를 다시 봤어요. 이런 것처럼 사람들이 어떤 작품에 정웅인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정웅인이 나온다고 하면 어떤 기대치가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정웅인. 사진 = DRM 미디어 제공]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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