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자기 루틴을 만들어야죠.”
3할 타자와 2할9푼9리 타자는 다르다. 단 1리 차이인데, 실제 야구계에서 체감하는 격차는 그 이상이다. 10승 투수와 9승 투수도 마찬가지다. 단 1승차이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작은 차이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의외로 클 수도 있다는 게 야구인들의 설명이다.
3할 타자와 2할9푼9리 타자, 10승 투수와 9승 투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넥센 염경엽 감독은 평소에 선수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염 감독은 10일 목동 한화전을 앞두고 “자기 루틴”의 중요성을 또 한번 강조했다.
▲ 염경엽 감독은 이치로의 타격훈련을 넋 놓고 바라봤다
염 감독은 일화를 소개했다. “선수 시절 스프링캠프에서 우연히 이치로가 타격훈련을 하는 걸 봤다. 당시 오릭스에서 막 뜨고 있었던 때다. 기계에서 나오는 볼을 치는 데 보통의 타자들과는 달랐다”라고 했다. 보통 타자들과는 달리 힘도 들이지 않고 툭툭 쳤던 스즈키 이치로. 염 감독은 “상체가 움직여도 중심은 뒤에 남아있으니 안타를 많이 쳤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염 감독은 “이치로가 한번은 치기 전까지의 자세만 취하고 정작 공은 치지도 않더라. 타이밍을 잡는 연습이었다. 타격 직전까지의 파워 포지션을 만드는 이치로만의 노하우”라고 했다. 타격연습 때부터 타격 타이밍을 잡았다는 것. 염 감독은 “난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결국 타격은 타이밍이라는 걸 아니까 은퇴하기 직전이더라”고 했다.
염 감독은 “2할 2~3푼대 타자는 타격 연습할 때 기계가 던져주는 볼을 세게 치기에 바쁘다. 베팅볼 투수가 공을 던져줘도 투수 타이밍에 따라간다. 이러니 실전에서 자기 타이밍에 맞게 공을 칠 수 있나”라고 했다. 연습에서부터 타격 타이밍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한 가지 더. 염 감독은 “연구 없는 연습은 노동일뿐이다. 단순히 땀 흘려 연습했으니 단순히 기량이 발전하길 바라지만, 실력 향상은 안 된다”라고 일침했다.
▲ 3할?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슬럼프를 줄여야 한다
염 감독은 “2할 8~9푼 정도 치는 타자라면 이미 기술은 완성이 돼 있다. 그런데 타격감이 안 좋을 때 자꾸 연습을 더 많이 하고 기술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염 감독은 “더 높은 타율, 더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슬럼프 기간을 줄여야 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슬럼프를 잘 보내야 한다는 것.
슬럼프를 잘 보내기 위해선 “내가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데 가장 나쁜 시기를 알 수가 없다는 것. 염 감독은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내가 언제 컨디션이 가장 좋은지도 모르는 선수가 많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염 감독은 “슬럼프를 줄이기 위해선 예를 들어 무작정 덤비기 보단 공을 오래 보는 게 필요하다. 자신이 어느 코스에 가장 강한지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약한 코스를 공략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염 감독은 훈련을 많이 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훈련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수가 변화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발전하지 못하는 게 현실.
염 감독은 “3할을 쳐본 선수는 어떤 느낌으로 타석에 들어섰고, 어떻게 대처했을 때 3할을 치는 지 몸에 베인다. 거기서 생긴 약점을 조금씩 보완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루틴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마찬가지 의미로 “10승 투수는 경기 전 몸을 풀 때 딱 자신의 컨디션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감이 온다. 그것에 따라 투구패턴을 바꾼다"라고 했다. 그런 미묘한 감을 모르는 투수가 자신의 컨디션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하던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다 낭패를 본다는 것.
▲ 휴식? 훈련? 자기루틴은 스스로 만들자… 느낌 아니까
염 감독은 “자신에게 훈련이 필요한지, 휴식이 필요한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에 맞는 훈련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자기 루틴,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는 건 남이 대신해줄 수가 없다”라고 했다. 때문에 염 감독은 “의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자신만의 좋은 루틴을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분석하고, 대처하는 힘을 갖춰야 한다.
염 감독은 자기 루틴이 갖춰진 대표적 선수로 LG 이병규를 꼽았다. 이병규는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맹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그만큼 자신만의 기술, 슬럼프에 대처하는 습관 등 자기 루틴이 확실하게 갖춰졌다는 것. 염 감독은 “3할을 치고, 10승을 한 투수는 어떻게 했는지 자신만의 그 느낌을 안다. 3할, 10승을 해보지 못하면 그걸 모른다. 알기 위해서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개그우먼 김지민의 “느낌 아니까”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떤 말이나 행위를 할 때 그 느낌을 잘 알고 있다는 것. 느낌이 좋을 것 같으면 그 말, 행위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염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쭉 살펴봐도 3할을 쳐봤던 타자가 꾸준히 3할을 친다. 10승도 해봤던 투수가 계속 10승을 한다. 3할, 10승을 못해봤던 선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익히지 못하면 2할9푼9리, 9승에서 머물고 만다.
3할타자, 10승 투수는 이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느낌 아니까.”
[이치로(위), 김현수 타격훈련(가운데), 이병규(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